전라남도 영광에 곧 착공될 원전11·12호기에 대해 '기술자립도 80% ''안전설계 ''짜깁기 원자로 ''상업운전 경험이 없는 축소형 모델'등 찬반양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반핵운동가들로부터 '짜깁기 원자로'라는 별명을 얻는가 하면 전씨관련 5공비리의 하나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원자력발전소 11·12호기(영광 3·4호기)가 공사착수를 앞두고 막바지 찬반양론에 휩싸이고 있다.
더군다나 영광 원전 보수회사 한근로자의 아내가 '뇌없는 태아'를 두차례나 유산한 사실이 알려지고,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전남 지부에서 영광 원전 주변마을인 성산리주민 45명의 핼액을 채취, 역학조사를 한 결과 64%인 29명이 방사능 오염 초기때 나타날 수 있는 백혈구 증감현상이 나타났다고발표하면서 원전 자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기술처는 원전 11,12호기 건설허가의 심사를 오는 10월까지 끝내고 연말께는 기초공사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복안으로 안전성 심사를 서두르고 있다.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는한 공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해 온 과기처는 최근 부쩍 높아진 비판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전문가 등 국제적인 전문가들을 잇따라 초빙, "설계가 안전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에 부산하다.
우리나라에 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지 11년만에 본격적인 반원적 여론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원전 11·12호기 건설 반대운동의 성패는 우리나라 원전산업계의 앞날을 예측하는 중대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찬성, 반대측 모두가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원전 11,12호기 안전성 논쟁의 본질을 양쪽의 입장을 통해 알아본다.
오는 95년과 96년에 각각 완공되면 우리나라에서 가동되는 10,11번째 원전이 될 원전 11·12호기는 여러가지 점에서 이제까지의 원전과는 다르다.
기술자립도 80% 주장
우선 국내업체가 주계약자인 첫번째 원전으로서 앞으로 지어나갈 원전의 표준형이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까지는 1~3호기가 일괄도입, 5~10호기는 국내에서 참여하고 외국업체가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몇가지 핵심분야에 외국업체를 하청계약자로 참여시키고 나머지는 한전 주관아래 '우리힘으로' 원전을 건설함으로써 이 분야의 기술자립도를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자로계통을 맡은 컴버스천엔지니어링사는 우리나라 원전업계엔 처음 선뵈는 회사이다. "해외에 진출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지적과 함께 결정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던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가동중인 9기의 원전중 6기의 원전에 원자로를 제공했던 같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를 제쳤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원전 11,12호기는 또 전기출력이 1백4만KW인 첫번째 원전이다. 기존 원전은 고리1호기(58만7천KW) 고리2호기(65만KW) 월성1호기(67만9천KW)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95만KW의 용량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은 79년 드리마일섬사고와 86년 체르노빌사고를 겪으면서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세계 11개국에서 모두 30기의 원전이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7개국에서 11기만이 가동되어, 79년이래 가장 적은수의 원전이 새로 가동된 해가 되었다.
더구나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는 새로 원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아르메니아 지진이후 소련은 4기의 원전을 폐쇄 또는 건설중지했다. 또 스웨덴은 2010년까지 이 나라에서 가동중인 모든 원전을 폐쇄한다는 결정을 재확인해 우선 90년대 중반까지 2기가 문닫을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원전 11,12호기의 신규발주는 우리나라가 일본 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적인 '원전드라이브' 국가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지난 4월 내한한 한스 블릭스IAEA 사무총장은 이같은 점을 지적, "한국의 성공적인 원전사업은 개발도상국의 원전계획이 지연이나 중단됨이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보여주었다는데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치하했다.
10년만에 깨진 침묵
한편 원전반대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 원전이 위치한 지역과 대도시에서 민간 반대운동단체의 활동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11,12호기가 건설될 전남 영광에는 지난 2월 농민들의 주도로 영광 핵발전소 추방운동연합이 탄생했고 이웃 광주나 목포에 '광주환경공해연구회' '목포공해와 핵을 반대하는 청년모임'이 결성돼 연대운동에 나섰다.
