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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장수촌의 비밀, DNA는 알고 있다

만약 우리의 수명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지역에 관계없이 장수인의 비율이 고르게 분포돼야 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장수인이 눈에 띄게 많은 마을들이 있다. 이는 유전자 이외에 수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장수촌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1 장내미생물 탄수화물과 채소 식단이 장수 이끈다 
장수촌의 비밀은 장수인의 분변에 있었다. 분변에는 사람의 장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이 들어 있다. 장내미생물이다. 김동현 경희대 약대 교수는 우리나라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에 사는 이들의 장내미생물을 분석해 2015년 ‘바이오메드센트럴-미생물학’에 발표했다1). 연구팀이 선정한 장수촌은 구례, 담양, 순창, 세 곳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라 백세인이 10만 명 당 20명 이상이고, 85세 이상인 사람의 비율이 7% 이상인 곳으로 선정했다. 도시는 서울과 춘천, 두 곳이다.

이들의 뱃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천차만별이었다. 장수촌의 주민들에서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프레보텔라(Prevotella), 라크노스피라(Lachnospira)와 같이 유익한 미생물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박테로이데스의 미생물 대다수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다당류 분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라크노스피라는 면역계 보호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내미생물 중 하나다.

장수촌에서만 발견된 미생물도 있었다. 페칼리박테리움(Faecalibacterium)으로, 자가면역질환에 효과가 있고, 체내 에너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단쇄지방산’을 만드는 균이다. 반면 도시에 사는 이들의 분변에서는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후벽균, 테네리쿠데스, 방선균류가 많이 발견됐다.
 
한국인의 장수 식단
나물, 된장, 청국장, 고추장, 닭고기, 계란, 생선, 조개류


2001년부터 한국 백세인들의 장수에 대해 연구한 박상철 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는 2016년 한국 음식으로 이뤄진 장수식단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많은 영양분 중에서도 베타카로틴, 비타민 C, E, 칼슘과 셀레늄, 그리고 비타민 B12를 강조했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 E가 고루 많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한국음식은 나물이다. 박 교수는 “한국 백세인의 식단은 거의 식물에서 나온 음식으로 이뤄져 있다”며 “곡물, 콩 등이 들어 있는 밥, 각종 채소로 만든 나물은 우리 밥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산에 사는 백세인과 해안에 사는 백세인을 나눠 조사했는데, 두 집단 내 각각 95.8%, 73.7%에 해당하는 백세인이 비타민 B12와 엽산을 하루 권장량만큼 섭취하고 있었다. 두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으로 장수촌 백세인들의 기본 식사에 하나 이상은 들어가는 음식들이다.


 
장내미생물의 분포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 교수의 2015년 논문에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어린아이와 장수촌 노인들의 장내미생물의 분포가 유사하다는 것. 김 교수는 그 이유를 식단의 차이로 설명했다. 음주나 흡연에 의해서 장내미생물이 바뀐 것도 있지만, 성인이 될수록 식단에 채소보다는 고기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주로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미생물의 분포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김 교수는 “고기를 많이 먹으면 장내에 후벽균이 늘어나고, 채소를 많이 먹으면 박테로이데스의 미생물이 늘어난다”며 “장수촌의 노인과 어린 아이들은 도시에 사는 노인들에 비해 후벽균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말했다.

식단이 장내미생물과 장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미생물및면역학과 그레고르 레이드 교수팀은 미국, 말라위, 베네수엘라 성인들의 식단과 장내미생물을 분석했다. 기대 수명은 미국이 78.6세, 베네수엘라는 75.5세로 미국이 더 높지만, 두 나라의 경제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다른 개발도상국 말라위(57.7세), 부르키나파소(55.8세)에 비해 수명이 매우 높다. 반면 미국은 다른 선진국인 일본(82.7세), 이탈리아(82.4세)에 비해 수명이 짧다.

