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 태동한 사이버펑크는 빠른 속도로 영화 음악 연극 등 문화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이들이 묘사하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잡다한 일상사를 초월해서 순간적인 무아경에 빠질 수 있는 전자환각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정치인 중에서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만큼 컴퓨터 잡지에 자주 거론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상원의원 시절인 1990년에 그가 제출한 법안이 이른바 정보 고속도로 건설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고속도로는 21세기에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가 서둘러 건설에 착수한 국가정보 통신망이다. 컴퓨터 전화 TV가 모두 연결되어 데이터 음성 영상 등 각종 정보가 초고속으로 전송되는 정보사회의 하부구조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까지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컴퓨터시대의 반문화
정보고속도로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집안에 앉아 TV화면을 보면서 물건을 사거나, 시골의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극장의 영화를 골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고속도로가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3년 벽두부터 사이버펑크(cyberpunk)가 미국 매스컴의 관심사로 대두된 것은 정보고속도로의 부정적 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이버펑크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배의 키를 잡는 사람'을 의미하는 희랍어였으나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1894-1964)가 1948년 그의 책 제목에 사용하면서 '동물과 기계에서의 제어와 통신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새로운 뜻을 부여하였다. 사이버네틱스에 의하여 인간과 기계를 하나의 공통이론으로 설명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뇌 기능을 인공의 정보처리 장치로 본뜨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인공두뇌라 불리는 컴퓨터의 개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한편 펑크는 '반체제적인 태도'의 뜻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펑크록(punk rock)을 의미한다. 펑크록은 70년대 후반에 영국에서 일어난 반체제적인 음악이다.
사이버펑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낱말의 기묘한 짝짓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컴퓨터로 대표되는 첨단기술과 반체제적인 대중문화, 나아가서는 기계와 인간의 대등한 융합을 시도하는데서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반문화(counterculture)이다. 컴퓨터에 대한 심취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경멸적 태도가 뒤범벅이 된 반문화라 할 수 있다.
사이버펑크는 다른 반문화와 여러 측면에서 구별된다. 우선 사이버펑크족은 50년대의 비트족, 60년대의 히피족, 70년대의 펑크족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자들은 볼상사나운 포니테일(뒤에서 묶어서 아래로 드리운 머리), 여자들은 요란한 문신만 하면 히피족 행세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런 따위의 몸치장으로 사이버펑크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떼지어 몰려다닌 히피족과는 달리 사이버펑크족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수천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펑크는 정보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컴퓨터 반문화로서 사회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군사문화와 엘리트주의
사이버펑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문화의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컴퓨터를 문화적 인공물, 즉 특정문화의 산물로 간주하는 이유는 컴퓨터가 인류의 발명품이며, 그 기술의 사회적 영향이 사용자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컴퓨터에는 설계자와 사용자의 문화가 함께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컴퓨터 문화는 그 뿌리를 군사문화에 두고 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2차세계대전 중에 군사적 필요에 따라 개발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독일군의 암호문 해독을 기계화할 목적으로, 미국에서는 수동으로 하던 탄도계산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만들었다. 종전후에도 미국이 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국방예산을 투입한 이유는 단순하다. 컴퓨터가 군사행동의 요구사항, 즉 빠르고 정확한 정보처리에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문화의 또다른 특징은 엘리트주의이다. 엘리트주의 역시 군사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2차대전 중 영국정부는 암호해독 전문가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많은 홍보를 했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용감한 병사 못지않게 첩보전에 종사하는 고급두뇌의 사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젊은 비밀연구원(backroom boy)들이 전쟁영웅 대접을 받게 됨에 따라 일반대중들은 컴퓨터를 엘리트가 아니고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의 절대적인 외경심은 급기야는 컴퓨터 범죄에 대한 관용으로 연결되었다. 예컨대 은행을 턴 강도는 멸시를 받았지만 젊은 컴퓨터광, 이른바 해커(hacker)가 컴퓨터 조작으로 은행돈을 훔치면 도리어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해커가 비밀연구원의 위치를 물려받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컴퓨터 통신망으로 청와대 비서실의 통신비밀번호를 임의로 조작하여 금융기관의 전산망 운영현황 등 자료제출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고졸학력으로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운 20대 젊은이였다. 국내 해커 1호로 기록된 이 청년은 구속되어 집행유예로 풀러났다. 그런데 1년 뒤에 재벌회사가 전과자인 그를 특채하여 화제가 되었다. 컴퓨터 범죄에 관대한 사회통념의 일단을 드러낸 일화이다.
