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가 아니고 소비자인 식물이 있다. 소극적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식물이 있다. 그 이름은 식충식물(食虫植物). 선모, 포충낭, 잎 등을 무기로 곤충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태양광선을 이용한 광합성작용으로 양분을 합성하여 살아간다. 생태계에서 단순한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합성작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물도 있다. 이를테면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식충식물(食虫植物)이다.
식충식물은 잎이 변태된 포충기관으로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포획하고 소화효소를 분비, 소화시키고 양분을 흡수하는 종속영양 식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뿌리로 토양이나 수중의 수분과 무기양분도 흡수한다. 또 잎은 엽록체가 있어 광합성작용을 한다. 따라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독립영양식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식충식물은 세계적으로 4백여종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끈끈이귀개과(Droseraceae) 끈끈이주걱 긴잎끈끈이주걱 끈끈이귀개, 벌레잡이풀과(Nepanthaceae)의 벌레먹이말, 통발과(Lentibulariaceae)의 이삭귀개 땅귀개 자주땅귀개 통발 개통발 들통발 벌레잡이제비꽃 털잡이제비꽃 등 3과 4속 12종이 있다. 이들은 습지나 연못같은데 살고 있으며 이 중 4종은 북한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다윈으로부터 시작되다.
'다윈'은 다른 어떤 식물의 기원보다도 끈끈이주걱속(Drosera)에 깊은 관심을 가져 1875년 '곤충포식식물'을 각고의 노력끝에 출판하였는데 이것이 식충식물의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로이드'(Lloyd)는 1929년 '통발속 포충낭 문의 물에 대한 메커니즘'을 연구하였고, '시덴햄'(Sydenham)과 '핀들레이'(Findlay)는 1973년 '통발속 포충낭의 신속한 운동'에 대해서, '아리라'(Arira)와 '시바오카'(Sibaoka)는 1985년 '들통발 포충낭의 물 배출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대부분의 식충식물이 19세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식충식물이 왜 생겨 나왔는지에 대하여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식충식물들은 공통적으로 특수화한 포획기관을 사용, 곤충을 유인하고 포획하며 소화시키는 과정을 모두 거치고 있다. 이런 식물의 특징을 살펴보다.
포획에 알맞도록 된 구조
끈끈이주걱은 양지쪽 산성인 습지에서 잘 자라는 다년초. 잎은 주걱형으로 10~15개가 총생(叢生)하고 옆으로 퍼진다. 잎의 표면에 붉은 색의 긴 선모(腺毛)가 한 잎에 1백30~2백60개 나있는데, 중앙의 것은 짧고 바깥 쪽의 것은 길어 곤충 포획에 적합토록 되어 있다.
선모는 기부 병부 두부로 구성되어 있다. 병부의 세포는 긴데 안쪽은 팽압이 낮고 바깥쪽은 팽압이 높아 굴성(屈性)운동을 하기에 적합토록 되어있으며 중앙에 물관이 발달해 있다. 두부는 표면부에 2층의 표피가 분비조직으로 분화, 붉은 색소인 플럼바긴(Plumbagin)색소로 된 점액이 분비되고 내부는 물관이 발달해 있다.
6월 중순에 꽃대가 자라서 7월초에 개화하는데 꽃받침은 녹색이나 꽃잎은 백색 또는 연한 노랑색이다. 8월 중순경에 결실된 삭과(蒴果)는 익으면 3개로 갈라지고 그 안에 양끝이 뾰족하고 꼬리같은 돌기가 있는 많은 종자가 들어 있다. 이 종자는 4월에 발아하여 유성생식을 한다.
11월 초 온도가 5℃ 이하로 내려가면 잎이 마르고 다음해에 나올 겨울 눈으로 월동한다. 잎에는 부정아가 형성되어 무성생식으로 번식하기도 한다. 잎의 표면은 상하 표피세포가 있고 엽육(葉肉)에는 울타리조직과 갯솜조직이 있으나 그 발달이 미약하다. 뒷면 표피세포에는 기공이 분포되어 있으나 부세포가 없다. 표피세포와 공변세포에는 엽록체가 분포되어 있어 광합성도 한다.
끈끈한 접착제를 분비하는 선모로 곤충을 유인, 포획 및 소화 흡수하는 식충식물도 있다. 끈끈이주걱과 벌레잡이제비꽃속(Pinguicula)이 이에 속한다.
잠자리도 유인해 먹이로
선모는 끈적끈적한 액질과 소화효소를 분비·저장하는 저장소, 분비물이 통과하는 선택적인 여과기, 포획물을 죽이는 액을 외부로 뿜어내는 분비층 등 3가지 형태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끈끈이주걱은 특히 맑고 건조한 날 선모에서 맑은 점액이 많이 분비된다.
점액은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이슬방울처럼 보이므로 곤충이 착각, 쉽게 유인된다. 점액의 성분은 다당류로 매우 끈끈하다. 점액에는 투과성이 큰 유기산도 함유되어 있다.
유인된 곤충이 선모의 점액에 닿으면 날개와 다리가 달라 붙는다. 이어서 접촉된 선모는 팽압운동으로 중심을 향해 오므라들면서 인접된 선모에 그 자극을 전달, 주변 선모들이 자극점 방향으로 굴곡되어 곤충을 감싸게 된다. 선모가 이와 같이 운동하면 잎도 곤충을 감싼다. 이렇게 곤충을 포획한 다음에는 소화효소를 분비, 먹이를 소화시켜 흡수한다. 소화가 안된 부분은 버리게 된다.
