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2. 남극, 가장 뜨거운 바다에서 얼음 대륙이 꽃피다



남극대륙은 지금도 진화 중

남극대륙이 오늘날의 위치에 놓이게 된 건 해저지형들의 ‘밀당’ 때문이었다.

중앙해령은 해양지각을 만들어내 대륙과 대륙 사이에 바다를 넓혔고, 해구에서는 해양지각판을 지구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남극대륙의 위치는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해령은 확장하면서 이동한다. 또 지구 내부 마그마 온도에 따라 해령의 확장 속도, 만들어지는 해양지각의 성분 등이 달라지고 있다.
 
남극대륙 연안에 있는 섬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지금의 모습만 보면 과거 남극이 온난한 대륙이었음을 상상하기 힘들다.


인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남극대륙은 두터운 빙하로 덮인, 수시로 눈 폭풍이 몰아치는 극한의 환경이다. 그러나 한때는 남극도 생물의 지상낙원이라고 불릴 만큼 온화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출생의 비밀은 남극을 둘러싼 불가사의한 불의 고리에 새겨져 있다.


 비밀1  원래 온난한 대륙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은 태평양 남쪽에도 북반구와 균형을 맞출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지의 땅은 오늘날의 호주 같은 따뜻한 대륙일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1820년 러시아의 탐험가 벨링스하우젠이 보스토크호와 미르니호를 이끌고 최초로 발견한 남극대륙은 상상과는 딴판이었다. 유빙이 떠다니는 거친 해역 중간에 빙하로 뒤덮인 혹독한 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1841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클락 로스가 이끄는 탐험대가 남극대륙에서 처음으로 활화산을 발견한 것. 탐험대는 훗날 로스 해라고 이름 붙여질 남극대륙의 가장 큰 내해를 지나 연안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산, 에러버스와 만났다.

남극대륙의 진화를 추론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는 20세기 초에 나왔다. 영국의 로버트 스콧 탐사대가 (비록 남극점 정복의 선수는 빼앗겼지만) 남극대륙에서 채취해 온 표본 15g에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에 서식하는 고생대 식물화석 ‘글로소프테리스’가 포함돼 있었다. 남극대륙이 과거에는 이들과 하나로 엮여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남극대륙이 ‘곤드와나’라는 초대륙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대륙이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그는 남극대륙과 주변 대륙들이 화석 분포가 연속적이고 해안선이 퍼즐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하지만 동료 과학자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남극이 언제 어떻게 왜 떨어져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비밀2  2000만 년 전 독립을 선언하다​

2016년 현재 남극대륙이 곤드와나 대륙의 구성원이었다는 가설에는 과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남극대륙이 지질학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순서까지 비교적 세세하게 다룬 논문들이 여러 개 나와있다(Earth-Science Reviews 113 (2012) 212-270 등).

논문에 따르면 그 이전부터 여기저기 균열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적어도 중생대 쥐라기 말(1억3600만 년 전)까지도 곤드와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극대륙도 이 대륙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1억2000만 년 전 무슨 이유에선지 곤드와나 대륙의 서쪽 부분인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남극, 인도 대륙이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도 서로 갈라져 점점 멀어지면서 남대서양이 형성되고, 호주-남극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인도 대륙이 북진하면서 인도양이 생겨났다. 남극대륙은 이때부터 이미 남극점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은 백악기 말인 8000만 년 전쯤에는 기본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때 남극대륙은 호주와 서서히 분리되는 상황이었다. 호주는 신생대 초기 즉 4000만 년 전까지 매우 느린 속도로 남극과 분리가 되다가, 2000만 년 전 비로소 남극대륙과 완전히 떨어졌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남아메리카 최남단도 완전히 분리되고 드레이크 해협이 열렸다. 남극대륙은 오늘날과 같은 고립된 섬 형태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비밀3  중앙해령의 ‘하드캐리’ 덕분​

남극대륙이 오늘날과 같이 진화하게 된 데는 중앙해령의 역할이 컸다. 중앙해령은 야구공 실밥처럼 지구를 휘감고 있는 약 6만km 길이의 해저 활화산 산맥으로, 이곳에서 올라오는 용암이 굳어 해양지각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해령은 바다가 열리고 대륙이 이동하는 다양한 지구현상의 기준점이 된다.
 