해커들의 유토피아
컴퓨터와 일반대중을 가로막고 있던 엘리트주의를 공격하고 나선 집단은 해커들이었다. 해커는 본래 5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로 밤을 지새는 대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60년대 후반에 '게릴라' 해커라고 불리는 급진적인 해커가 나타나면서부터 사회적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들은 컴퓨터가 군산복합체에 의하여 독점된 사실을 비난하면서 컴퓨터문화의 엘리트주의를 분쇄하는 작업에 나섰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반도의 살구나무가 무성한 계곡, 훗날 실리콘밸리라고 명명된 한적한 농촌에 모여서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70년대의 해커들이 도시의 사무실을 거부하고 실리콘밸리의 다락방이나 차고를 활동무대로 선택한 것은 그들 특유의 미래관 때문이었다. 해커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는 유토피아 소설에서 상반되게 묘사되는 두개의 이미지를 합성한 것이었다. 하나는 과학기술에 의하여 형성된 세계로부터 도피하려는 격세유전적 미래관이다. 대표작은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유토피아(노훼어)에서 온 소식'(1890)이다.
이 소설에서 모리스는 21세기의 후기 산업사회를 14세기처럼 수공업에 의존하는 목가적 사회로 그리고 있다. 이외 대조적인 또다른 유토피아는 과학기술이 자연을 정복하여 지구를 다시 설계하는 이상사회로 묘사되고 있다. 예컨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의 '새로운 아틀란티스'(1627)는 과학자들만의 이상적인 공동사회를 보여준다.
해커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이러한 두 종류의 유토피아가 동시에 실현되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자유자재로 정보를 교환하는 지구촌을 갈망했다. 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개발한 것도 그들이 생각하는 지구촌을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70년대 중반에 선보인 마이크로컴퓨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이크로컴퓨터의 등장은 컴퓨터세계에 실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몰고 온 일대 사건이었다. 극소수 전문가들의 독점물이던 컴퓨터가 일반대중의 수중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신기술 개발의 주도권이 공룡같은 대기업에서 해커들이 창업한 중소기업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사용자와 공급자 양쪽에서 모두 엘리트주의가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마이크로컴퓨터는 해커들의 반문화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치적 이상주의가 빚어낸 걸작품이었다.
해커들의 반문화적 태도는 80년대에 보다 과격한 양상을 나타냈다. 미국의 저술가 스티븐 레비의 저서 '해커들'(1984)은 해커들이 갖고 있는 그들 나름의 신조를 요약해 놓았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권위를 일체 인정하지 않고 끝없이 맞서는 무정부주의적인 태도이다. 군사비밀이나 은행의 감시체계를 보호하는 보안요원을 가장 경멸했다. 권위주의의 하수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커들은 이러한 보안체계를 파괴하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통신망을 공격하거나 수많은 컴퓨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일에 탐닉했다. 이들이 다름아닌 최초의 사이버펑크족이다.
사람과 기계의 공생
사이버펑크는 컴퓨터 세계에 퍼져있는 반문화이긴 하지만 컴퓨터문화 못지 않게 문학, 특히 디스토피아 소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1930년대의 러시아 혁명, 파시즘의 팽창 등 극심한 사회변화를 겪은 유업에서 출현한 공상과학소설(SF)로서, 유토피아 문학에 SF의 발상과 기법이 도입되어 인간의 미래가 어둡게 예견되는 반유토피아 소설이다.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멋진 신세계'(1932)와 조지 오웰(1903-1950)의 '1984년'(1949)이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80년대에 발표된 디스토피아 소설 중에서는 월리엄 깁슨(1948~)의 '뉴로맨서'(1984)가 단연 압권이다. SF의 3대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필립딕기념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소설이며 사이버펑크이 고전이 되었다. 사이버펑크란 말은 본래 디스토피아 SF의 작가, 특히 깁슨을 가리키기 위하여 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러나 정작 깁슨은 '뉴로맨서'의 성공으로 인세를 받아 자신의 컴퓨터를 처음 샀으며 컴퓨터에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정도로 컴퓨터의 문외한이었다.