선모가 자극을 받기 이전에는 안쪽과 바깥쪽 세포의 팽압이 같다. 하지만 자극을 받게 되면 안쪽은 팽압이 급격히 낮아지고, 바깥쪽은 팽압이 커져서 안쪽으로 굴곡하게 되는 것이다. 먹이가 소화되고 흡수가 끝난 다음 선모는 이완현상을 나타내면서 본래 모양으로 되돌아간다. 제2의 포획 준비를 갖추는 셈.
끈끈이주걱의 먹이로 포획되는 것은 주로 절지동물로 파리류 벌류 거미류 매미류 딱정벌레류 등의 순이다. 포획물의 크기는 대개 2cm 미만이나 잠자리류 같이 2cm 이상인 것도 있다.
함정문으로 유도해
포충낭을 이용하여 먹이를 포획하고 흡입시키는 것으로는 통발속(Utricularia)이 있다. 통발은 연못이나 논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충식물로서 뿌리가 없는 게 특징이다. 잎은 어긋나면서 실같이 갈라지고 한 개체당 4천~5천개의 포충낭이 있어 주로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다.
통발은 7월 초순경 줄기의 마디에서 꽃대가 자라기 시작한다. 8~9월에는 꽃대 끝에 노란색 꽃이 핀다. 11월경 수온이 7~8℃ 정도로 내려가면 줄기 끝에 둥근 겨울눈이 형성된다. 그리고 기온이 더욱 내려가면 겨울눈은 연못 밑에 가라앉거나 얼음에 박혀 월동한다.
수온이 7~10℃이상이 되는 이듬해 4월경, 겨울눈은 물위에 떠서 발아하기 시작하고 생장한다. 5월이 되면 줄기의 생장과 더불어 자란 포충낭은 9월까지 계속 식충생활을 하게 된다. 포충낭은 줄기에 5~7mm 간격으로 어긋나 있는 작은 가지에 약 60~70개씩 달려있다. 포충낭은 모양은 편평한 계란형인데 그 입구에는 가지가 있는 2개의 촉각이 윗쪽을 향해 뻗어 있다. 가지가 없는 강모(剛毛)는 좌우에 4개씩 수평으로 나있다.
포충낭 입구는 함정문으로 닫혀 있고 문의 하단부에는 2쌍의 지렛대가 위쪽을 향해 뻗어 있다. 입구 둘레에는 자루가 긴 수백개의 선모가 배열되어 있고 아랫쪽에는 자루가 짧아 선모가 한줄로 지렛대와 접하고 있다.
질식사 당하는 곤충들
함정문은 안쪽으로만 열리도록 되어 있다. 그 하단부에는 편평표피가 2세포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지렛대는 3~5개의 긴 세포들로 배열되어 자극전달을 용이하게 한다. 지렛대에 접한 선모는 버튼 모양의 정단세포, 중간세포, 기부의 3부분으로 되어 있고, 정단세포는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져 있다.
포충낭 벽에는 배출구가 있고 포충낭 내부에는 많은 흡수모가 있다. 편평표피 아랫 쪽의 흡수모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내벽에 달려 있는 것은 4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2개는 길고 2개는 짧다.
통발의 먹이 포획과정을 알아보자. 통발의 포충낭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측벽이 수축되고 그로 인하여 내부는 압력이 낮아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함정문 주변의 분비세포인 선모에서 유인액이 분비된다. 촉각과 강모에 의해 유인된 먹이가 지렛대의 한부분에 접촉되면 바로 지렛대로부터 함정문으로 자극이 전달된다. 함정문은 음압상태인 포충낭의 안쪽으로 갑자기 열리고 물은 압력의 차이로 포충낭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 이때 먹이도 물과 함게 빨려 들어간다. 물이 차면 함정문은 저절로 닫히게 돼 있다.
함정문을 통해 물이 들어옴에 따라 수축되었던 포충낭의 측벽은 순간적으로 부풀게 된다. 물은 들어온지 25~30분이 지나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만 빠져 나갈 수 있는 배출구를 통하여 나간다. 이같은 배출작용이 일어나면 포충낭은 완전히 수축되고 포획된 먹이들은 질식되어 죽게 된다.
통발의 먹이는 물벼룩 종류인 요각류, 지각류 같은 플랑크톤과 모기유충 등이다. 포획된 먹이는 분비된 소화효소에 의하여 소화·흡수되며 이러한 과정은 반복된다.
적극적인 삶의 증거로
벌레먹이말속(Aldrovanda)은 잎을 이용하여 먹이를 덥석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식물은 괸 물속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뿌리가 없고 바구니 모양의 잎과 그 끝에 선모와 쐐기모양의 잎자루를 가지고 있다. 또 벌레먹이말은 이름 그대로 먹이를 선모로 유인한 뒤 잎을 조개처럼 열고 닫아서 포획한다. 이어 소화효소를 내어 소화·흡수한다.
이러한 식충식물은 식물의 적극적인 생활양상의 한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광합성만으로 삶을 영위하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생명체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식물체 역시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 증거의 하나가 바로 식충식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