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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가는 먹거리를 진행자가 직접 먹어보는 콘셉트의 TV 프로그램이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진행자의 말을 과학자 버전으로 바꾸면 “제가 한번 실험체가 돼보겠습니다” 정도일까?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유난히 스스로 실험체가 된 사례가 많았다.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마이클 스미스는 벌에게 쏘였을 때의 아픔을 신체 부위 별로 수치화해 생물학•의학 학술지 ‘피어제이’에 발표했다. 그는 이 연구를 위해 38일 동안 하루에 5번씩, 총 200방 정도의 벌침을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쏘았다. 그는 25군데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아픈 세 곳으로 콧구멍, 윗입술, 성기를 꼽았다. 그는 “우리 신체에서 얼굴 피부가 가장 얇고 그 다음으로 성기의 피부가 얇다”고 원인을 밝혔다. 이런 엄청난 아픔을 이겨낸 대가로 그는 2015년 심리학•곤충학상 분야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간하는 과학유머잡지 ‘황당무계 연구 연보’에서 노벨상을 발표하기 한 달 전에 주는 괴짜상이다. ‘사람들을 웃게 하고 그 다음에는 생각하게 한다’는 잡지의 신조에 맞게 수상자들의 연구와 시상식은 일단 유쾌하다. 수상소감이 길어지면 꼬마가 나와 ‘그만해. 진짜 지겨워’라고 소리치는가 하면, 지난 수상자가 칼 삼키기 묘기를 보이기도 한다(사진➍).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시상식은 9월 17일 저녁 6시 하버드대 샌더스 극장에서 열렸다.
세상에서 제일 아픈 독침은 총알개미 독침
놀랍게도 직접 느낀 고통을 수치화한 사람이 또 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생물학연구소의 저스틴 슈미트 박사는 스미스 연구원과 공동으로 심리학•곤충학상 분야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사진➌). 슈미트 박사는 곤충 78개 종에게 물린 뒤 그 고통을 1~4로 표현한 ‘슈미트 고통지수’를 발표했다. 그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곤충은 ‘총알개미’ 였는데, 그는 점수와 함께 이런 말을 남겼다. “총알개미 독침은 마치 녹슨 못이 발뒤꿈치에 박힌 상태로 불타는 숯 위를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이들이 있는 반면,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연구자도 있다. 올해 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사토 병원 하지메 키마타 교수팀은 키스가 알러지를 줄이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실제 키스를 하게 했다. 실험에 참여한 아토피성 습진 환자 24명,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 24명은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배우자 혹은 애인과 30분 동안 키스를 해야했다. 실험 결과 알러지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 항체인 IgE와 면역 반응의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의 수치가 키스한 뒤 눈에 띄게 줄었다. 알러지 반응은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증세로, 먼지나 꽃가루와 같은 물질에 의해 IgE와 사이토카인이 과도할 때 발생한다. 그는 논문에서 “키스를 하면서 느끼는 안정감이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면역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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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상 : 코끼리와 생쥐가 소변을 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놀랍게도 둘 다 21초 정도 걸린다. 미국 조지아공대 패트리샤 양 교수팀은 3kg 이상의 무게를 가진 포유류는 몸집과 관계없이 방광 속 소변을 배출하는 데 21(±13)초가 걸린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아틀란타 동물원에서 코끼리, 말, 소, 강아지, 박쥐, 생쥐 등의 소변활동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사진➋).
화학상 : 호주 플린더즈대 콜린 래스톤 교수팀은 삶은 달걀을 다시 날달걀으로 만드는 기계를 개발했다. 비커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킬 때 발생하는 전단응력(Shear stress)을 이용해, 변형된 단백질(삶은 달걀)을 원래 단백질(날달걀)로 만드는 원리다. 이 기계는 기존의 방법보다 저렴하고 간단해 생촉매나 신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케모바이오켐’지에 실렸다.
문학상 : 무전 세계에 통하는 말, 바로 “응(Huh)?”이다. 네덜란드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 연구소의 마르크 딩게만세 연구원은 ‘응?’의 발음이나 기능이 전세계적으로 매우 유사하다고 ‘플로스원’에 밝혔다.
경영학상 : 경영을 잘하는 CEO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학연도 지연도 아닌, 자연재해에 대한 경험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라벤드라 로 교수팀은 5~15살 무렵에 심각한 자연재해를 겪었던 CEO는 위험이 높은 결정을 할 때 좀 더 신중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경제학상 : 태국에서는 경찰의 뇌물 수수가 아주 흔한 일이다. 태국 방콕 경찰청은 경찰이 뇌물을 거절하려면 어느 정도의 추가 수당을 줘야 하는지를 조사해 경제 분야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의학상 : 하지메 키마타 교수팀과 공동수상한 슬로바키아 코메니우스대 나탈리아 카모디오 박사팀은 키스를 하고 난 뒤 10분에서 최대 60분 이내로 침의 DNA를 조사하면 키스 상대의 DNA 일부를 찾을 수 있다고 ‘국제법과학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성범죄의 범인을 찾는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학상 : 888명의 자녀를 갖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잠자리를 가져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대 엘리자베스 오버차우셔 교수팀은 18세기 모로코의 최고통치자이자 다산의 왕으로 기네스북까지 오른 물레이 이스마엘의 잠자리 빈도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마지막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연구팀은 술탄이 오직 하렘(궁궐 내 후궁)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가정하고 계산했을 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플로스원’에 밝혔다.
생물학상 : 티라노사우루스의 운동을 연구하기 위해 닭에게 인공 꼬리를 붙인 연구자가 있다. 국립칠레대 브루노 그로시 교수팀이다. 나무 막대로 만든 꼬리를 닭에게 붙여 닭의 운동을 관찰한 연구팀은 닭의 움직임이 마치 수각아목 공룡의 운동과 흡사하다고 밝혔다(사진➎).
진단의학상 : 충수염이 의심스러울 때 자가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됐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고통을 측정하면 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헬렌 대쉬다운 교수팀은 충수염이 의심되는 64명의 환자에게 과속방지턱을 넘도록 했다. 충수염으로 확진된 환자 34명 중 33명은 과속방지턱에서 큰 아픔을 느꼈다.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이 방법의 음성예측도(검사가 음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로 질병이 없을 확률)는 90%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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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생리의학상 자연에서 찾은 기생충 특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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