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 영장류는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요. 야생의 숲부터 동물원까지, 비인간 영장류가 보여주는 진화적 연결고리를 앞으로 6화에 걸쳐 연재합니다.
2017년 7월 12일 / 오늘의 긴팔원숭이 가족: A가족 / 날씨 맑음 “열대우림 속 나무들로 하늘마저 가려진 이 숲 속에서 마침내 미지의 유인원을 만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서 2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도시인 보고르에서, 다시 차를 타고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2시간 달려야 입성할 수 있는 할리문 국립공원에는 야생 자바긴팔원숭이 가족들이 살고 있다.
긴팔원숭이의 하루를 밀착취재하다
숲에 가는 날에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분주하게 짐을 챙긴다. 현지 연구보조원들과 소통할 무전기, 수십 미터 높이 나무에 사는 긴팔원숭이를 관찰하기 위한 쌍안경,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비, 행동 데이터를 적을 방수 노트와 연필, 우기에 필수인 우비와 여분의 양말, 그리고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긴팔원숭이를 쫓아다닐 체력을 뒷받침할 점심 도시락까지. 열대우림이라고 하면 흔히 동남아시아 열대 기후를 떠올리며 덥고 습하다고 생각하는데 꽤 큰 착각이다. 고지대 숲은 영상 16~17℃를 유지하기 때문에 공기가 차고 쌀쌀하다.
연구소 뒤편에 있는 숲에는 많은 긴팔원숭이가 살지만 모두가 인간을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현재까지 우리 연구팀이 익숙화 과정을 진행한 자바긴팔원숭이 세 가족만 인간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는다. 숲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10년 이상 긴팔원숭이 가족들을 따라다닌 현지 연구보조원들과 각 가족이 주로 다니는 나무들이 있는 길을 먼저 탐색한다. 도시에 살면서 둔해진 감각을 한껏 열어 긴팔원숭이들의 콜링 소리 혹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할 때 나는 바스락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긴팔원숭이들은 영양소가 풍부한 과일 혹은 어린 잎이 있는 먹이 나무나 쉬기 좋은 휴식 나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에 두 다리뿐인 인간은 땅에서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들의 속도에 맞춰 물살이 거센 강을 건너고 경사진 길을 거리낌없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긴팔원숭이가 잘 준비를 한다.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긴팔원숭이 가족들은 잘 나무의 안쪽 튼튼한 가지에 자리 잡고 몸을 웅크려 취침 자세를 취한다. 약 30분 이상 미동이 없을 경우, 잔다고 간주하고 그날의 행동 데이터 수집을 마치고 연구소로 돌아간다.
그들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이유
이쯤 읽었을 때, 야생 동물 연구에 흥미는 가지만 정작 긴팔원숭이라는 이름은 생소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장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야생 긴팔원숭이는 다른 영장류 종에 비해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그런 긴팔원숭이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그들이 인간과 진화적으로 가까운 유인원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DNA 서열 일치율이 높은 침팬지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보다도 진화적 관점에서 분화 초기에 위치한 긴팔원숭이를 연구해 인간까지 이어져 온 진화의 맥을 파헤치고 싶었다.
특히 이들이 일부 인간 사회와 유사하게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나의 관심은 폭발했다. 여기서 일부일처제의 정의를 먼저 짚어보자. 비인간 영장류 사회의 일부일처제는 다시 사회적 일부일처제, 유전적 일부일처제로 나뉜다. 사회적 일부일처제는 암수가 쌍을 이뤄 새끼를 돌보고 먹이 자원을 찾아다니며 서식지를 지키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적 일부일처제는 암수가 자신의 짝이랑만 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유전적 일부일처제가 항상 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번식과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일부일처를 택하는 것은 손실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동물들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 학계에서는 사회적 일부일처제가 진화한 이유로 여러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는 공동육아 가설이다. 암수 모두 양육에 참여해 효율적으로 육아를 하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택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수컷이 다수의 암컷에게 필요한 영역을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를 택한다는 가설이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으로 얻는 이익보다 영역 방어를 실패함으로써 얻는 손실이 클 때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는 영아살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다른 수컷이 자기 자식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식을 같이 양육하고 지켜 줄 한 수컷과 짝을 형성해 자식을 방어하는 것이다.
