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안가 언덕에는 극지연구소 연구자들이 관리하는 ‘펭귄 마을’이 있다. 펭귄 마을에는 턱끈펭귄, 젠투펭귄 등 다양한 펭귄 종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머지않아 남극장보고과학기지 근처에도 우리나라가 관리하는 두 번째 펭귄 마을이 생긴다. 극지연구소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두 펭귄 마을을 비롯한 남극 전역의 펭귄 군락을 우주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펭귄의 붉은색 배설물을 찾아서
펭귄 서식지에는 특별한 흔적이 있다. 바로 붉은색 배설물이다. 펭귄이 주로 먹는 크릴에 포함된 붉은 색소인 아스타잔틴(astaxanthin)은 펭귄의 배설물에도 섞여 나온다. 특히 펭귄이 알을 품는 포란 기간에는 둥지 주변에 배설물이 쌓여 하얀 얼음 위로 붉은 배설물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을 이용해 2014년부터 남극의 펭귄 서식지를 관측해왔다. 아리랑 2호, 3호, 3A호에 탑재된 광학 카메라로 붉은색을 띠는 배설물을 찾는 것이다. 지표에서 반사돼 위성으로 들어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붉은색과 근적외선 영역의 빛을 반사시키는 배설물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인공위성으로 펭귄의 배설물을 찾고 서식지를 확인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서식지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펭귄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황제펭귄과 같이 해빙에서 번식하는 종은 기후변화로 해빙이 줄면서 서식지 자체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육상에서 번식하는 펭귄에게도 거대한 빙산이 갑자기 흘러들어와 서식지를 가로막는 시련이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펭귄이 먹이를 찾아 바다로 나가기 어려워져 번식에 실패하고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0년 남극 케이프 데니슨 지역의 아델리펭귄 서식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 면적이 2900km²인 빙산에 가로막혀 펭귄들이 왕복 120km 거리를 오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결과 2011년 16만 마리에 달하던 개체수가 2016년 1만 마리로 급감했다.
인공위성을 이용하면 펭귄의 서식지 환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위기에 처한 펭귄 규모를 파악하고 대체 서식지를 찾을 수 있다. 인공위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남극 전역을 관측할 수 있는 데다, 현장 조사의 복병인 펭귄 배설물 냄새로부터도 자유롭다. 우스갯소리지만, 현장 연구 중 펭귄 서식지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곧바로 ‘민폐 연구자’가 된다. 배설물의 악취가 기지 전체에 퍼질 만큼 고약하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펭귄 서식지 원격탐사는 현장 조사와 함께 이뤄진다. 인공위성으로 펭귄의 배설물이 분포하는 면적을 구하면, 현장에서 면적에 따른 개체 수와 비교가 가능하다. 한 예로 황제펭귄은 배설물이 관측되는 면적 1m²에 평균 1.07마리가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육상에 사는 아델리펭귄은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동남극에서 조사된 사례에는 1m²에 평균 약 0.63쌍이 번식한다.
규모가 큰 펭귄 군집은 개체수가 수십만 마리에 이르기도 한다. 이 정도 규모는 연구자가 현장에서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최근 무인기를 띄워 펭귄의 개체수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무인기가 촬영한 영상에서 자동으로 개체수를 계산해내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펭귄의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짧은 시간에 개체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남극 생태계를 이해하는 열쇠, 식물플랑크톤
펭귄 서식지는 남극 대륙 주변 바다의 식물플랑크톤 분포와도 관련이 깊다. 사실 펭귄뿐만 아니라 남극 생태계 전체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식물플랑크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 색소로 포도당과 같은 영양분을 합성해 먹이사슬에 공급한다. 식물플랑크톤이 많은 곳에는 식물플랑크톤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는 크릴이 많이 서식하고, 크릴이 많은 곳에는 펭귄이나 물범, 고래와 같은 동물이 많다. 육상 생태계에서 식물이 담당하는 1차 생산자 역할을 식물플랑크톤이 하는 셈이다.
하지만 식물플랑크톤의 양을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식물플랑크톤 하나의 크기는 수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에서 수mm로 매우 작은 데다가, 1400만km2에 이르는 남극 대륙 전체를 둘러싼 바다의 면적도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이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가 식물플랑크톤을 우주에서 바라보는 이유다.
우리 연구팀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구관측시스템 및 정보시스템(EOSDIS)을 구축하기 위해 운용 중인 테라(Terra), 아쿠아(Aqua) 등 해양관측위성에 탑재된 광학 카메라를 이용해 남극 바다의 색깔을 관측하고 있다. 식물플랑크톤에 들어있는 광합성 색소를 분석하는 것이다. 광합성 색소는 주로 녹색을 띠므로, 인공위성에 촬영된 영상에서 초록색 파장의 세기를 측정한다.
다만 인공위성으로 측정한 결과는 해수에 포함된 다른 부유 입자나 유기물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식물플랑크톤의 양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추정하려면 역시 현장 조사가 수반돼야 한다. 인공위성으로 조사한 해역에서 직접 식물플랑크톤의 엽록소 농도를 조사한 뒤 인공위성 관측 결과와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극지 바다의 식물플랑크톤 농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해빙이 녹으면서 얼어있던 철분이 빠져나와 식물플랑크톤의 먹이가 늘었다.
일각에서는 식물플랑크톤이 많아지면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대기 중 온실가스가 줄어들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식물플랑크톤의 변화가 남극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위성탐사·빙권정보센터는 식물플랑크톤의 변화를 발 빠르게 추적하며 그 답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