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노벨과학상 2015] PART 1 물리학상 ‘유령입자’의 변신을 확인하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또 한 차례 입자물리학에 돌아갔다. 중성미자의 진동변환을 발견한 물리학자들이 상을 받았다. 화학상은 세포가 손상된 DNA를 스스로 복구하는 원리를 밝힌 과학자들이 차지했다. 생리의학상은 기생충과 말라리아 치료 연구에 한 평생을 바친 이들에게 돌아갔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필자는 e메일을 두 통 썼다. 약 30년간 연구를 함께 한 카지타 교수와, 역시 가까운 지인인 맥도날드 교수에게 보내는 축하의 메일이었다.

이들은 중성미자의 ‘진동변환’을 발견한 업적으로 상을 받았다. 중성미자와 관련된 업적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벌써 네 번째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중 일부로, ‘유령입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물질과의 반응이 거의 없고 질량 등 측정되지 않은 성질이 많다. 따라서 감춰진 성질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상이 주어졌다. 이번에 상을 받은 진동변환도 과학자들로 하여금 중성미자에 질량이 존재함을 알게 했고, 이를 통해 기존에 정립했던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 보완이 필요함을 알려줬다. 표준모형은 현재까지의 입자와 관련된 모든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 진동변환을 통해 표준모형을 뛰어넘는 대통일이론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모습을 바꾸는 중성미자를 관측하다

중성미자는 핵이 분열하거나 융합할 때 생성되는 입자다. 빛 다음으로 우주에 많이 존재하는 입자로, 매 초 태양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으로 방출하는 중성미자 700억 개가 엄지 손톱만한 면적을 지나가고 있다. 물론 우리는 전혀 느낄 수가 없지만, 중성미자는 태양이 오랜 세월 동안 안정되게 빛날 수 있도록 하고 초신성과 같이 별이 폭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질량이 너무 작아 아직 측정도 하지 못했지만, 이번 노벨물리학상의 업적인 진동변환 덕분에 질량의 ‘차이’는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중성미자는 1930년경 핵붕괴에서 에너지와 운동량이 보존되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볼프강 파울리가 제안한 입자다. 관측이 불가능하리라 여겨졌지만, 미국 연구팀이 1956년경 미국의 핵발전소 부근에서발견하는 데 성공했고, 연구를 이끌었던 미국의 물리학자 프레데릭 라이네스는 199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할 당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으며 3년 후 타계했다. 1962년 또 다른 종류인 뮤온 중성미자를 발견한 레온 레더만, 멜빈 슈왈츠, 잭 슈타인버거가 198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마사토시 코시바와 미국의 레이먼드 데이비스는 태양과 초신성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관측했고, 이들 역시 우주를 보는 인류의 시야를 넓혔다는 업적으로 2002년 노벨상을 받았다.

필자는 코시바 교수가 책임자로 진행했던 카미오칸데 실험에서 태양 중성미자를 관측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데이비스 교수는 박사 논문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다. 누구보다 이들의 업적을 가까이서 지켜본 셈이다.
 
당시 중성미자 물리학은 아직 미완성이었고, 더 많은 노벨상 업적이 기대되는 분야였다. 대표적인 난제가 바로 진동변환이었다.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핵자 안에는 쿼크라는 입자가 존재한다. 쿼크는 모두 여섯 종류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는 서로 변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세 종류의 중성미자 사이에서도 변환이 일어나는지 궁금해 했다.
 
super - kamiokande
 
일본에는 대통일이론에서 예측한 양성자 붕괴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1983년에 지은, 약 3000t의 정제된 물을 사용하는 ‘카미오칸데’ 검출기가 있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는 이 검출기를 개조해 태양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987년 초신성으로부터 온 중성미자를 역사상 처음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고(코시바 교수) 1988년에는 태양 중성미자도 관측했다. 이 무렵 동경대 연구원이었던 카지타 교수는 양성자 붕괴 현상을 탐색하고 있었다. 지구 대기에서 만들어진 뮤온 중성미자가 관측을 방해했는데, 이상하게 뮤온 중성미자의 양이 예상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지하 검출기로 날아오는 도중에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변환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 검출기보다 약 20배 더 큰 수퍼카미오칸데 검출기를 건설해 1996년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지하 공간에 물 5만t을 채우고 약 1만 개의 광센서를 배치한 거대한 시설이었다. 1998년, 카지타 교수는 대기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변환함을 분명히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지하 검출기를 기준으로, 바로 위쪽 대기에서 약20~30km를 날아온 중성미자는 이론이 예측한 양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대기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는 1만2000km의 먼 거리를 날아오면서 진동변환에 의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일본, 미국, 한국의 국제공동연구로 진행되었으며 카지타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논문에는 필자와 서울대 연구진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수퍼카미오칸데 실험의 책임자는 동경대의 요지 토츠카 교수였다. 그는 코시바 교수의 제자인데 1998년 대기 중성미자 진동변환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이 유력했다. 2001년 수퍼카미오칸데에서는 광센서의 절반 정도가 폭발하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 토츠카 교수의 지도력으로 금방 복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암으로 타계하는 바람에, 이 결과를 얻는데 리더 역할을 했던 카지타 교수가 올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됐다.