현재 영장류에서는 전체 종의 29%가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다. 원원류와 원숭이 중에서는 타마린, 마모셋, 티티원숭이, 올빼미원숭이, 일부 안경원숭이 등이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택했다. 유인원 중에서는 인간을 제외하고 긴팔원숭이만이 유일하게 일부일처제를 택했는데, 특히 사회적 그리고 유전적 일부일처제를 모두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인원 사회에도 ‘쇼윈도 부부’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긴팔원숭이가 정말로 유전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가에 대한 의혹도 나온다.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도 유전적으로는 다양한 짝과 번식하는 ‘쇼윈도 부부’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쇼윈도 부부가 이로운 점은 분명히 있다. 부계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영아살해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상대의 불임 가능성을 고려해 추가 번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아이를 다른 수컷이 양육하게 해 자식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흰손긴팔원숭이가 이런 쇼윈도 부부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종이다. 자식이 있는 암컷 한 마리와 다수의 수컷이 그룹을 이뤄 같이 다니는 것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1992~2007년 16년 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76.9%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모습을 보였으나, 21.2%는 일처다부제, 1.9%는 일부다처제의 모습을 보였다. 흰손긴팔원숭이 89개체의 분변 샘플을 모아 유전적 지표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전체의 7%가 사회적 일부일처제는 유지하지만 유전적 일부일처제는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흰손긴팔원숭이의 외도(?)는 재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그들이 인간처럼 결혼식을 올리고 평생을 약속한 건 아니기 때문에 ‘외도’, ‘재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편의상 사용한다). 이는 새로운 짝이 더 나은 유전자를 가졌을 뿐 아니라 양육에도 진심을 다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연구하는 자바긴팔원숭이 가족들이 유전적으로도 일부일처제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의심스러운 일들도 실제로 벌어진다. 어느 날 A가족의 엄마 긴팔원숭이인 아유가 막내 아자입과 함께 사라졌다가 혼자 돌아왔다. 막내가 며칠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길래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그런데 얼마 후 엄마 아유가 다시 사라지고, 못 보던 암컷이 A가족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털 색깔이 진하고 마치 수유를 하지 않았거나 경험이 적은 암컷처럼 젖꼭지가 늘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때 개인적으로 나는 나이 든 아유 대신 새로운 암컷이 A가족의 수컷과 번식을 하게 될까, A가족의 일부일처제가 깨지는 걸까 궁금했다.
몇 개월간 관찰한 결과, 해당 개체는 기존의 암컷인 아유였다고 결론났다(연구진의 착각으로 벌어진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찰한 자바긴팔원숭이 세 가족이 모두 일부일처제를 완벽하게 지킨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익숙화하지 않은 다른 가족의 암컷 또는 수컷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가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분변 샘플을 수집해 유전자 분석을 해야 한다. 조만간 우리 긴팔원숭이 가족들의 친자확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 결과가 나온다면, 자바긴팔원숭이의 일부일처제 가면을 벗길 수 있지 않을까. 인간 진화의 비밀에도 한 걸음 가까워질 것이다.
*유인원 : 영장류’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장류라는 분류체계 안에 원원류, 원숭이, 유인원이 포함된다. 원원류는 진화 역사에서 초기에 분화한 종들로 원숭이와는 다른 외적 특징을 가진다. 원숭이와 유인원은 꼬리로 쉽게 구분된다. 꼬리가 없는 인간,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이 유인원에 속한다. 긴팔원숭이는 이름과 달리 원숭이가 아닌 셈이다.
※필자소개
이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영장류 연구팀 소속으로 현재 스위스 로잔대 방문 연구원으로 머물며 영장류 인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einlee2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