또 지난 4월15일에는 전국의 16개 환경, 의료, 반핵 단체들이 모여 '전국 핵발전소 추방운동 본부'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최열 공동의장은 "올 하반기 활동의 초점은 원전 11,12호기 건설 저지운동"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4월12일 전남지역 총학장 일동의 '원전 11,12호기 건설반대'성명은 이 문제가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게 되었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조선대 이돈명총장, 전남대 오병문총장 등 10명의 총학장은 "더이상 우리의 자손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금수강산을 끔찍한 핵재난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원전건설의 취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고 밝혔다.
과기처의 원전 11,12호기 인·허가 심사일정에 따라 한전은 건설허가를 얻기 위한 예비안전성 분석보고서(10권 7천쪽)와 환경영향평가보고서(2권 1천4백쪽)를 이미 원자력 안전센터에 제출했다. 오는 10월, 이에 대한 심사가 모두 끝나면 건설에 들어가는데 한전은 95년 상업운전에 들어가기 전에 설계와 건설이 만족스럽고 발전소가 안전하게 운전 될 수 있는지를 확인받기 위해 다시금 최종 안전성 분석보고서와 방사선 비상계획서, 운전품질보증계획서 등을 제출, 통과돼야 한다.
논쟁의 초점「축소 설계」
아직 예비안전성 분석의 단계이기 때문에 원전 11,12호기의 기술적인 측면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논쟁의 초점이 '축소설계의 안전성'에 모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즉 원전 11,12호기는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사가 개발해 현재 가동중인 팔로버디원전의 설계를 고스란히 따온 셈인데, 단지 전기출력을 1백30만KW에서 1백4만KW로 줄인 것이 안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과기처는 이에대해 지난해 10월 이미 "원자력 안전센터의 검토결과 전반적인 설계개념의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정성에 대한 국민의 의문이 끊이지 않자 "안전성 판정의 최종 책임은 원자력안전센터"라던 이제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외국의 전문가들을 잇따라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5월29일 과기처의 초정으로 내한한 IAEA 원자력안전국정 '로젠'박사 등 7명의 전문가단은 4주일 동안 예비안전성 분석보고서를 검토한 끝에 "축소설계로 인해 건설허가에 영향을 미치는 안전성문제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는 △출력이 낮아졌음을 고려할때 비상노심냉각계통의 용량이 과다하지만 오히려 중대사고시 안전여유를 높여준다 △격납용기의 설계는 일부 보충자료가 필요하지만 적합하다 △노심설계의 근거와 기준은 적합하다 등으로 판정했다.
과기처는 이밖에 미국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 11,12호기의 안전성 검토를 이미 의뢰하고 있고 곧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전문가도 초청, 안전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원자로계통의 설계를 맡고있는 에너지연구소측도 "출력을 높이는 확대설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출력이 낮아질 때는 안전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비판론자들은 "11,12호기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실제 운전한 경험이 없는 전혀 새로운 모델의 원전으로서, 출력이 다른 팔로버디의 시스팀80 표준원전의 운전경험을 내세워 안전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원전을 도입할 때는 가동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것 중에서 안전성과 가동률이 세계적으로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것을 골라야 할진대, 원전11,12호기는 이런 정평은 커녕 자국의 규제기관(NRC)에서조차 안전성을 보증받지 못한 원전이란 것이다.
사실 에너지연구소는 CE사와의 계약서에서 "운전경험이 있는 실증된 설계일 것.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보증을 받거나 제3의 공인기관으로부터 보증을 받을 것" 등을 명시했다. 그러나 NRC는 "한국에도 원자력 담당기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입장이 못된다"는 이유를 들어 검토를 거부했다.
여기서 '실증된 모델'이란 미국에서 10~20년간 운전을 통해 공익기관의 감리감독을 거쳐 하나의 완전한 모델로 정착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시험 대상(?)
