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 역대급 폭설과 같은 이상기후 해설의 끝머리에는 항상 ‘북극’이 붙는다. 북극은 ‘지구의 기후조절자’로 불릴 만큼 전지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북극의 사계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과학자들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또 우리나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항해에도 인공위성이 함께 한다. 꽁꽁 얼어붙은 북극해의 든든한 등대가 돼주는 인공위성의 활약상을 따라가보자.
(※국제 북극 관측 프로젝트 ‘모자이크’를 수행하기 위해 항해 중인 쇄빙연구선 폴라스턴호를 항공기에서 촬영했다.)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극지를 보라’는 말이 있다. 전 지구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 극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극은 남극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북극 바다를 뒤덮은 흰 얼음은 태양 빛을 85% 반사하는데, 이것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검파란색 물로 변하면(융빙호) 반사율이 약 10%로 급감한다.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의 90%가 흡수된다는 뜻이다. 흡수된 에너지는 주변의 얼음을 더 빠르게 녹이며 북극의 변화를 가속화시킨다.
사상 최대 북극해 탐사 프로젝트, 모자이크
북극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북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빙 면적의 감소는 북극의 기온을 끌어올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북극과 중위도 상공 사이를 지나가는 제트기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제트기류의 변화는 북반구의 여름철 폭염이나 겨울철 한파 등 이상기온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북극 관측 프로젝트인 ‘모자이크(MOSAiC)’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모자이크는 ‘북극 기후 연구를 위한 다학제 표류 관측소(Multidisciplinary drifting Observatory for the Study of Arctic Climate)’의 줄임말로, 독일의 쇄빙연구선인 폴라스턴(Polarstern)호를 북극해 중심 해빙에 고정해 2019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390일(13개월) 동안 해빙의 표류를 따라 무동력으로 이동시키며 북극해의 환경변화를 관측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모자이크에는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AWI), 한국의 극지연구소 등 전 세계 20개국 70여 개 기관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예산만 1억4000만 유로(약 1975억 원)에 이른다.
모자이크 프로젝트의 목표는 북극을 연속으로 관측해 북극의 사계절을 더욱 깊숙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북극 관측 연구는 겨울철과 봄철의 관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해가 뜨지 않는 겨울에는 해빙 면적이 3배가량 늘어나고, 해빙이 두꺼워져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폴라스턴호에 탑승한 과학자들은 폴라스턴호를 중앙관측소 겸 기지로 삼아 주변 해빙에서 현장 실험을 진행해왔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올해 9월까지 폴라스턴호가 이동한 거리는 약 2500km에 이를 전망이다.
모자이크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역할은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5호가 보낸 자료를 토대로 폴라스턴호의 예상 항로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간 극지연구소 북극해빙예측사업단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 연구팀은 해빙의 균열과 변형 등 특성을 파악해 현장 조사가 수월한 지역을 골라 폴라스턴호에 전달했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매주 한 차례 영상을 보냈고, 지금까지 약 40회 전달했다.
현실적으로 현장 관측이 불가능한 지역을 대신 조사하는 역할도 맡았다. 현장 조사는 북극해의 변화를 직접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영하 40도에 이르는 혹독한 기후 탓에 일부 지역은 연구자의 접근이 제한된다. 아무리 날씨가 좋다고 해도 폴라스턴호로부터 수백km 떨어진 북극해 중앙부에 연구자들이 직접 가기는 어렵다.
반면 인공위성은 공간 제약이 없다. 우리 연구팀은 시계열 영상 분석으로 폴라스턴호 주변 반경 40km 범위에서 해빙 변화를 분석했다. 약 3개월 동안 동일한 해빙 조각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뒤 각 영상에서 2500개 지점을 추적해 비교했다. 이들 지점이 이동한 점들을 좌표로 변환한 결과 해빙이 다양한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점을 이어서 삼각형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해빙의 위치가 하루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나타내는 평균 일변형률도 계산했다. 평균 일변형률을 색으로 나타냈더니 폴라스턴호를 기준으로 북서쪽에서 진한 보라색이 나타났다.
진한 보라색은 일변형률이 8~10%인 경우를 나타내는데, 이 정도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해빙이 깨져서 어긋나거나 중첩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일변형률이 0~2%로 낮은 지역은 노란색으로 나타났다.
모자이크 프로젝트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5월에는 코로나19로 프로젝트가 일시 중단됐다. 2~3개월마다 폴라스턴호에 쇄빙선과 비행기를 보내 물자를 보급하고 연구팀을 교체하는데, 코로나19로 물자 보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결국 폴라스턴호가 현장을 이탈해 직접 보급을 받으러 이동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위성탐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위성탐사는 감염병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연구팀은 폴라스턴호가 현장을 관측하지 못한 5~6월 해빙이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하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임무가 하나 더 생겼다. 폴라스턴호가 정박한 해빙이 예상보다 빨리 남쪽으로 이동해 급격히 녹았고 7월 30일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게 확인됐다.
