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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개발 벽 허물고 정보·전자산업 급성장

동남아

오랜 세월 저발전에 시달리던 동남아시아 제국은 날이 갈수록 그 모습이 변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단순 조립기지에 불과하던 이곳 국가들이 정부의 주도하에 이제는 세계 굴지의 하이테크 창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빈곤과 저개발의 전형으로 불리던 동남아시아가 변모하고 있다. 금세기 초반까지 지속된 식민 지배와 그로 인한 저개발의 허물을 떨쳐버리고 하이테크사회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 미국보다 앞선 정보고속도로 계획

멀티미디어사회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인구는 2백70만에 지나지 않는 도시국가이지만, 1인당 국민 총생산은 약 2만달러에 이르며 연간수출액도 6백억달러가 넘는다. 유리한 입지를 적극 활용해 동남아 역내에서 무역 금융 해운 관광의 중심지로 발전해온 싱가포르는 '정보입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적극적인 정보화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정보기반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을 받고 있고, 정보화 수준도 매우 높다. 전화보급률은 40%로 한국과 비등하게 높은 수준이니, 휴대전화는 5%이고, 1인당 국제전화 발신수는 29.1로 세계 제일이다.

91년 발표된 'IT2000'은 2000년까지 싱가포르 전역의 모든 가정 학교 사업체 공장 등을 정보통신망으로 이음새 없이 연결해서 언제 어디서라도 정보서비스를 얻도록 하자는 야심찬 계획. 흔히 '인텔리전트 아일랜드계획'이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미국의 정보고속도로 계획보다 2년 앞서 발표된 것이다. 고어 부통령의 정보고속도로 구상은 바로 이 계획에서 자극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의 첫번째 정보화노력은 81년부터 시작됐다. 싱가포르를 지적(知的)사회, 고도 정보화 사회로 발전시키려는 당시 이광요 수상의 강력한 지원 밑에서 국가 전산화계획이 구상되었고, 싱가포르의 정보산업발전을 담당하는 국가전산위원회가 발족됐다.

국가전산위원회의 산하기구가 시행한 행정전산화계획은 3단계로 나누어져 90년까지 제2단계가 완료된 상황. 현재 추진중인 제3단계에서는 이제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원스톱, 논스톱' 행정서비스를 실현시키는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원스톱'이란 시민들이 한 창구에서 여러가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논스톱'이란 컴퓨터만 연결되면 어디서라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전자정부'의 개념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작 15년째인 현재 행정전산화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어 24개 행정부처가 전산화를 도입했고, 5백여개의 응용시스템이 구축됐다.

두번째 발전과정은 싱가포르가 독립 후 최악의 불황을 맞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86년 착수한 '국가 정보기술계획'이다. 목적은 정보기술과 그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까지도 널리 정보기술을 응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응용상품의 활용을 촉진하는 데에 있었다. 특히 세계수준의 정보기술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수출하는데 그 전략적 목표를 두었다.

경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정보기술을 도입,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지원한 이 정책의 성과로 싱가포르 경제에 정보기술이 자리잡게 되었다. 저가의 사운드카드 및 동영상보드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의 약진 등의 그 성과의 한 예다. 정보기술을 동비한 회사수는 81년 13%에 불과했으나 92년에는 82%로 급상승했다.

싱가포르의 행정전산화구상이나 정보산업 육성은 우리나라보다 뒤늦게 태동했다. 이들 구상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도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해 사정을 듣고 자문을 구하기도 한 바 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행정전산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정보산업 발전 수준이라든가 정보화 수준은 커다란 격차가 생겼고,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인구 3백만 미만의 소국이고 영어상용국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약진은 특히 우리나라에 위협적이다.


대만 - 아시아의 실리콘 밸리 발판 세계 석권야망

아시아 전자산업에서 대만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국가에서 기술자립도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이 나라다.

타이베이에서 70km쯤 떨어진 신쭈과학공업구. 1백49개 컴퓨터·정보통신 관련업체와 연구소가 몰려 있는 대만 전자산업의 메카다. '동양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이곳에 요즘 제2의 도약 열기가 드높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해온 집적회로(IC)등 기본자재 생산을 위해 대만은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만은 이미 세계 컴퓨터업계의 강자이긴 했지만, 하이테크소재기술에서 뒤떨어진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급률이 15%에 불과한 집적회로는 연간 수입액이 약 10억달러에 달해 석유보다도 비중이 큰 이 나라 최대의 수입 품목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들은 반도체 부문 투자에 발벗고 나섰다.

신쭈과학공단은 2년 전부터 2k㎢ 넓이의 집적회로 단지를 조성해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장 큰 사업은 대만 최대의 집적회로 생산업체인 연화전자공사가 9억2천5백만달러를 투자해 지난해 상반기 건설에 들어간 생산설비다. 연화공사쪽은 2000년 완공목표인 이 공장에서 집적회로와 중앙연산장치(CPU), 액정화면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두번째는 대만반도체제조사의 7억4천만달러짜리 투자다. 대만정부와 필립스 등 외국기업들이 합작투자한 이 공장은 올해말부터 8인치 웨이퍼, 반도체 칩, 실리콘판 등의 대량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세번째는 대만의 에이서와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가 4억달러를 투자해 합작 건설중인 반도체 생산공장이다. 이밖에 '개미군단'이라 일컬어지는 중소기업들이 잇따라 참여하고 있으며, 국영기업인 중국철강도 최근 입법원(의회)의 승인을 얻어 1억5천만달러 규모의 웨이퍼 생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설비투자뿐만 아니라 기술축적 또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쭈과학공단에 있는 행정원 산하 전자공업연구소는 0.35미크론짜리 반도체 회로선을 개발중이다. 전자업계 전문가들은 대만기업들의 반도체 미세가공기술이 일본·한국을 바싹 뒤쫓고 있다고 평가한다.