원자력위원을 역임한 박익수 과학저술인협회장은 지난 4월27일 한국경제과학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우리가 계약한 1백4만KW 원전은 CE사로서는 처음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전 11,12호기는 CE사의 시험대상인 시험원전인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 자리에서 또 "처음 연구개발에 착수한 CE사도 아직 시험단계인 발전로를 우리가 상업용으로 도입하면서 이를 국산화 하겠다는 것은 외국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무모한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87년에 준공된 영광원전의 국산화율이 46%인 마당에 이를 단번에 80%로 끌어올리는 것이 연구단계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우리의 처지에서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원자로 공급을 맡은 CE사는 미국내에서 19기의 제작실적만 있을 뿐 원자로 수출실적이 없는 등 CE사의 자격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대만과 이집트에서 CE사가 입찰에서 탈락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또 11,12호기의 모델인 팔로버디원전조차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새로운 원전이란 지적이 있다. 원자력 전문지 '뉴클레오닉스' 등에 따르면 팔로버디원전은 운전경험이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당초 공사나 시운전 과정에서 말썽을 자주 일으켰고 특히 원자로 내부의 진동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11,12호기의 안전성을 평가한 IAEA전문가단이 축소설계된 발전소의 기계적 영향을 평가한 결과 "노심내부 구조물의 진동평가를 위해 시운전 단계에서 추가로 측정이 요구되며 증기발생기 진동 및 누설전 파단 가정을 적용키 위해서 추가로 상세설명과 해석자료가 제출돼야 한다"고 언급한 점이 주목된다.
올들어 국내에 진도3을 넘는 지진이 두번이나 일어나는 등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원전은 전반적으로 지진감시계통이 크게 허술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원자력안전센터가 최근 공표한 88년도 사업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지진감시를 위한 계측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울진1, 2호기는 큰 지진이 났을 때 발전소의 가동을 정지할 건지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지적된 문제점들은 △인근지역의 지진에 대한 이해와 관심부족으로 예컨대 87년 10월 포항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 진앙지점, 강도, 발전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한 발전소는 한 곳도 없었다 △지진감시기기의 예비품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파손된 채 장시간 방치된 경우가 많다 △지진감시장치의 설치장소가 부적합하거나 방수처리미비 등 기기보호 설비가 부족하다 △큰 지진이 왔을 때 언제 발전소를 가동정지시키고 발전소 안전성 평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다 △발전소마다 원전 도입시기, 도입국, 설계자가 각기 달라 일관성있는 규제가 어렵다는 것 등이다.
복병, 활동성 단층 여부
원전11,12호기의 지진감시계통에 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한전이 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11,12호기 부지안에 폭 1백35m의 파쇄대가 북서쪽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파쇄대란 지각내에서 깨어진 부분으로 단층활동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파쇄대가 활동성 단층인가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이에 대해 "부지안에 발달해 있는 단층과 파쇄대는 발전소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질구조가 아니며 이들 파쇄대가 11,12호기의 설계와 시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한편 원자력안전센터는 "발전소부지를 통과하는 주요 지질구조에 대한 평가가 미비하여 보충조사를 실시했다"며 "그 결과 파쇄대의 최종연대는 제4기 이전의 것으로 판단돼 활동성 단층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나 최종 지질조사보고서로 확인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험성과 경제성
최근 공해추방운동연합은 정계 학계 종교인 언론인 여성계 등 저명인사 1백명을 대상으로 원전에 관한 의식조사를 한 일이 있다. 여기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향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원전을 보는 눈이 확연하게 갈라진다는 점이다. 즉 일반적으로 반정부 또는 반체제적으로 알려진 재야인사, 단체는 원전에 거의 무조건으로 반대한 데 반해 집권당인사 보수종교인 보수언론인 공무원 등은 하나같이 절대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이는 응답자의 80%가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응답자의 39%가 경제적이라고 답하는 등 원전문제를 '에너지' 또는 '기술문명'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보고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현상은 원전사업이 집권층과 소수의 기술엘리트에 의해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추진돼 왔음에 기인하겠지만 애초부터 11,12호기가 각종 정치적 구설수에 올랐던 탓도 있다.
기술적인 측면을 빼고라도 11,12호기 반대론자들이 주요하고 꼽는 문제점은 안전규제가 구조적으로 허술하다는 것이다. 우선 원자력사업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갖는 원자력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제까지 가장 중요한 원자로형을 결정하는데 원자력위원회의 심의를 한번도 거치지 않았음은 단적인 예이다.
이에 비교할 때 원자력 사업측인 한전의 권한은 지나치게 비대해져 당초 사업추진과 규제를 분리해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려던 이원화체제가 무색할 정도이다. 우선 한전사장은 사업허가를 신청하고 안전규제를 받아야 할 입장인데도 원자력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돼있다. 또 원자력안전센터의 산하단체인 에너지연구소의 이사장도 한전사장이 역임한다.
