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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햇빛이 채 창문을 뚫기도 전인 새벽 6시, 서울 용산을 떠나 전북 순창군으로 향했다. 3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순창은 정말이지 고요했다. ‘제대로 도착한 게 맞나’ 싶을 때쯤 순창읍사무소가 눈에 들어왔다.
전북은 전국에서 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장수도*가 높은 지역이다. 그 중 기자가 찾은 순창읍과 복흥면에는 90대 인구만 100명, 100세 이상은 6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날 순창읍에서 과학동아 특집 촬영에 참여한 어르신은 90대 세 명, 89세 한 명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읍사무소 한 켠에 만든 임시 사진관으로 90대 어르신들이 자식의 손을 잡고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고운 모자를 쓰고 오신 이영란 할머니를 시작으로 촬영이 시작됐다. 간만에 ‘각 잡고’ 찍는 사진에 다들 긴장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장수도 : (85세 이상 인구 수/65세 이상 인구 수)×100
“할머니! 여기 보고 한 번만 웃어주세요~! 입 꼬리를 조금만 올리면 너~무 예쁘실 것 같은데요~.” 마치 돌잔치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긴장한 어르신들의 표정을 풀기 위해 그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여기저기서 재롱을 부렸다. 모두 서른을 넘긴 성인이지만, 민망해해 무엇하랴. 90대 어르신들 앞에서는 한낱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최고령이었던 김복순 할머니는 1926년생으로, 6.25 전쟁 때 이미 스물넷이었다!).
모든 이들의 재롱이 우스웠는지 촬영의 중반이 넘어가자 어르신들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순창읍의 ‘베스트 포토상’은 단연 장수 부부 황금순 할머니와 신창우 할아버지였다. “한 번도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며 서로 얼굴 마주보는 것도 어색해 하던 부부는 촬영 마지막에는 두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부부를 바라보던 문광현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 헬스케어연구팀장은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은 장수의 비결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부부는 촬영이 끝나고 읍사무소 근처로 꽃놀이를 떠났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던 황 할머니는 “순창의 꽃이 정말 예쁘다”며 “꼭 보고가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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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89세의 사진 촬영기!
순창읍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복흥면을 찾았다. 사실 촬영이 가능한 어르신을 섭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복흥면에서는 세 분을 섭외할 수 있었지만, 이대로 촬영을 하기엔 조금 아쉬웠다. “한 분만 더 섭외할 수 없냐”는 요청에 강하성 복흥면사무소 주무관은 면사무소 뒤의 노인정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것이 진짜 장수촌의 위엄이구나.’
노인정에는 최소 80세 이상은 돼 보이는 어르신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화투 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자의 방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에 열중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왜 섭외가 어려웠는지 알 것 같았다. 촬영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은 걸. 결국 강 주무관이 긴 설득 끝에 85세 이종수 할아버지를 섭외해 총 네 명의 촬영이 시작됐다. 이 할아버지는 “노인정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며 촬영 내내 어떤 촬영인지를 수 차례 물었다.
올해로 91세인 전창식 할아버지는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 입고 오셨다. 전 할아버지는 과거 복흥면장 출신으로 감회가 새로운 듯 보였다. 카메라 앞에 많이 서본 티가 나는 멋진 자세들이 이어지고 촬영은 수월하게 끝났다.
이날 촬영에 참여한 어르신의 평균 나이는 89세.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정했다. 지팡이가 없으면 오래 걷기 힘든 어르신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의 어르신이 스스로 걷는 데 문제가 없었다. 건강의 비결을 물어도 장수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허허허”라는 웃음뿐. 이쯤 되니 이들의 건강한 장수 비결이 정말 궁금해진다. 기자가 어렵게 알아낸 장수 비결은 3파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우리도 이들처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기사를 다루기에 앞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과학동아는 203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세계 최초로 90세를 넘긴 것을 기념하며, 특집에 90세 즈음의 어르신들을 담았다. 촬영에 흔쾌히 응해주신 전북 순창군 순창읍의 이영란 할머니, 김복순 할머니, 황금순 할머니, 신창우 할아버지, 순창군 복흥면의 서영애 할머니, 박기서 할아버지, 전창식 할아버지, 이종수 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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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어쩌다 장수의 민족이 됐을까
Intro. 남쪽의 작은 고장 ‘순창’, 장수로 흥하다
Part 1. 기대수명 90세는 통계의 환상?
Part 2. 인간은 왜 늙는가
Part 3. 장수촌의 비밀, DNA는 알고 있다
Part 4. 할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