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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빛도 공간에 따라 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의 비밀을 캐는데 크게 기여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 광양자가설, 브라운운동가설 등 3편의 논문을 발표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덕분에 궁색했던 그의 생활도 폈다. 1902년 스위스 베른의 연방특허국에 들어갈 때만 해도 3급 견습에다 연봉은 3천8백 프랑에 불과했다. 그런데 1906년 그는 2급 전문관으로 승진했고 연봉도 4천5백 프랑으로 올랐다.

더욱 아인슈타인을 기쁘게 했던 것은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자리가 생긴 것이다. 1908년 독일 물리학계의 거물이었던 막스 플랑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베를린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했으며, 1909년에는 특허국 생활을 청산하고 취리히공과대학 교수가 됐다. 이후 세계적인 과학자의 자격으로 1911년에는 제1회 솔베이회의에 참석했다. 1913년에는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혔으며, 같은 해 베를린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그의 마음엔 늘 꺼림칙한 문제 하나가 있었다. 그가 1905년에 제시한 3편의 논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사람들은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하면 시간여행을 상상하곤 한다. 운동하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달리는 기차의 길이는 짧아진다. 예를 들어 1백m 길이의 고속열차가 시속 3백km로 달리면 1조분의 4m 가량 열차의 길이가 준다. 이러한 지식들은 사람들에게 상식처럼 돼 있다. 또 여기서 유도된 질량에너지등가공식(E=mc²)은 물리학과 천문학, 그리고 에너지 개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은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 즉 등속직선운동을 하는 관성계에서만 성립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가속운동을 하는 좌표계나 회전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맞지 않는 얘기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특수상대성이론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0년 동안 끙끙거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15년 11월 25일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하고, 이듬해 3월 20일 ‘물리학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광속도일정의 법칙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등가원리에서 출발된 이론이다. 따라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따르면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통과하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든 질량이 없는 빛이든 모두 휘어진다.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뉴턴의 중력이론이 질량을 가진 물질들의 운동만 설명하는 한계를 일반상대성이론이 뛰어넘은 것이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가속도와 같다는 생각을 끄집어낸 것은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3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는 빛이 중력장에서 휜다는 것. 이것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천체를 관측했던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1882-1944)이 확인해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일식이 일어나면 태양 둘레를 지나는 빛이 1.745초만큼 휜다고 예언했다. 이러한 예언을 확인하기 위해 에딩턴은 1919년 일식이 일어나는 아프리카로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5월 29일 일식에 의해 나타난 별의 사진을 찍어 반년 전의 위치와 비교했다. 그 결과 태양에 가까운 별일수록 빛이 많이 휜다는 사실과 아인슈타인의 계산이 정확했음을 알아냈다.

1919년 11월 6일 영국 왕립학회와 왕립천문학회 합동회의는 에딩턴의 관측 결과를 토대로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맞았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에딩턴의 관측 결과는 너무 오차가 커 훗날 비판을 받음). 다음날 런던 타임스는 ‘과학의 혁명-뉴턴주의는 무너졌다’라는 제목 아래 일반상대성이론을 대서특필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두번째 증거는 수성의 근일점이 1백년마다 43초씩 이동한다는 것. 이같은 사실은 1843년 프랑스 천문학자 르베리어(1811-1877)에 의해 발견됐지만, 오랫동안 과학자들 사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뉴턴역학으로 이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행성이 수성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불칸’이라고 이름지은 새로운 행성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을 가진 다른 천체가 없어도 수성이 세차운동을 할 수 있음을 훌륭하게 설명해냈다. 1960년에는 금성의 근일점이 1백년에 8초씩 이동한다는 사실이 추가로 발견됨으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은 더욱 굳건해졌다.

세번째 증거는 빛이 중력장에서 적색편이를 일으킨다는 것. 강한 중력장에서 원자의 진동이 느려져 스펙트럼선이 붉은색 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으로, 흔히 ‘아인슈타인의 편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1925년 미국의 천문학자 애덤스(1876-1956)가 시리우스 동반별의 스펙트럼을 조사한 결과 백색왜성에서 나오는 빛이 적색편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입증됐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그동안 블랙홀 등 우주의 신비를 푸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또 그가 도입한 우주상수는 지금까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독일물리학회 회장이 됐고, 1921년(시상은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상금으로 12만1천5백72 크로네(당시 기준으로 3만2천달러)를 받았으나, 이를 모두 이혼한 전 부인에게 주었다. 1919년 이혼할 때 이미 노벨상을 받을 것을 확신했던 아인슈타인은 위자료로 상금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199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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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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