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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떠오르는 대세 ‘코스메슈티컬’

약과 화장품의 콜라보

판철호 KIST 책임연구원팀이 개발한 기술로 푸로잔틴을 추출해 제조한 화장품. 왼쪽은 각질 제거용, 오른쪽은 주름 개선용 제품이다.

 

 

9월 5일, 강원도 강릉시 바닷가 한편에 위치한 비엠바이오라는 스타트업을 찾았다. 한여름이 아닌데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쌀쌀하게 느껴지는 공장 내부에는 높이 2.4m, 지름 95cm인 거대한 튜브 250개가 가득 차 있다. 어떤 튜브는 투명한 액체로 채워져 있고, 옅은 녹색, 짙은 갈색 액체가 들어 있는 튜브도 보인다.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튜브입니다. 맑은 것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이고, 옅은 녹색은 하루, 짙은 갈색은 일주일 동안 배양한 겁니다. 여기서 미세조류를 회수한 뒤 화장품 원료로 사용할 ‘푸코잔틴’을 추출하죠.” 이주영 비엠바이오 대표이사가 설명했다.

 

 

미세조류 추출물, 화장품으로 변신


푸코잔틴은 뭐고, 화장품과 어떤 관계일까. 푸코잔틴은 미역과 다시마, 미세조류 등의 해양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색소 성분이다. 30년 이상 연구가 이뤄져 왔으며, 인체의 지방 조직에서 열로 방출하는 에너지를 증가시켜 비만을 개선하는 효과와 암세포 형성을 억제하는 항산화 효과가 밝혀져 있다. 또 피부 미백과 자외선에 의해 손상된 피부를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판철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팀은 아우딘퓨쳐스라는 화장품 회사와 공동으로 푸코잔틴을 이용해 피부 주름을 개선하는 화장품 원료물질을 개발했다. 비엠 바이오는 이 화장품 제조에 쓰이는 미세조류를 생산, 공급하는 회사다.

 

푸코잔틴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꽤 오랫동안 이뤄져 왔지만 추출하기가 어려워 수급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부르는 게 값이었다. 약 50% 순도의 푸코잔틴 1kg은 약 1억 원에 판매된다. 비싼 가격 탓에 뛰어난 효능에도 불구하고 그간 화장품 원료로 개발되지 못했다.

 

판 책임연구원팀은 2013년 두 종류의 미세조류에서 순도 높은 푸코잔틴을 저렴하게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핵심은 푸코잔틴에 결합해 미세조류에서 푸코잔틴만 분리해낼 수 있는 맞춤형 유기용매를 찾아낸 것이다. 그는 “초기 설비 투자비용을 제외하면 배양 및 추출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며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엠바이오는 이 기술을 이용해서 매달 미세조류 분말 약 20kg을 생산하고 있다. 푸코잔틴은 이 분말에서 추출하는데, 최고 99% 순도 기준 약 200g(1%)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순도가 낮을수록 양은 늘어난다.

 

아우딘퓨쳐스가 여기서 얻은 푸코잔틴을 이용해 생산, 판매하는 피부 주름 개선 화장품은 작년 11월 출시된 뒤 현재까지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섰다.

 

판 책임연구원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식품에도 적용할 계획”이라며 “푸코잔틴 같은 항산화물질은 빛과 온도에 민감한 만큼 저온에서 유통되는 유제품으로 개발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데카솔’과 ‘마데카크림’의 관계


최근 화장품 연구는 의약품과 융합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효능이나 인체 작용 원리가 밝혀진 약물 성분을 화장품에 도입하는 것이다. 푸코잔틴은 현재 질병치료용 약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인체 작용 원리가 밝혀진 천연물질을 화장품에 적용한 사례다.

 

최근에는 이런 분야를 칭하는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영어로 화장품(Cosmetic)과 약(Pharmaceutical)을 뜻하는 두 단어를 합쳤다. 알버트 클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1984년 미국 화장품 화학회에서 처음 제안한 용어다.

 

클리그먼 교수는 국제학술지 ‘피부외과학’ 2005년 7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화장품과 약에 대해 처음 법적인 정의를 내린 1938년에는 피부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 거의 없었다”며 “그동안 피부를 변화시키는 수많은 물질들이 발견됐기 때문에 새로운 범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38년 당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화장품과 약을 법적으로 정의하면서, 외모를 치장하기 위한 것(화장품)과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물질(약)로 구분했다.

 

코스메슈티컬은 인체 작용 원리가 밝혀진 물질을 넣고 임상시험을 거쳐 해당 효과를 과학적으로 확인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화장품과는 다르다. 주름 개선 등의 효과를 보이는 기능성화장품들이 코스메슈티컬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최근에는 더 적극적으로 약에 다가가고 있다.