방사광연구센터는 첨단소재 개발 등에 이용되는 최신 방사광 실험장치를 완성함으로써 선진국 중간급의 기술수준에 올라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쭈과학공단은 대만 제1의 수출산업인 전자부문 전체 생산액의 절반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몇몇 컴퓨터 부품업체들은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마우스 스캐너 마더보드 등 컴퓨터 주변기기와 부품은 대만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80%에 이른다.

대만 전자산업 도약의 밑거름은 무엇보다 풍부한 기술인력이다. 80년대 초 신쭈공업구 창립 당시부터 그랬듯이 해외두뇌유치가 발전의 큰 몫을 차지했다. 89년 2백23명이던 해외유학 경험자가 93년 1천4명으로 4배 이상 늘었으며, 이들이 창립한 기업이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73개에 이른다. 해외유학자들의 귀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대만의 경제전망이 그만큼 밝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에 대한 전폭적인 창업지원과 과감한 외국기술과 자본도입 등 범정부 차원의 유치정책이 주효했음은 물론이다.

80년대 이후 전자입국을 내세운 대만의 하이테크 집중육성책은 전반적인 산업구조 개편 전략과 일치한다. 노동집약에서 기술중심으로 경제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대만의 첨단 전자 기술과 중국본토 및 동남아의 조립기술, 노동력을 결합시킨다는 구상이다.

80년대 말부터 바람이 분 대만기업의 해외투자는 현재 노동집약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와 중국에 모두 3백억달러 이상에 이른다. 또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아시아지역 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기반시설 확충에 나서는 동시에 금융 교통 무역 등의 규제를 과감히 풀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의 운영센터가 되려는 대만의 발전전략은 전자와 중화학공업의 기술력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하이테크 업체인 크리에이티브사


인도 - 값싸고 질높은 인원 풍부

갠지스강과 타지마할로 상징되던 인도. 따라서 '죽음과 삶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인간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 '철학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8억이 넘는 인구가 제공하는 엄청난 시장잠재력, 광활한 영토, 풍부한 노동력 등 최적의 발전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인도남부에 위치한 방갈로르 지방은 세계 컴퓨터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포진해 있어 인도의 '실리콘 밸리'로 부상하고 있다.

방갈로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업체들은 미국 통신업체인 AT&T를 비롯해 최대의 컴퓨터업체인 IBM, 디지털이퀴프먼트사(DEC), 휴렛팩터드(HP),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모토로라,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으로 통신업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와 항공분야가 발달한 방갈로르가 최근들어 컴퓨터산업의 요충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이곳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방갈로르는 9백m 이상의 고지대이며 해안에서 3백km 정도 떨어져 있다. 습도가 낮고 시원하며 쾌적한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원래 방갈로르 지역은 이같은 조건과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에 인도에서 정년퇴직자들이 노년을 보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 지역에는 수준높은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인도 최고의 대학들, 이를 테면 인도과학대학이나 인도경영대학 등이 몰려있어 더더욱 기업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중국 등 최근 들어 전자 산업의 진흥에 주력하고 있는 타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인도는 값싼 노동력이면서 동시에 기술수준에 있어서도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방갈로르 지역에는 외국업체들이 줄을 이어 진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도업체들도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0년대 초 인도정부가 우주선 개발기지를 건설하면서 첨단기술 도시로 거듭난 방갈로르는 종교분쟁 등 정정불안 속에서도 경제개발 바람을 타고 인도경제의 '떠오르는 태양'이 된 것이다.

방갈로르가 자랑하는 강점은 무엇보다 값싸고 질높고 풍부한 전문인력이다. 중간수준 기술자의 월급여가 8백달러 안팎으로 연봉 수만 달러씩 받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누구나 영어를 할 줄 알고 대학 졸업자나 해외유학자도 상당수에 이르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관한 한 미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 컴퓨터업계의 전체 매출액은 91-91년도 8억6천만달러, 92-93년도에 10억2천만달러로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85년 2천4백만달러에 불과하던 소프트웨어 수출액은 지난해 3억5천만달러를 기록해 개혁정책 이후 연간 50%이상 늘어났다.

인도의 대표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인 인포시스 테크놀로지만 보더라도 매출의 90%정도를 수출을 통해 거둬들이고 있다. 인포시스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을 비롯, 리복 인터내셔널, 홀리데이 인, 네슬레 등과 같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방갈로르 지역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직까지 인도가 외국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시장이며 일반 국민들의 외국업체에 대한 감정 또한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방갈로르 지역에 하이테크산업이 발달하면서 외국업체들이 영향력을 넓혀감에 따라 일부에서는 외국자본에 대해 반감을 갖는 시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무튼 빈부격차와 교육 불평등이 극심한 인도이지만 8억9천만 인구 중 2억으로 추산되는 두터운 중산층이 컴퓨터산업을 떠받치는 인력공급원이자 시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각국도 인도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당분간은 외국자본에 의한 첨단 산업의 육성이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점차 기술과 자본 양면에서 자립도를 높여 '과학입국'의 이상실현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는데 기꺼이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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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정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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