사이버펑크 소설에는 사이비펑크족의 미래관이 투사되어 있다. 인류가 종국에는 사이보그(cyborg)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 유기체(organism)의 준말로서 우주처럼 특수한 환경에서도 생존 가능하도록 생리기능의 일부가 기계로 대치된 인간을 뜻한다.
사이보그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우리의 신체가 인공장기로 치환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뇌만 남게 된다. 마지막으로 뇌를 컴퓨터로 바꾸면 우리는 완벽한 사이보그가 된다. 사이버펑크 소설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인간과 기계가 한 몸에 공생하는 사이보그의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뉴로맨서'의 남녀 주인공 역시 신체의 각 부분을 로봇의 부속품처럼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람의 두뇌와 컴퓨터 통신망을 연결하여 형성되는 가상의 공간에서 활동한다. 깁슨은 이러한 인조공간을 일러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 명명했다.
SF에서 태동한 사이버펑크는 빠른 속도로 영화 음악 연극 등 문화 전반에 스며들었다. 영화의 경우 사이보그와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화면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1982년 개봉된 최초의 사이버펑크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비록 돈을 벌지 못했지만 '로보캅' '토탈리콜' '터미네이터'등은 하나같이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음악과 연극에서도 사이버펑크는 한몫을 했다. 이와같이 여러 예술분야에서 10년남짓 반문화의 물결을 일으킨 사이버펑크는 80년대 말부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사이버펑크 전문잡지인 '몬도2000'이 창간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몬도는 이탈리아어로 '세계'를 의미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두 얼굴
사이버펑크가 정보고속도로 건설과 맞물려 논의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부정적 측면 때문이다. 사이버펑크족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가상성교(virtualsex)를 즐기거나 약물중독과 유사한 무아경을 맛보게 되길 바라고 있다. 미국의 저술가 하워드 라인골드(1947~)는 그의 저서 '가상 현실'(1991)에서 가상성교의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지금부터 20년 뒤에 가상마을에서 뜨거운 밤을 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칸막이방에 들어가서 3차원 안경을 쓰기 전에 당신은 전신용 스타킹처럼 생겼지만 콘돔을 성기에 낄 때처럼 꼭맞는 기분이 느껴지는 옷을 입는다. (중략) 당신은 다름아닌 전화번호로 다양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한사람, 열사람, 1천명의 상대를 찾아낼 수 있다. 상대방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혼자서 움직일 수 있고, 비록 당신의 실제 몸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더라도, 두사람은 상대방을 서로 접촉할 수 있다. 당신은 상대의 귓전에 속삭일 수 있고, 상대방의 숨소리를 당신의 목 위에서 느낄 수 있다."
사이버펑크가 사이버스페이스에 기대하는 두번째 기능은 전자 엘에스디(electronic LSD)이다. LSD와 같은 환각 약물을 사용할 때처럼 황홀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LSD는 60년대 이후 반문화의 상징이었으며 약물중독은 반체제적 젊은이들의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사이버펑크족들이 잡다한 일상사를 초월해서 순간적인 무아경에 빠질 수 있는 미래의 생활공간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가 사이버펑크족의 생각처럼 섹스와 마약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컴퓨터 통신망의 가입자들이 시간, 장소, 성별, 사회적 지위 등의 장벽을 뛰어넘어 정치를 토론하고 사업정보를 교환하거나 가끔 남녀간에는 새롱거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는 새로운 미디어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다. 라인골드는 그의 또다른 저서인 '가상사회'(1993)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미디어 기능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를 아직 사용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날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진행중인 사회적 정치적 및 과학적 실험이 가까운 장래에 우리 모두의 생활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을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사이버펑크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디스토피아 세계의 도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정보사회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미디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