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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화학상 DNA가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이유





이번 노벨 화학상은 세포 내 DNA 복구 메커니즘을 밝힌 과학자 세 명에게 돌아갔다. 토마스 린달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명예교수, 폴 모드리치 미국 듀크대 의대 생화학부 교수, 아지즈 산자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생화학 및 생물리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인간의 DNA는 자외선이나 각종 발암물질에 손상받기 쉽다. 정상적으로 대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종종 DNA 손상이 생긴다. 그럼에도 인간의 유전물질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는 이유는 다양한 DNA 복구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DNA 손상을 복구하지 못하면 노화나 암 발생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의 공로는 ‘세포가 손상된 DNA를 어떻게 복구하는지 밝혀, 새로운 항암제 개발에 돌파구를 제공한 것’으로 요약된다.

DNA 안정성에 의문을 품다

1938년생인 토마스 린달 교수는 1960년대 말 ‘DNA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당시 린달은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DNA의 사촌격인 RNA를 연구하고 있었다. 과학계에선 DNA가 매우 안정한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린달은 RNA가 열에 쉽게 변성되는 걸 보면서 DNA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몇 년 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린달은 본격적으로 의문을 풀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우선 DNA가 느리지만 분명히 부식(decay)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유전체 부식속도는 매우 빨라서 그대로라면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기작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 린달은 복구효소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시토신의 오류에 주목했다.

DNA를 구성하는 뉴클레오티드는 염기와 당, 인산 등 세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 염기에는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 4종류가 있는데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마주보고 짝을 이룬다. 그런데 시토신은 아미노기 하나를 잃고 RNA의 염기인 우라실로 변형되기 쉽다. 시토신이 우라실로 바뀌면 맞은편에 있는 구아닌과 짝을 이루지 못한다. 만약 이 어긋남이 정상적으로 복구되지 않으면 DNA 염기서열 내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나아가 악성 종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린달 교수는 글리코실레이스라는 효소가 염기의 어긋남을 인지하고 우라실을 잘라내며, 이어서 다른 효소들이 협동해 DNA 염기서열을 정상적으로 복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1974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DNA 복구’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열어젖힌 기념비적인 성과였다.

짝을 잘못 찾은 염기를 바로잡는 표지판

1946년 미국 뉴멕시코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폴 모드리치 교수는 ‘DNA 불일치 복구’를 밝혔다. 생물학 교사였던 아버지는 1963년 모드리치를 붙잡고 “넌 반드시 DNA라는 걸 알아야 해”라고 이야기했다. 그 해는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해였다. 몇 년뒤, DNA는 진짜 모드리치의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스탠포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학생 때부터 듀크대 조교수로 갈 때까지 그는 DNA 연결효소, DNA 중합효소, 제한효소 EcoRI 등 DNA에 영향을 주는 효소들을 연구했다. 1970년대 말 모드리치의 관심은 DAM 메틸레이스라는 효소로 옮겨간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DNA 복구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세포에서 DNA가 복제될 때, 간혹 짝이 맞지 않는 뉴클레오티드가 새로운 DNA 가닥에 들어갈 수 있다.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는 흔한 사건이다. 이 오류를 인지하고 복구하는 시스템이 바로 DNA 불일치 복구다. 이때 중요한 건 ‘메틸화’다. 모드리치는 DAM 메틸레이스라는 효소를 연구하면서 메틸기가 ‘수정할 부분’을 가리키는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NA를 자르는 ‘가위’인 제한 효소가 이 메틸기를 찾아온다. 제한 효소는 메틸기가 붙은 DNA 가닥을 원본으로 인식하고, 메틸기가 없는 다른 가닥에서 잘못된 부분을 잘라낸다. 이후 여러 효소들이 협동해 염기쌍을 정상적으로 복구한다.

모드리치 교수는 이 중요한 복구 시스템을 구성하는 효소 단백질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 특성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더불어 이 복구 시스템이 비활성화되는 것이 유전으로 인한 대장암의 가장 흔한 원인임을 입증했다.

자외선에 손상된 DNA 복구하는 효소

필자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아지즈 산자르 교수는 1946년 터키 남동부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팔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63년 이스탄불 의대에 진학한 그는 생화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1973년 생화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 텍사스대 클로드 루퍼트 교수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박사과정 초기에는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았다. 산자르 교수는 “동료 중 한 명은 나에게 터키로 돌아가 의사를 하는 게 낫겠다며 면박을 주곤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에 매진한 끝에 자외선에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효소인 포토라이에이스(photolyase)의 유전자를 복제배양하는 데 성공해 박사논문으로 발표했다.
 


중요한 연구성과였지만, 논문은 학계에서 관심조차 못 받았다(이 성과로 노벨상을 받은 건 아니다). DNA 복구를 다루는 연구실 3곳에 연락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예일대 의대에서 실험실 기술자라는 작은 일자리를 어렵게 얻었다. 산자르는 좌절하지 않았다. 다행히 예일대는 당시 DNA 복구를 연구하는 중심지였다. 그는 오히려 이곳에서 노벨상을 안겨준 성과를 거뒀다.

산자르 교수는 uvrA, uvrB, uvrC 유전자의 발현으로 생기는 효소들을 발견해 특징을 밝혀냈다. 이 효소들은 뉴클레오티드에서 자외선으로 손상된 부위를 포함해 12~13개의 뉴클레오티드를 잘라내는 효소였다. 1983년 이 사실을 밝힌 논문은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산자르는 성과를 인정받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생화학 교수로 부임해 현재까지 해마다 수많은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필자가 산자르 교수의 연구실에서 수학하며 가장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성실한 연구 자세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산자르교수의 모습은 많은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오전 7시경 연구실로 출근해 밤늦게 퇴근을 하고, 일주일 중 토요일 오후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연구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항상 주위의 학생들과 연구원들에 게 열심히 연구하는 자세를 강조했으며 게으른 이들은 따끔하게 혼내곤 했다. 산자르 교수는 “내가 박사과정 대학원생 시절이었을 땐 퇴근하기 전에 나보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박사 지도교수였던 클로드 루퍼트는 산자르가 노벨상을 받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기억하는 그는 일주일에 90시간을 연구실과 도서관에서 보낼 정도였다”고 말했다. 산자르 교수는 연구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성실함이라고 판단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더라도 열심히 연구하지 않으면, 평범한 두뇌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결국 뒤처지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에는 뜨거운 연구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연구

뉴클레오티드 절단 복구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 사람은 자외선에 노출됐을 때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 산자르 교수는 현재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고 있는 항암제들이 어떻게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키는지 밝혀내, 더 나은 방법으로 암을 치료하기 위한 임상 연구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의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DNA의 손상·복구는 암 발생 및 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DNA 손상·복구에 관련된 여러 유전자의 결핍이나 변형이 다양한 질병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도 수없이 발표되고 있다. 수상자들의 업적은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받을 것이고, 향후 임상분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준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진행

    변지민, 송준섭,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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