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플라스마와 처음 만난 건 아마도 대학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공과목으로 플라스마 관련 과목을 수강했다. 그러나 멀게만 느껴지는 이론과 지난한 수식들로 인해 큰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공 실험과목 수강 중에 저온 플라스마 발생실험을 했다. 그때 아름답고 마법 같은 아우라를 간직한 플라스마와 조우한 뒤로 필자의 인생은 급선회했다.
군 제대 후 석사과정에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플라스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핵융합 플라스마 연구를 수행한 황용석 교수를 만나 플라스마 및 양자빔 공학 연구실의 초기 멤버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학부시절에는 플라스마 응용 분야보다는 궁극의 차세대 에너지원인 핵융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플라스마 응용 분야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및 나노공정용 플라스마에 대한 산업계 및 학계의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며 필자 역시 국내에서 막 꽃을 피우려던 이 분야를 연구 주제로 삼았다.
필자가 몸 담았던 연구실의 장점은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와 자율권이 보장되는 연구활동이었다. 교수와 학생,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연구원들이 경계를 허물고 모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 분위기는 학문을 하는 진정한 즐거움을 우리 모두에게선사했다.
우리 연구실만의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는 특히 박사과정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박사과정 후반, 나노공정 장비 중 하나인 집속이온빔 시스템의 핵심 모듈을 액체금속 이온원에서 플라스마 이온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해외 논문에서 본 네거티브 바이어싱(Negative biasing) 기법이 있다는 내용을 봤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불현듯 그 방법과 반대로 포지티브 바이어싱(Positive biasing)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곧바로 실험장치를 구성하고 수 달간 집중적인 실험과 모델링 연구를 병행했다. 그 결과 이전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새로운 플라스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필자가 연구하던 플라스마 이온원의 성능 향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실을 졸업한 후, 조금 더 넓어진 시야로 바라본 플라스마 공학의 미래는 매우 밝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세계 핵융합 연구의 중요한 기반 장치가 될 KSTAR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플라스마 관련 연구자의 탄생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과학기술에 대한 가슴떨림을 간직한 젊은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도전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