극지연구소는 해빙이 붕괴할 가능성이 파악된 이 시기부터 위성을 이용해 폴라스턴호를 옮길 만한 안전한 해빙 후보지를 찾고 있다. 8월 10일 현재 폴라스턴호는 마지막 임무인 늦여름의 해빙 재결빙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북으로 이동 중이며, 아직 정박할 후보 해빙은 결정되지 않았다.
비북극권 국가인 한국은 자국의 인공위성을 이용한 원격탐사로 세계 최대의 극지 연구 프로젝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가을 모자이크 프로젝트가 끝나면 관측 자료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를 더욱 능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빙 분류의 정확도를 높여라
북극해 해빙의 변화는 넓은 면적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해빙의 전체적인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의 ‘우주 뷰(view)’가 필수다. 하지만 방대한 영상 자료 중에서 유의미한 해빙의 변화를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위성탐사· 빙권정보센터 연구팀은 해빙의 질감을 바탕으로 해빙의 종류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마이크로파(파장이 1mm에서 1m에 이르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해빙을 촬영하면 흑백으로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거친 표면일수록 더 밝게 나타난다. 이 영상을 픽셀 단위로 나눈 뒤 진한 정도(gray level)를 분석해 질감의 특징을 추출했다.
여기에는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흑백 영상의 특징을 분석하는 ‘하랄릭 질감 특징(Haralick texture features)’ 계산법이 사용됐다. 또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해빙의 질감 특징 데이터를 학습시킨 뒤 이를 토대로 해빙의 종류를 파악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실제로 북극 프람(Fram) 해협과 바렌츠해의 위성 영상을 이 프로그램에 적용한 결과 분류 정확도가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형성된 지 2년 이상 된 단단한 다년생 해빙이 있는 구역과 그 해에 새로 언 초년생 해빙 구역, 해빙이 없는 구역을 정확하게 가려냈다.
최근에는 아리랑 5호로 해빙의 이동을 추적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과거에는 인공위성의 해상도가 낮아 소규모 해빙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해빙 분포를 통계적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리랑 5호에 탑재된 해상도 1m급의 영상레이더로 소규모 해빙을 직접 관측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영구동토층도 관측할 수 있다. 여름에도 녹지 않고 1년 내내 얼어있는 영구동토층이 기후변화로 최근 녹고 있다. 아리랑 5호의 영상레이더는 마이크로파를 쏜 뒤 지표에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과 빛의 세기 변화로 지표면의 높이나 특성을 계산한다. 이런 식으로 영구동토층에 생긴 수 mm의 변화까지 잡아낸다. 인공위성으로 알아낸 지표 변화 데이터는 동토층 아래에 얼어있던 물과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계산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실제로 연구팀은 2018년 5월과 6월 촬영한 아리랑 5호 영상을 이용해 영구동토층인 알래스카 배로우 지역 중앙에 고도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언 땅이 녹아 지표가 가라앉은,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낸 셈이다. 연구팀은 현재 이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기후변화 연구는 대부분 수치 모델(numerical modeling)을 사용한다. 수치 모델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복잡한 기후변화 현상을 예측하는 기법이다. 북극에서 관측한 다양한 인공위성 데이터는 수치 모델의 입력값으로 사용된다. 관측 데이터가 정확할수록 수치 모델의 신뢰도도 올라간다.
연구팀은 40~50년 전부터 현재까지 북극해를 촬영한 대량의 인공위성 자료를 활용해 신뢰도가 높은 기후변화 분석 수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는 북극 해빙의 변화를 여름철과 겨울철 해빙의 면적과 두께로만 파악했는데, 여기에 ‘해빙 강도’라는 변수를 새로 추가했다. 해빙 강도는 해빙을 깨는 데 필요한 힘을 나타내는 지표로, 같은 두께의 해빙이라도 해빙 속 공기 방울이나 소금의 양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이를 기후변화 분석 수치 모델에 적용하면 해빙의 크기뿐만 아니라 내구성의 변화까지 알아낼 수 있다. 이는 쇄빙선을 설계할 때도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인공위성 보완하는 현장 조사
인공위성을 이용한 원격탐사 덕분에 북극에 직접 가지 않고 한국에서 드넓은 북극을 매일 관측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있다. 아리랑 2호, 3호, 3A호처럼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을 이용해 북극을 촬영하는 광학 원격탐사의 경우 태양의 고도나 구름의 양에 따라 광량이 달라진다. 그 결과 똑같은 지표를 촬영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현장 조사는 인공위성 원격탐사 자료를 검증하고 보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은 현장 조사도 직접 나간다. 한국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의 이동 경로를 따라 해수를 떠서 담기도 하고, 해빙 표면에서 지름 10cm의 얼음 기둥을 시추하기도 한다. 아라온호에 탑재된 헬리콥터를 타고 인공위성보다 낮은 고도에서 해빙을 관측할 때도 있다.
현장 조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2019년 북극 항해 당시에는 북극 해빙의 움직임을 조사하기 위해 해빙 표면에 범지구위성항법스템(GNSS) 추적기를 설치했는데, 며칠 뒤 북극곰이 추적기를 훼손하는 사건도 있었다. 1년 동안 준비한 연구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런 수많은 실패 경험과 인공위성 원격탐사를 통해 북극 연구는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약 130년 전 최초로 북극점 탐험을 시도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