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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리를 디자인한다

소음 및 진동제어 연구센터

할리데이비슨을 즐겨 타는 한터프.
그의 아내인 오수정은 멀리서 ‘쿵쿠르르’ 하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뛴다. 한편 오수정은 평소 진드기 알레르기가 있어 늘 주변을 깨끗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깔끔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순도 100%’의 청결함을 고집했는데, 한터프에게 청소기 소리는 고문이다.

소음이 적은 청소기를 사준다 해도 오수정은 “먼지를 쫙쫙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야 청소한 기분이 든다”며 막무가내다. 그렇다면 한터프와 오수정은 어떤 소리를 내는 진공청소기를 원할까.
 

(왼) 소리를 잘 전달하는 콘서트홀을 짓기 위해서 가상공간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음향홀로그래피 기술을 이용한다. (오) 소음 및 진동제어 연구센터는 사람의 감성까지 매료시킬 수 있는 소리를 디자인한다.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이정권 교수.


고급화의 관건은 사운드디자인

KAIST 소음 및 진동제어 연구센터의 이정권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의 공통점을 찾아 음질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진공청소기가 내는 소리는 신경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흡입력이 느껴져야 한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는 조용하면서도 운전하는 맛이 나도록 강력해야 한다. 이 교수는 완제품 상태에서 직접 소리를 들어본 뒤 소음을 줄이는 게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이미 어떤 소음이 발생할지 예측하고 제어한다. 소리의 발생 메커니즘을 훤히 꿰뚫고 수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수많은 바람이 쉽게 접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떻게 가능할까.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면 답이 나와요. 우선 기계가 내는 소리를 객관화시켜 여기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를 최대한 반영해 음질을 설계하죠.” 이것이 바로 사운드디자인이다. 사람마다 원하는 소리가 다르듯 나라별로 선호하는 소리도 따로 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조용한 청소기를 좋아한다. 외국에서 인기를 끈 제품을 수입해도 무조건 히트칠 수 없는 까닭이 소리에도 있는 셈이다.

소리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 소리가 갖는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첫째다. 이 교수는 가상공간에서 소리를 미리 들어볼 수 있고, 음원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음향홀로그래피’를 연구하고 있다.

소리도 3차원으로 본다

원리는 이렇다. 먼저 울퉁불퉁한 자동차 엔진의 표면을 작은 격자로 나눠 수학 모델을 만든다. 또 엔진 주변에 수많은 마이크로폰을 부착해 엔진을 직접 가동했을 때 나는 소리를 낱낱이 모은다. 이 소리를 미리 만들어둔 엔진의 수학 모델에 대입해 풀어나가면 엔진 표면에서 나는 소리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또 엔진의 가동 상태와 시간에 따라 어느 부위가 가장 시끄러운지, 특정 지점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지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교수가 몇 종류의 국산 자동차가 내는 소음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직접 측정한 소음과 거의 일치했다.

음향을 예측하고 조절하는 기술은 산업현장에서 엄청난 수고와 비용을 덜 수 있다. 소음을 줄인 공사장의 분쇄기나 악기의 개성을 살려주는 음향홀 설계, 저소음 컴퓨터까지 그 응용분야는 끝이 없다. 타이어의 도면만 봐도 주행할 때 어떤 소음을 낼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맞춤형 타이어도 만들 수 있다.

이 교수는 “미래에는 사람의 감성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 소리를 만드는 일이 제품설계의 관건”이라며 “한걸음 더 나아가 기업은 듣기만 해도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소리를 디자인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수정이 한터프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듯 기계가 내는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킬 날이 멀지 않았다.

200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대덕=신방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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