올해는 세계원전 산업계가 침체의 고빗길로 접어든 드리마일섬 사고가 일어난 지 10돌을 맞는 해이다. 반원전운동의 무풍지대였던 한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도 시민운동은 점차 열기를 띠고 있다.
한국전력과 과기처 등 원전추진측은 이같은 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 원전 홍보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방 가운데 원전반대운동이 가장 활발한 전남 영광지역의 경우 발전소와 주민단체는 앞다투어 소식지를 발행하는 공방전이 치열하다.
환경논쟁
이같은 홍보전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원전과 환경문제를 둘러싼 논쟁이다. 최근 일간지에 자주 등장하는 한전의 이미지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하나뿐인 지구의 보존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석탄·석유같은 화석연료는 탄산가스를 발생시켜 지구가 더워지는 온실효과를 부추깁니다. 원자력은 탄산가스를 방출하지 않는 공해없는 깨끗한 에너지입니다."
미국의 어느 원전 홍보책자에는 더욱 신랄하게 화력발전을 비난하고 있다. "1백만KW급 석탄발전소 한 기가 가동하면 질소산화물과 수은 등 여러가지 오염물질이 방출돼 매년 25~75명의 호흡기 질한 사망이 예상되며 어떤 독성 방출물들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전측이 환경문제를 걱정하고 나서는 데 대해 반원전운동을 펼치는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최열 공동의장은 "이제까지 한전등이 공해추방을 위해 기여한 것이 무엇이냐"며 못마땅해 한다. 최의장은 화력발전만이 공해의 원인은 아니며 원전의 온배수, 핵폐기물, 사고시의 방사성 물질 등이 모두 공해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사실상 체르노빌사고는 사상 최악의 대기오염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온실효과 산성비 오존층파괴 등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원전산업계가 이를 재기의 호기로 삼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원전의 비중을 높인다고 온실효과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전측에서는 "전세계에서 운전중인 4백30여기의 원전이 석탄발전소로 대체된다면 연간 16억t의 탄산가스가 배출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을 모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전세계의 모든 화력발전소를 원전으로 바꾸어도 지구의 온난화는 11%밖에 줄이지 못한다"는 계산도 나와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체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전기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석유와 석탄을 연소시켜 방출된 아황산가스의 양은 87년 한해동안 1백4만t이었는데 그 가운데 발전소에서 (즉 화력발전소) 나온 것은 16%인 17만t에 불과했다. 즉 당장 모든 화력발전소를 원전으로 바꾸더라도 아황산가스의 양은 16%밖에 줄지 않는다.
국민적 합의
원전11,12호기를 둘러싼 '결사저지'와 '빠를수록 좋다'는 찬반대결은 앞으로 공사허가를 앞두고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경과로 볼 때 과기처가 11,12호기의 건설을 취소 또는 연기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건설을 강행하지는 못하리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원전11,12호기와 관련해 제기됐던 각종 의문점들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해명되고 아울러 원전위주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은 합의가 얻어지지 않는 한 지난 6월 가동중이던 미국의 란쵸세코원전이 주민투표로 폐쇄된 사건이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님은 분명하다.
원전의 추진측은 지난 3월28일 반핵평화시민대회에 모인 5백여 시민들이 고은의 다음과 같은 시귀절에 왜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체르노빌 주민들이
그 엄청난 방사능 오염으로 죽어가듯이
우리도 죽어가기 시작한다.
아, 이 땅은 어느덧
우리들의 육자배기 땅이 아니라
핵의 땅이 되고 말았다."
「무뇌아」논쟁을 계기로 살펴본 방사능과 인체 피해
허용량 이내의 방사선이라도 암발생이나 기형아출산을 일으킬 수 있나?
체르노빌사고후 소련 전역을 휩쓸었던 '방사능 공포 증후군'이 최근 우리나라에도 원전인근 주민과 원자력발전소 노동자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말 영광원전 사택 경비원인 김 모씨(31)의 부인이 두차례나 뇌없는 태아를 유산했다는 사실이 밝아진 것을 계기로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온 원전인근 주민과 노동자들의 '방사능 건강피해' 주장은, 사실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원전을 둘러싼 한전과 주민측의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었나를 잘 보여주었다.
사실 이제까지 한전과 정부당국은 원전의 안전성만을 강변해왔을 뿐 과학적으로 당연히 인정해야 할 위험성마저 감추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다.