 

가령 상처치료제로 알려진 ‘마데카솔’의 원료를 이용한 ‘센텔리안24 마데카크림’이라는 화장품이 있다. 마데카솔의 핵심 성분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의 자생식물인 병풀 추출물인데, 콜라겐 생성을 촉진해 피부 재생을 돕는다. 마데카크림은 병풀 추출물을 약에 쓸 때보다 소량 섞어 만든 제품으로, 콜라겐 생성 및 피부 장벽 강화 효과를 준다. 마데카크림은 2015년 4월 출시된 이후 1년 반 만에 200만 개 이상이 판매되는 등 원조격인 마데카솔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정세영 경희대 약대 교수는 “코스메슈티컬의 등장으로 점차 화장품과 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5월부터는 과거에는 화장품으로 개발할 수 없었던 탈모, 여드름, 아토피성 피부염 완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화장품법이 개정돼 화장품의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덕분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원료물질을 보유한 제약회사들이 화장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마데카크림은 마데카솔을 제조하는 동국제약에서 개발했고, 남성용 화장품으로 유명한 ‘우르오스’도 일본 오츠카제약에서 개발한 코스메슈티컬이다. 세계 굴지의 화장품회사인 일본의 시세이도 역시 원래 본업은 제약이었다.

 

 

병풀(위)과 피뿌리풀(아래). 병풀 추출물은 상처치료제 마데카솔의 핵심 원료다. 노주원 KIST 책임연구원팀이 찾아낸 피뿌리풀 추출물은 병풀 추출물보다 상처를 더 빠르게 회복시키고, 현재 주름 개선 화장품에 쓰이는 성분보다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물질 찾는 ‘천연물 헌터’


코스메슈티컬은 인체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천연물을 찾아내서 의약품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 화장품에 쓰이는 원료물질은 아직까지 종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제약업계에서는 아예 새로운 물질을 찾아 화장품과 약품 개발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천연물 헌터’들의 활약이 중요해진 셈이다.

 

노주원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책임연구원팀은 새로운 원료물질을 발굴하고 효과와 작용 원리도 밝혔다. 연구팀이 발굴한 물질은 몽골의 자생식물인 피뿌리풀의 추출물로, 피부 재생을 촉진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성분이다.

 

연구팀이 피뿌리풀에 주목한 계기는 몽골의 국립연구기관인 화학및화학기술연구소(ICCT)의 조언 덕분이었다. 몽골의 전통의학서적에 따르면, 세계 정복 전쟁이 활발했던 칭기즈칸 시대에 피뿌리 풀을 말과 병사의 상처 치료에 썼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몽골에서 피뿌리풀을 들여와 실험쥐를 대상으로 상처 치료 효과를 실험했다. 실험쥐의 등에 가로세로 1.5cm로 정사각형 모양의 상처를 낸 뒤 15일간 회복 속도를 측정했다. 상처 부위에 피뿌리풀 추출물을 바른 경우가 병풀 추출물을 발랐을 때보다 회복 속도가 2배가량 빨랐다.

 

분석 결과 피뿌리풀을 구성하는 수천 종의 화합물 중에서 상처치료에 관여하는 물질은 8가지로 밝혀졌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비타민K가 속한 쿠마린 계열의 유기화합물이라는 것이다. 쿠마린 계열은 분자구조에 있는 고리가 두 종류 이상의 원소로 이뤄진 화합물을 말한다.

 

상처치유 과정은 크게 염증기와 상피화기, 증식기, 성숙기 등으로 나뉘는데, 연구팀은 각 시기에 있는 세포들을 대상으로 피뿌리풀 추출물을 실험했다. 먼저 피뿌리풀의 항염증 효능을 검증하기 위해 대식세포에 염증반응을 유도한 뒤 8가지 물질을 처리했을 때 염증반응이 억제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상처치유 증식기에 있는 세포에 피뿌리풀의 8가지 화합물을 넣었을 때 피부각질세포의 이동과 분화가 빨라지는 현상도 확인했다. 특히 이 반응을 일으키는 베타-카테닌(β-catenin)이라는 단백질이 활성화됐다. 노 책임연구원은 “8가지 물질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처 치료 과정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티픽 리포트’ 2월 22일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추가로 피뿌리풀 추출물이 피부 주름을 개선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포 실험에서 레티놀 등 현재 주름개선 화장품에 주로 들어가는 성분들과 비교한 결과 주름 형성을 촉진하는 효소(MMP1)의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가장 좋았다. 노 책임연구원은 “피뿌리풀 추출물을 피부 노화 개선 화장품 소재로 개발하기 위해 코오롱생명과학에 기술을 이전하고 피부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영 교수는 “앞으로는 바르는 화장품에서 먹는 화장품으로 화장품의 개념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콜라겐은 바르는 것보다 먹었을 때 효과가 더 좋다. 이미 프랑스의 로레알과 스위스의 네슬레는 피부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식품을 공동 개발한 바 있다. 화장품과 약, 식품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졌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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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강릉=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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