태양 중성미자 변신을 측정한 캐나다 국제공동연구팀

코시바 교수와 함께 2002년 노벨상을 받은 데이비스 교수는 최초로 태양 중성미자를 측정했다. 그는 1968년부터 실험을 시작했는데, 이 실험에서도 측정된 중성미자의 수가 예측된 양의 3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를 ‘태양 중성미자 문제’라고 불렀다. 필자가 박사학위 연구를 했던 카미오칸데 실험에서도 1988년 태양 중성미자를 측정했는데, 역시 예측된 양의 2분의 1 정도였다. 수퍼카미오칸데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학계에서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전자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바뀌어 관측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했다.

아서 맥도날드 교수는 태양 중성미자 문제가 정말 진동변환 때문인지 밝혀내기 위해 흔히 존재하는 보통의 물(H2O) 대신에, 구하기 힘들고 비싼 중수(D2O)를 정부로부터 빌려 사용했다. 그는 캐나다 서드버리 지역에 위치한 1.5km 깊이의 탄광을 개조한 뒤, 투명한 대형 아크릴 원통에 약 1000t의 중수를 채워 서드버리중성미자관측소(SNO)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1999년부터 태양 중성미자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했다.

카미오칸데나 수퍼카미오칸데 실험에서는 태양 중성미자가 물 속의 전자와 반응해 신호를 낸다. 이 경우 진동변환한 전자 중성미자는 쉽게 관측할 수 있었지만 뮤온 혹은 타우 중성미자는 관측하기 힘들었다. 반면에 중수 속의 중수소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미약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진동변환으로 생긴 뮤온과 타우 중성미자도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맥도널드 교수와 SNO 실험 연구진은 2001년 표준모형이 예측한 태양 중성미자의 양을 전부 측정해냈고, 이를 통해 중성미자 진동변환이 일어났음을 명확히 확인했다.

캐나다 정부는 이 업적에 고무돼 SNO 지하관측연구시설을 구축해 여러 실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필자는 이 연구시설에서 진행되는 실험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위원으로 3년간 활동하며 맥도널드 교수와 가까워졌다. 그는 우리나라와 공동연구를 희망했고 국내의 영광 원자력발전소 부근에서 진행 중인 진동변환 측정 실험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세 종류의 중성미자 사이에 일어나는 변환에는 변환 세기를 나타내는 세 종류의 상수가 존재한다. 이 상수는 θ23, θ12, θ13라는 세 각도로 표시한다. 이번 노벨물리학상의 업적인 진동변환 발견을 통해 카지타 교수는 θ23, 맥도널드 교수는 θ12의 변환 세기를 측정했다.

한국에서도 이 변환 세기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이 중에서 가장 약한 변환 세기인 θ13를 측정해내고자 2006년부터 영광 원자력발전소 부근에 중성미자 검출시설을 만들기 시작했고, 2011년 완공해 레노(RENO) 실험을 진행했다. 2012년 중국의 다야베이(Daya Bay) 실험과 한 달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원자로 중성미자의 변환을 측정해 θ13를 알아냈다. 이 변환 세기는 워낙 작아 측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를 알아냄으로써 비로소 세 종류의 중성미자 변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난제에 대한 돌파구도 생겼다. 우주에 물질만이 존재하고 반물질이 없어진 이유, 즉 CP 대칭성 깨짐 문제와 중성미자의 질량 순서를 결정하는 문제다. 필자의 연구팀도 중성미자의 질량 순서를 결정하는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중성미자는 여전히 많은 난제를 품은 미지의 영역이다. 앞으로 어떤 난제가 풀릴지, 어떤 노벨상이 나올지 기대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노벨과학상 2015] PART 1 물리학상 ‘유령입자’의 변신을 확인하다
PART 2. 화학상 DNA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유
PART 3. 생리의학상 자연에서 찾은 기생충 특효약
PART 4. 이그노벨상 실험체? 제가 한번 돼보겠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 진행

    변지민, 송준섭, 최지원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화학·화학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