이같은 비밀주의는 원전근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 은 모조리 방사능과 연관지어 생각하게끔 하는 사태를 빚어낸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뇌없는태아, 기형아 발생, 백혈구 감소 등의 임상증상이 방사능 오염과 관련있는지는 엄격한 역학조사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방사능과 인체피해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이다.
방사능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고, 맛도 냄새도 없다는 점이 먼저 꼽힌다. 그런데도 그 영향은 방사능에 쪼인지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암 등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후세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크다.
예컨대 인간을 즉시 사망케할 정도인 4백렘 정도의 방사선에 쪼였을 때 체온은 1천분의 1℃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처럼 작은 에너지를 갖는 방사선이지만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교란하는 치명적 역할을 한다.
유전자는 매우 취약하다. 예를 들어 인간 정자의 DNA는 30억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쌍의 염기쌍만 바뀌어도'낫모양(겸상)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유전병에 걸린다.
많은 양의 방사선은 수주일 이내에 건강에 단기적 영향을 준다. 반면 저준위 방사선은 수년에서 40년사이에 장기적으로 미친다.
히로시마 원폭이나 체르노빌 핵참사에서 나타난 단기영향은 식욕상실 메스꺼움 구토 탈진 출혈등의 증상과 함께 사망하는 것이다. 4백렘의 방사선을 쪼인 두사람중 한명은 한 달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적은 양의 방사선이 미치는 건강피해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고준위 방사선에 의한 급성 장해와는 달리 '피해가 나타나는 문턱' 이 없다는 점이다. 즉 세포와 조직이 죽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손상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해롭다"는 이야기다.
방사선에 의한 암발생이 확인된 최저 방사선량은 1백라드이다. 따라서 그 이하의 방사선이 암발생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개인적으로 피폭과 암발생의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지극히 힘들다.
이에따라 낮은 방사선 피해는 확률적으로 따진다. 즉 어느 집단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피해의 정도는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의 피폭량 합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국제방사선방호협회(ICRP)는 지난 77년의 권고에서 한개인이 1년동안 1렘의 방사선을 쪼였을 경우 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0.01%라고 제시했다. 또ICRP는 일반인의 연간 피폭허용량을 0.5렘(5백 밀리렘)으로 정하고 방사능 종사자는 그 10배의 5렘을 허용량으로 정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 방사능에 쪼여 암에 걸릴 확률은 미미하다고 하겠지만 집단적으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일반인의 '허용량'에 해당하는 방사선을 쪼였다고 가정할 때 1년 동안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국민의 0.005%인 2천명에 달한다.
최근 히로시마 피폭자의 연구결과 중성자의 영향이 과소평가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ICRP의 기준치는 지나치게 느슨한게 아니냐는 비판에 부닥치고 있다.
특히 ICRP가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인 "피폭의 위험과 그 행동으로 인한 이익을 저울질 해 이익이 크면 피폭을 허용한다"는데 대해 반핵운동가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논란의 초점은 허용량 이내의 방사선이 암발생이나 기형아 출산등을 일으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전과 과학기술처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며 개인적 또는 자연적 이유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일 미국에너지부가 상원 정부활동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와는 다른 중요한 사례를 담고 있었다. 즉 무기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지난 68년에서 80년까지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의 발암률이 정상보다 높은 것은 물론, 이들이 낳은 2만3천19명의 아기중1.9%인 4백 54명이 신경계통의 결손이 있는 선천성 기형아였다는 것이다. 또 지난 78년 5월13일자 영국의학전문지 '랜셋'에 기고한 미국보스턴대 교수 '토마스 나쟈리단'의 논문에 따르면 미해군 원자력잠수함의 원자로 용접공 가운데 백혈병 사망률이 전미평균의 5.6배, 림프계와 조혈조직의 암사망률으 2.3배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평균 피폭량은 연간 2백11밀리렘에 불과했다.
위의 사례들은 모두 군사시설 종사자들에 관한 것이지만 원전 내부종사자들의 문제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지난 87년 일본 원전 종사자의 연평균 피폭선량이 1백70밀리렘이 지나지 않았으나 원전노동자들에게서 이상염색체의 다량 발견등 사회적 물의가 컸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원전 노동자들 가운데 1천밀리렘이상의 피폭자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방사선 안전관리의 목표가 '허용량'이 아니라 '최소한도'로 바뀌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