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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노화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천천히 늙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거쳐 결국은 ‘인간은 왜 늙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수렴한다.

인간은 왜 늙는가.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한다. 저명한 러시아의 유전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는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90년 노화가설을 분류한 논문에서 “지금까지 노화에 대한 가설만 300가지가 넘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화적으로 바라 본 노화의 원인은
진화의 근간인 자연 선택은 번식과정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노화와 장수는 모두 생식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난 뒤 일어나는 일이라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학자들은 진화적으로 노화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그 중 ‘종 이익설’은 노화를 개체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에서 풀이한 가설이다. 번식을 통해 세대가 바뀌어야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가진 개체가 탄생할 수 있고, 자연 선택을 통해 점점 더 환경에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노화와 죽음은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가설에서 죽음과 노화는 동시적이고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이 반드시 노화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또 다른 이론은 ‘생명활동 속도설’이다. 에너지소모율과 수명관계를 연결한 이론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속도가 느리면 그만큼 수명이 길어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체구의 크기 및 체중과 수명의 상관관계, 변온동물의 동면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구가 큰 코끼리나 고래가 수명이 긴 이유는 이들의 대사 속도가 체구가 작은 동물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며, 변온동물이 동면을 할 수 있는 것도 대사속도가 극히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체중이 같은 조류와 포유류를 비교해보면 대사속도가 빠른 조류가 수명이 더 길다는 사실은 이 이론에 대한 반증이다.
 

"최고령자 김복순 할머니는 92세다
말도 없고 표정도 다양하지 않았지만, 허리가 아프지는 않은지, 덥지는 않은지 살뜰히 챙기는 딸을 볼 때 만큼은 미소가 가득했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은 미국의 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 박사가 ‘길항적 다면발현성이론’을 발표한 1957년이다. 동일한 유전자가 젊었을 때는 유익한 작용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생식을 하지 않는 시기가 되면 오히려 유해한 작용을 해 노화가 초래된다는 가설이다.

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측면을 주목한 가설도 있다. 영국 뉴캐슬대 토마스 커크우드 교수는 1977년 ‘네이처’에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1). ‘생존번식교환설(일회용 체세포 가설)’이다. 이 학설의 핵심은 유기체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생식과 생존을 맞교환한다는데에 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연어가 대양을 가로지르고, 목숨을 걸고 강을 역류해 집단으로 산란을 한 뒤 바로 죽어버리는 현상을 보면서 번식을 위해 생존을 포기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식을 위한 여정에 사용하고 산란 장소에 도달하면, 그만큼 생존에 필요한 면역기능 등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져 개체는 생존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과 생존이 대립하는 학설이 주창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 가설 역시 번식을 많이 하고도 오래 생존한 생물들의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돼 보편화하기는 어렵다.

 
유해한 산소가 우리를 늙게 만든다?

사람이 왜 늙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동시에, 생물학자들은 유기체가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변화에 대해 주목했다. 가장 먼저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유전자였다. 노화를 결정짓는 유전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 연구자들은 실제 나이에 비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조로 환자들의 유전자를 조사했다. 조로 증상을 보이는 유전질환은 크게 워너증후군, 프로제리아 등이 있는데 노화속도가 각각 2배, 10배 가까이 빠르다.

워너증후군은 ‘wrn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wrn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DNA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단백질인 WRN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프로제리아의 경우, 세포의 핵막을 구성하는 라민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직접적인 노화유전자에 의한 증상이 아니라, 특정 기능이 저하되면서 간접적으로 노화를 초래한 것이다. 여전히 직접적인 노화유전자를 찾으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을 계속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발견은 아직 없다.

노화가설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가설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등장했다. 1956년 국제학술지 ‘노년학’에 2쪽짜리 짧은 논문이 실렸다2). 미국 UC버클리 덴햄 하먼 교수가 제안한 ‘산화적 손상설’이다. 모든 생명체가 일상 호흡으로 소모하는 산소 중 적어도 2% 정도는 유해산소로 변하는데, 유해산소가 세포를 만나면 노화현상이 초래된다는 가설이다. 유해산소는 자유라디칼을 가지고 있어 반응성이 아주 큰 활성산소를 말한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7000번 이상이 인용됐을 정도로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유해산소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생체효소계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됐다. 예를 들어 과산화물제거효소, 글루타티온과산화효소, 환원 효소 등 활성산소의 생성을 막는 효소들의 활성을 높이거나, 직접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비타민 A, C, E 등을 포함한 다양한 항산화제에 대한 연구가 성행했다.

하지만 산화적 손상설에서도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됐다. 세포증식을 유도하는 경우, 항산화물질을 동시에 처리하면 세포증식 유도가 중단되는 현상이 2006년 ‘사이언스’에 보고됐기 때문이다3). 노화를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했던 활성산소가 오히려 세포증식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동물을 대상으로 항산화제 효과를 비교한 실험에서도 그 효과가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산화적 손상설이 지금까지 기대해온 것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장면. 자신의 나이에 비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을 ‘조로’라고 한다. 조로 환자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특정 유전자의 기능이 저하돼 간접적으로 노화가 일어난 것이 밝혀졌다.