미국인의 식단은 단백질, 지방, 당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주를 이룬 반면, 베네수엘라는 탄수화물 함량이 매우 높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다. 미국인의 장내미생물 중 가장 지배적인 미생물은 후벽균이었고, 베네수엘라는 박테로이데스였다. 레이드 교수는 논문을 통해 “장내미생물은 건강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장수에 있어 식단의 영향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 소식(小食) 동물 실험에서는 확인된 이론 
식습관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먹는 양이다. 소식(小食)을 하면 장수한다는 말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간요법이 아니었다. “칼로리를 제한하면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의 활성이 달라져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많은 연구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 신호전달체계가 가장 대표적이다. 칼로리를 제한하면 IGF 신호전달의 빈도수가 달라지는 것이 효모, 초파리, 예쁜꼬마선충, 쥐, 영장류 등 다양한 동물모델에서 확인됐다. 또한 IGF와 관련된 유전자를 변형시켜 오래 살거나 일찍 죽는 동물모델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람에서 성장인자와 수명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도 있다.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는 키가 약 1m 남짓인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주민의 대다수는 저신장 질환(왜소증)을 앓고 있고, 매우 장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에 의문을 가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장수연구소 발터 롱고 교수는 왜소증 주민들의 24년간의 진료기록을 추적해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이들이 다른 주민에 비해 암과 당뇨에 걸린 빈도가 현저히 낮았던 것이다. 당뇨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롱고 교수팀은 왜소증 주민 99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2). 그 결과 성장호르몬수용체(GHR)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이 수용체가 고장나면 성장호르몬과 IGF-1의 발현이 심각하게 줄어든다. IGF-1은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촉진시키는 단백질로, 성장에 아주 중요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지면 당뇨병이나 암까지 만들 수 있다.

IGF-1은 인슐린과 마찬가지로 혈중 포도당 농도를 줄여주기 때문에, 과식을 자주 하게 되면 IGF-1의 분비량이 늘어난다. 칼로리 제한은 IGF-1의 양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왜소증인 사람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IGF-1이 거의 생산되지 않으니, 소식을 한 것처럼 칼로리 제한 효과를 가진다.

여기에는 반론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칼로리 제한 실험이 실험실 내의 제한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개방공간에서 사는 인간에게도 같은 효과를 보일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폐쇄공간과 개방야생 공간을 나눠 칼로리 제한에 대해 연구한 사례도 있다. 폐쇄공간에서는 칼로리를 제한한 쥐들이 더 오래 살았지만, 개방공간에서는 오히려 생존율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와 칼로리 제한 가설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대해 박상철 DGIST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는 “이 연구 결과에 대한 재현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아, 얼마나 신뢰도가 높은 연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3 후성유전 고지방식 섭취는 노화의 지름길 
식습관의 효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식단은 1파트에서 등장했던 DNA 메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DNA의 메틸화 정도로 개체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데, 간혹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이 메틸화가 돼 있는 경우가 있다. 이 현상을 ‘연령 가속화’라고 한다(1파트 참조). 이 연구가 발표된 뒤 연령 가속화가 질병과 관련 있다는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독일국립암센터의 로라 페르나 연구원은 연령 가속화가 심혈관질환, 암 유병률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6월 국제학술지 ‘임상 후성유전학’에 발표했다3). 연구팀은 노인 1862명의 자료를 이용했다. 이 중 1260명은 생존해 있고 602명은 사망자로, 사망자 중 235명은 암, 194명은 심혈관 질환 때문이었다. 이들의 실제 나이 평균은 62.5세, 후성 나이는 63세였다. 연구팀은 후성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은 경우 높은 사망률을 보였으며, 암과 심혈관 질환과도 상관관계가 높다고 밝혔다(왼쪽 그래프 참고).

나이가 드는 건 막을 수 없다지만, 후성 나이는 예외다. 살짝 늦추는 것이 가능하다. DNA 메틸화 정도로 나이를 예측하는 후성시계를 개발한 미국 UCLA 생물통계학과 스티브 호바스 교수는 후속연구로 연령 가속화와 식단, 운동 등과 같은 생활습관 요인들의 관계를 밝혀 2017년 2월 학술지 ‘노화’에 게재했다. 호바스 교수는 생선, 과일, 채소, 닭, 오리, 거위등 가금류 고기가 후성 나이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바브라함연구소 울프 라이크 교수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지방 식단을 먹은 쥐들이 저지방 식단을 먹은 쥐들에 비해 연령 가속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연구 결과를 ‘게놈 바이올로지’ 4월 11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201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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