남극대륙은 이런 중앙해령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차가운 대륙이 용암을 지속적으로 분출하는 거대한 불의 고리로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 아이러니하다. 특히 남극 중앙해령의 길이는 전체 중앙해령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협곡인 화성의 마리네리스 협곡(길이 3000km, 폭 600km)보다도 규모가 앞선다. 남극 중앙해령은 모양도 마치 눈동자(남극대륙)를 감싼 거대한 눈(目)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남극 중앙해령은 또 부분마다 특징이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다른 중앙해령과 달리 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을 모두 접하고 있는데, 인접한 바다에 따라 해령이 생겨난 시점과 확장하는 속도, 해양지각의 성분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평균적으로는 1년에 대략 0.2~0.7m 정도 속도로 확장한다). 각각의 부분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주변 해양지각과 ‘밀당’을 해왔는지를 알아야 남극대륙과 남반구의 다른 대륙들이 왜 오늘날의 위치에 오게 됐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중앙해령에서 형성되고 있는 해양지각의 지자기 정보를 이용해 해양지각의 정확한 연령과 남극 중앙해령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 중앙해령에서 분출된 용암은 식을 때 그 속에 들어있는 자철석이 당시 지구 자기장의 방향대로 배열된다(마치 자기 테이프에 음악이나 영상을 기록하는 원리와 유사하다). 이것과 이미 알고 있는 지구 자기장 변화를 비교하면 지각의 연령 분포를 추론할 수 있다. 즉 해저가 어떤 순서로 확장돼 왔는지 시나리오를 재구성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왜’ 곤드와나 대륙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가를 밝히는 일뿐이다. 현재로썬 플룸이라고 하는, 지구 하부 맨틀에서부터 올라오는 맨틀의 강력한 상승작용과 관련 있다는 가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맨틀 플룸이 상승해 대륙의 하부를 강타하면서 대륙지각에 균열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지판이 상호작용하는 힘이 변하면서 해저지형이 변해왔을 것이란 가정이다. 실제로 남극대륙 주변 곳곳에는 이런 대규모 화산활동의 증거들이 남아있다. 제임스 클락 로스 탐사팀이 목격했다는 에러버스 산의 화산활동 역시 맨틀 플룸의 잔존 효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밀3  고립된 뒤 더 추워졌다

그렇다면 남극대륙은 왜 두터운 빙하로 덮이게 됐을까. 우선 남극대륙이 남극점을 포함하는 고위도에 위치하고 있다. 위도가 높기 때문에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평균 온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조건일 뿐, 남극대륙에 지금과 같은 막대한 양의 빙하가 덮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과학자들은 남극대륙 주변에 형성된 특별한 해류에서 나머지 답을 찾고 있다. 87지도에서 보면 남극대륙은 마치 섬처럼 바다에 고립돼 있고 주변으로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이 원형으로 연결돼 있다. 저위도에서는 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과 태평양이 거대한 대륙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오직 남극대륙 주변에서만 바다와 바다가 서로 연결된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남극 순환류라는 매우 차갑고 빠른 해류가 돌고 있다.

과학자들은 2000만 년 전 호주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이 남극에서 본격적으로 떨어져 나가면서부터 남극 주변에 순환류가 돌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따뜻한 해류가 남극대륙까지 흘러들어오는 것이 완전히 차단돼 남극대륙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이후에는 대륙의 온도가 떨어지면서 눈이 녹지 않고 쌓여 빙하가 형성되고, 빙하가 다시 태양 빛을 반사해 남극대륙의 온도를 추가로 떨어뜨리는 ‘양의 되먹임(positive-feedback)’ 효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오늘날 남극의 혹독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지리적 조건들을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곤드와나로부터의 독립과 남극대륙이 고립되면서 나타나는 환경 변화는 남극 해역 주변 퇴적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시대별로 퇴적물 코어를 분석해 해류와 해수 온도의 변화, 빙하의 출현 시기와 양을 알아내는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박숭현(shpark314@kopri.re.kr)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학원에서 중앙해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지구및행성과학과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현재는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극지연구소에서 남극 중앙해령 탐사를 주도했으며 판구조론과 고체 지구의 순환을 연구하고 있다. 중앙해령 연구의 국제협력기구인 ‘인터리지’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숭현 극지연구소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책임연구원
  • 일러스트

    박장규

🎓️ 진로 추천

  • 지구과학
  • 해양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