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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줄기세포가 ‘분화’만 하는 줄 아니?

우리가 몰랐던 3가지 능력

십 수 년 전,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당황했다.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재생시키려고 동물의 몸 안에 줄기세포를 넣었는데, 하라는 분화는 안 하고 대신 예상치 못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암세포에 달라붙지 않나, 주위 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나, 지금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줄기세포 능력은 실로 다양하다. 그야말로 우리 몸의 ‘공병대’였다. ​

 



과학자들이 가장 놀라워 한 것은 줄기세포의 호밍(Homing) 기능이었다. 신기하게도 손상된 장기나 조직을 정확하게 찾아가는 능력이었다. 1960년대 성체줄기세포가 처음 발견된 시기부터 이 신기한 기능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골수에서 뽑아낸 조혈줄기세포를 환자 몸에 넣어주자 ‘집을 찾아가듯’ 필요한 곳으로 척척 이동하는 거였다. ‘Homing’이라는 이름도 집을 찾아간다는 뜻에서 붙었다. 연구해 봤더니 우리 몸에서 손상된 세포는 케모카인과 사이토카인, 성장인자 등 단백질을 많이 분비해 자신에게 필요한 세포를 끌어 모으는데, 줄기세포는 이런 단백질에 잘 끌렸다.


2006년 미국 번햄메디컬연구소의 프란츠 조세프 뮐러 박사는 줄기세포의 호밍 기능을 유전자 치료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뇌종양에 걸린 생쥐에게 신경줄기세포를 주사해 봤더니 줄기세포가 종양 부위를 향해 저절로 이동하는 현상을 관찰한 뒤였다. 암세포는 급하게 자라는 과정에서 성장인자를 많이 분비한다. 신경줄기세포는 바로 여기에 반응해 자기도 모르게 암세포를 향해 이끌려 간 것이다.



필자가 속한 연구진은 줄기세포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최근 암세포를 타격하는 초정밀 유도폭탄을 만들었다. 작전은 간단하다. 줄기세포를 암세포에 달라붙게 만든 다음, 함께 터뜨리기만 하면 된다. 일종의 ‘자살폭탄이다. 먼저 죽은 태아에서 얻은 신경줄기세포에 3가지 자살유전자를 넣었다. 이 자살유전자는 폭탄을 터뜨리는 ‘기폭장치’ 역할을 한다. ‘폭탄’은 5-FC라는 물질로 우리 몸에 많이 넣어주는데, 줄기세포 안에 있는 자살유전자를 만나 5-FU로 활성화되기 전에는 매우 안전하다. 5-FU는 원래 항암제로 널리 쓰이는 물질로, DNA 복제를 방해해 암세포를 죽인다. 5-FU에 걸리면, 암세포라도 생존율이 20% 이하로 떨어진다.

혹시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오인해 공격하지 않을까. 원리상 유전자조작 줄기세포가 분열이 활발한 세포(모낭세포, 정자세포 등)나 손상된 세포를 따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암세포는 일반세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인자를 많이 분비한다. 특히 혈관성장인자는 수백 배 수준으로 나오는데, 이런 점을 이용하면 암세포만 정밀타격 하는 ‘스마트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은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진 말기 암 환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작은 암세포를 줄기세포를 이용해 구석구석 공격하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김승업 교수와 함께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생쥐에 사람의 암세포를 이식한 뒤 4주를 기다린 다음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와 폭탄(5-FC)을 넣어주었는데, 암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급격히 작아졌다. 현재까지 폐암을 비롯해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간암, 자궁내막암 세포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에 생긴 암세포도 줄기세포가 골라낼 수 있는지 현재 연구 중이다.
 

 

 

 


주변세포 회복 돕는다

줄기세포가 발견된 이후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모르고 지나쳤던 사실이 있다. 줄기세포가 ‘의사’처럼 손상부위를 직접 복구하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간호사’처럼 옆에서 치료를 돕는 역할을 할 때가 더 많았던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성체줄기세포의 일종인 중간엽줄기세포를 몸에 넣어주자 손상된 폐나 신장, 간 또는 심장 기능이 좋아진 사례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대와 달리, 몸 안에 넣어준 줄기세포가 다른 세포로 분화하는 현상이 딱히 관찰되지 않았다.

미국 만델고혈압연구센터 마시밀리아노 그니치 박사도 여기에 의문을 품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심근세포가 죽은 생쥐에게 성체줄기세포를 넣어보니 심장 기능이 상당히 개선됐는데, 이상하게도 새로 생성된 심근세포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니치 박사는 성체줄기세포가 세포 분화 말고 다른 역할도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 그니치 박사는 성체줄기세포가 사이토카인 성장인자를 분비해 세포를 보호하고 혈관을 형성한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바로 줄기세포의 ‘주변세포 영향효과(파라크라인 효과)’다.
 
파라크라인 효과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세포가 자멸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혈관을 새로 만들며, 딱딱하게 굳은 단백질을 분해해 조직의 기능을 되살린다. 여기에 필요한 다양한 생리인자를 분비한다. 심지어 주변에 있는 간세포를 끌어들여 분화를 유도하기도 하는데, 최근 국내연구진이 이를 증명했다.


지난 5월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주명수 교수와 울산대 의대 신동명 교수팀은 성체줄기세포가 다른 줄기세포를 불러들이는 과정을 관찰해 ‘줄기세포와 발생’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람의 지방에서 얻은 성체줄기세포를 과민성 방광을 가진 쥐에 넣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2~4주가 지나자 방광에서 신경세포가 10배 이상 재생돼 손상부위를 회복시켰다. 재미있는 점은 재생된 신경세포가 바깥에서 넣어준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넣어준 줄기세포는 곧 사그라들고, 대신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재생능력 좋은 간세포들이 몰려들어 복구에 참여했다. 줄기세포가 ‘오지랖 넓게’ 손상된 부위에 필요한 세포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면역세포 폭주 막는 브레이크
우리 몸은 면역력을 높이는 세포와 낮추는 세포가 항상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면역력이 너무 강해지면 아토피 같은 면역 질환이 생기고, 반대로 면역력이 너무 낮아지면 감염이 되거나 암에 걸리기 쉽다. 줄기세포는 이 면역시스템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추 역할을 한다.
 
줄기세포는 면역계에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면역세포가 늘어나도록 분화를 촉진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로버트 윌너 교수팀은 우리 몸에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침입했을 때 줄기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셀스템셀’지 4월 3일자에 발표했다. 중간엽줄기세포와 조혈전구세포는 병균이 침입했다는 염증신호가 발생하면 사이토카인을 생성해 조혈모세포가 분화하도록 촉진하는데, 이로 인해 백혈구 등 면역세포가 늘어난다.

반대로 면역력이 과도해졌을 때는 줄기세포가 브레이크를 당긴다. 상처 부위로 들어온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해 면역세포는 유해인자를 분비하는데, 이런 물질이 멀쩡한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기도 한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유해인자 분비를 억제해 조직손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세포자살을 막는다. 류마티스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은 B세포나 대식세포 같은 면역세포의 기능이 너무 과해서 생긴다. 이 때 중간엽줄기세포는 염증세포를 줄여 면역반응을 낮추고, T림프구나 B림프구를 통해 면역세포의 생산·분화·성숙·활성화에 모두 관여한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요즘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경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작년 8월 제대혈에서 분리한 중간엽줄기세포를 쥐에 이식해 장에 염증이 만성으로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크론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75p 그림). 아직 동물실험 단계지만, 이런 연구가 쌓이면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면역억제인자를 분비하는 중간엽줄기세포는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면역공격을 피할수 있어 장기이식에 응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201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 강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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