 
DNA 끝에 달려있는 반복서열, 노화의 핵심으로 떠올라

많은 노화 가설들이 풀지 못한 노화의 중요한 미스터리 중 하나는 동물의 종에 따른 수명 차이다. 종에 따른 수명 한계 요인으로 산화적 손상 제어 유전자, 인슐린 신호 전달체계에 관련한 유전자군, 핵산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유전자군 등 다양한 유전적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 온 요인은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DNA 말단에 붙은 의미 없는 반복 염기서열이다. 인간은 6개의 염기서열(TTAGGG)이 100~1000번 정도 반복돼 있다. 1975년 미국 UC샌프란시스코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가 발견했다. 그리고 1984년 텔로미어의 역할까지 밝혀냈다4).

세포의 복제가 여러 번 진행되면 DNA의 말단은 일부 손실된다(왼쪽 그림). 만약 DNA 전체가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면 복제를 할 때마다 우리가 가진 유전정보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텔로미어는 이를 막기 위한 완충제 같은 존재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길면 그만큼 여러 번 세포를 복제할 수 있고, 세포의 수명도 길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손을 만들 수 있는 걸까. 나이가 들어 DNA가 손상된다면 유전자가 후손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될텐데 말이다. 생식세포에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다시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가 있어 텔로미어의 길이를 유지할 수 있다. 블랙번 교수는 텔로미어와 텔로머레이스의 역할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존스홉킨스의대 캐럴 그라이더 교수, 하버드대 의대 잭 조스택 교수와 함께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영원할 것 같던 텔로미어 가설의 영광도 끝이 나다

텔로미어 가설이 학계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헤이플릭 한계’로 불리는 세포의 수명한계를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플릭 한계는 1961년 미국 UC샌프란시스코 레너드 헤이플릭 교수가 발견한 것으로, 정상적인 세포는 복제를 할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학설이다5). 텔로미어 가설은 헤이플릭 한계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헤이플릭 한계가 없어 문제인 암세포에도 텔로머레이스가 있다는 사실은 이 가설의 신뢰도를 매우 높였다.

텔로미어 가설은 오랜 시간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실제 많은 대학들이 ‘일반생물학’ 서적으로 선택하는 ‘캠벨 생명과학’에는 ‘짧아진 텔로미어는 전체적으로 생물체의 노화에 관련되어 있다’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문제점이 많다.

우선 텔로미어의 길이와 개체 수명은 큰 관련이 없다. 쥐는 수명이 사람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도 텔로미어의 길이는 적어도 50배 이상 더 길다. 사람의 경우 노인에게서 채취한 세포의 텔로미어 길이가 젊은 사람의 것에 비해 특별히 짧아지지 않았다는 보고들도 많다.

또한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노화 정도가 비례적으로 차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으나, 실제로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유지하면 그만큼 세포 분열 횟수가 늘어나 암 발생도 함께 증가한다는 보고는 텔로미어 가설의 정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노화 현상 종합한 통일된 노화학설 필요해

이와 같이 노화와 장수의 기전에 대한 수많은 가설이 나오면서도 학설이 정립되지 못한 이유는 이들이 각각 노화현상의 특정한 양상만을 설명하는 가설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가설들을 아우르며 노화현상의 미스터리들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통일된 노화학설을 제안하기 위한 시도도 있다.

모든 노화 현상의 공통점은, 세포가 증식하지 못하는 대신 외부자극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에 주목해 노화가 핵막의 물질이동 제한에 기인한다는 ‘노화핵막장애설’을 제안했다6). 노화가 일어나는 세포 활동을 관찰한 결과 세포의 핵 주위에서 세포사멸이나 분열증식과 같은 활성화 신호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견됐다. 핵과 세포질 사이의 수송에서 신호 전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노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봤다.

유전, 환경, 스트레스 등 노화의 원인은 수없이 많다. 그만큼 연구할 거리도 많다. 이 분야에 많은 후속 연구가 이어져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백세 시대를 맞이하기를 기대한다.


박상철
10년 넘게 한국 백세인 연구를 하고 있는 노화 의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서울대 의대 교수,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삼성종합기술원 부사장을 거쳐 현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를 지내고 있다. ‘100세인 이야기’, ‘노화 혁명’, ‘당신의 백년을 설계하라’등 노화전문서적을 집필했다.


 
+ 더 읽을거리
1) doi:10.1038/270301a0
2) doi:10.1093/geronj/11.3.298
3) doi:10.1126/science.1130481
4) doi:10.1038/310154a0
5) doi:10.1016/0014-4827(61)90192-6
6) doi:10.1007/978-1-4614-0254-1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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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박상철 교수
  • 최지원 기자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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