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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남극, 매일 인공위성으로 봅니다

남극 대륙을 뒤덮은 얼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바다와 맞닿은 부분에서는 얼음이 떨어져 나가고 있고, 표면에서는 얼음이 갈라져 수십m의 절벽이 생긴다. 이런 위험한 변화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도구는 역시 인공위성이다. 현장 연구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극한의 남극을 가장 먼저 개척해나가는 셈이다.
 


위성이 포착한 검은 상처, 히든 크레바스

 


 

2012년 남극 현장 조사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서남극 아문센해에 정박한 아라온호에서 헬리콥터로 스웨이츠 빙하(Thwaites Glacier)를 연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 빙하 가운데 가장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 중 하나로 ‘최후의 날 빙하(Doom’s day Glacier)’라고도 불린다.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볼 때 스웨이츠 빙하 곳곳에는 크레바스가 존재했다. 크레바스는 빙하가 갈라져 생긴 틈으로, 규모가 큰 것은 깊이가 수십m에 이른다.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지역을 간신히 찾아 착륙에는 성공했지만,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와 결국 탐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8년 전 그날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라온호로 되돌아와 확인한 헬리콥터 착륙지의 인공위성 영상 때문이다. 헬리콥터에서 내려 모든 연구원이 발을 디딘 착륙지에는 상처처럼 검은 줄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눈밭 아래 숨어 있는 ‘히든 크레바스(Hidden Crevasse)’였다. 만약 히든 크레바스에 빠지기라도 했다면…. 먹구름이 우리를 살린 셈이었다.    


히든 크레바스는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어 더욱 위험하다. 빙하 표면을 탐사하는 대원들은 보통 허리에 줄을 맨 상태로 일정 간격 떨어져 일렬로 이동하는데, 바로 이런 히든 크레바스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앞선 사람이 밟고 지나갔던 곳은 붕괴할 위험이 적고, 한 명의 대원이 크레바스에 빠지더라도 줄을 이용해 구출할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은 탐사하려는 지역의 히든 크레바스를 사전에 파악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극지연구소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2019년부터 남극 대륙의 미개척지를 탐사하는 연구자들을 위해 인공위성으로 히든 크레바스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숨겨진 크레바스를 찾는 데는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5호에 탑재된 영상레이더를 활용한다. 레이더에서 쏘는 마이크로파는 눈 입자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아 눈 입자 사이에 물방울이 많은 경우에는 마이크로파가 눈을 투과하지 못하지만, 남극 대륙은 ‘지구에서 가장 큰 사막’이라고 불릴 만큼 건조한 기후여서 마이크로파로 연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크레바스가 숨겨진 부분은 레이더 영상에서 검은 줄로 나타난다. 히든 크레바스가 없는 빙하는 위성에서 쏜 마이크로파가 눈을 통과한 뒤 평평한 지표면의 얼음에서 반사돼 레이더에 포착된다. 반면 히든 크레바스가 있는 빙하는 마이크로파가 눈을 통과한 뒤 지표면의 얼음에서 반사되지 않고, 수십m 절벽 아래에서 반사된다. 레이더 영상을 광학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과 비교하면 히든 크레바스의 위치를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아리랑 5호를 운용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협력해 남극 대륙의 히든 크레바스를 찾아낸 뒤 이 정보를 실제 탐사에 활용하고 있다. 현장에서 탐사 중인 과학자가 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표시해 제공한다. 영상레이더의 해상도를 50cm로 개선한 아리랑 6호가 발사되면 히든 크레바스의 위치와 분포를 더 상세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공위성 영상은 남극 대륙에서 육상 활주로를 건설할 수 있는 후보지를 찾는 데도 유용하다. 남극 대륙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고 접근할 수 있는 시기는 얼음 두께가 비교적 얇은 남극의 여름뿐이다. 겨울에 접근하려면 반드시 항공기를 이용해야 한다. 


현재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는 해빙 활주로가 있지만, 이는 남극의 여름인 10월부터 해빙이 녹기 전인 11월까지만 주로 사용된다. 암반 활주로를 건설한다면 사계절 내내 항공기로 보급품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이런 활주로 후보지를 사람이 직접 돌아다니며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극 대륙은 연평균기온이 영하 20도로 낮고 매서운 강풍까지 불어 대부분 지역이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활주로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다. 아리랑 2호, 3호, 3A호에 탑재된 광학 카메라로 기지 인근에서 길이 1.8km 이상인 활주로 후보지를 추려내고, 아리랑 5호에 탑재된 영상레이더로는 암반의 평평한 정도를 조사하고 있다.

 

빙붕의 붕괴를 목격하다


인공위성의 눈은 대륙의 중심에서부터 바다와 맞닿은 가장자리까지 남극 전역에 뻗어 있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2016년 세계 최초로 난센(Nansen) 빙붕이 붕괴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난센 빙붕은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다. 


빙붕은 남극 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있는 수십~수백m 두께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남극 대륙 위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다. 빙붕이 붕괴하면 빙하가 쉽게 바다로 흘러 내려와 해수면을 상승시킨다. 


2016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 등 전 세계 극지 연구팀은 난센 빙붕을 주시하고 있었다. 난센 빙붕에는 1999년부터 작은 균열이 확인됐고, 극지연구소는 2014년 난센 빙붕에서 30km에 걸친 거대한 균열을 발견했다. 균열 사이로는 빙하가 녹은 물(용융수)이 바다로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빙붕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붕괴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2016년 4월 난센 빙붕의 붕괴 과정은 결국 아리랑 5호에 포착됐다. 난센 빙붕의 끝부분에서 길이 30km, 폭 10km인 얼음이 떨어져 나오는 모습이 생생하게 찍힌 것이다. 아리랑 5호에 탑재된 영상레이더 덕분이었다. 


NASA와 ESA는 저해상도 광학 위성을 이용해 남극 대륙을 관측하고 있었는데, 이는 넓은 지역을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면 아리랑 5호의 영상레이더는 365일 24시간 고해상도 촬영이 가능했다. 


떨어져 나온 빙붕 조각은 ‘빙산 C33’이라고 명명됐다. 현재 빙산에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 수신기를 설치해 센티미터(cm) 단위로 이동을 기록 중이다. 


아리랑 5호는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빙산 A68’도 주기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빙산은 길이가 최대 160km, 두께는 300m에 이른다. 대부분의 빙산은 빙붕에서 떨어진 뒤 곧바로 먼 바다로 이동하면서 녹아내리는데, A68은 웨들해의 수심이 얕아 2년 동안 계속 비슷한 위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2019년부터 웨들해에서 탈출해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3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남아메리카와 남극 대륙 사이의 드레이크 해협으로 이동 중이다.


현재 남극 대륙의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특히 남극 대륙의 서쪽 지역은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아서 해수가 지속적으로 침투한다. 서남극의 빙하가 전부 녹는다면 지구 해수면이 3m 이상 상승한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빙하가 흐르는 속도가 매우 빨라 현장에 머물면서 빙하를 장기적으로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라온호를 이용해 빙붕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언제든지 빙벽이 붕괴할 위험이 따른다. 향후 인공위성 원격탐사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남극 대륙 전체의 빙하 변화를 정량화해 해수면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연구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남극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난센 빙붕에서 ‘빙산 C33’이 떨어져 나오는 모습이 아리랑 5호에 포착됐다.  

202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극지연구소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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