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어려워요 | 과학동아 X Geekble
이 이야기는 차디찬 손을 녹이기 위해 입김을 호호 불어야 했던 작년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 명의 긱블러인 메이커 지뇽쿤, 인턴 메이커 화니, PD 태정태세 님은 ‘이런 추운 겨울에는 어떤 걸 만들면 딱 맞을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셋 중 누군가 “요즘 붕어빵 가게가 별로 없지 않아요?”라고 무심코 말을 꺼냈습니다. 셋 중 누군가 또 “맞아요, 맞아. 그럼 자동으로 붕어빵 만들어 주는 기계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라고 맞장구를 쳤고요. 그렇게 ‘붕어빵 자동 조리 장치 만들기 원정대’가 꾸려졌더랬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넘고 넘어 두 달은 족히 걸려야 그 기계를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3D 프린터 작동 원리 응용한 노즐 움직임
아이디어는 긱블스럽고 좋았습니다. 원래 붕어빵을 만들 때 손으로 직접 붕어빵 틀에 반죽과 앙금을 넣어야 하는데, 이걸 자동화하기로 했거든요. 3D 프린터에서 원하는 만큼 재료가 나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듯, 반죽과 앙금이 필요한 만큼만 나오고 딱 끊기는 기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붕어빵 가게에 인간미는 있어야 하니 뒤집고 꺼내는 건 사람이 하도록 남겨놨습니다.
그런데 원정대의 고난은 사전 탐사 단계부터 시작됐습니다. 실제 붕어빵 크기를 알기 위해 거리로 나섰는데요. 어찌 된 게 거리에 붕어빵 가게가 없었습니다. 날씨도 추웠고, 사람들이 붐비는 퇴근 시간대였는데도 말이죠.
지하철 성수역에서 건대입구역을 거쳐 어린이대공원역까지. 서울에서도 인파가 많은 이 동네에서 붕어빵 가게는 단 3곳, 그마저도 문이 닫힌 상태였습니다. 아쉬운 대로 근처 편의점에서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공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붕어빵의 크기는 겨울마다 붕어빵을 손에 움켜쥐었던 감각을 되살려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반죽과 앙금을 자동 출력해주는 장치부터 설계해 보죠. 이 장치는 3D 프린터의 원리를 응용할 겁니다. 3D 프린터에서 재료를 출력하는 장치의 작동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재료를 분사하는 헤드와 분사된 재료가 쌓이는 베드의 움직임이 중요한데요. ‘카르테시안 방식’은 헤드와 베드가 XYZ축을 분배해 움직이는 반면, ‘델타 방식’은 베드는 그대로 있고 헤드만 이동 하는 방식입니다. 헤드와 베드가 모두 움직이는 카르테시안 방식은 정밀도가 높고, 델타 방식은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원정대는 카르테시안 방식 중 헤드만 XY축 평면 이동을 하는 코어XY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붕어빵 기계에서 반죽과 앙금을 부을 때 수직 이동은 크게 필요하지 않고, 붕어빵 틀이 가열 중에 움직이면 위험하기 때문에 베드는 움직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헤드의 평면 이동은 X-Y 플로터 레일이라는 장치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X-Y 플로터 레일에는 헤드가 X축과 Y축을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두 쌍의 봉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코딩으로 입력된 값에 따라 헤드가 영역 내의 모든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헤드를 움직이기 위한 동력으로는 위치를 아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스텝모터를 사용했습니다. 이로써 ‘이동부’ 설계를 완료했습니다.
흐물흐물 녹아버린 붕어빵 기계
붕어빵 기계에는 이전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품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동부를 포함해 가열부, 고정부, 출력부, 제어부, 붕어빵 틀 등 총 6개 부분으로 나눠 설계했습니다.
한 부분씩 살펴보자면, 우선 가열부 안에는 LPG 가스버너를 놓고 위에는 붕어빵 틀을 거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알루미늄 판재로 직육면체 구조를 만들었고, 위에는 붕어빵 틀 모양에 맞게 구멍을 내고, 아래는 가스버너가 고정되도록 홈을 팠습니다. 가열부와 고정부, 이동부에 사용된 부품 대부분은 3D 프린터와 고속 절단기, 드릴링 머신 등을 사용해 직접 제작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로 출력한 부품들의 재료는 열에 강한 내열 PLA 필라멘트를 사용했습니다. 붕어빵을 구울 뜨거운 불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에 부품이 녹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죠. 완벽한 내열을 위해 3D 프린터에서 채우기 밀도도 100%로 설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붕어빵 틀이 완성되기 전에 가열부 윗 부분이 뻥 뚫린 채로 불을 한 번 켜봤는데요. 아뿔싸…. 3D 프린터로 제작한 부품들이 불에 직접 닿으면서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불을 켜기 직전 태정태세 님이 “이거 기계가 녹아내리는 건 아니겠죠?”라고 말한 것이 현실이 됐습니다. 녹아내린 부품들은 복구가 안됩니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새로 제작했습니다.
봄맞이 긱블 붕어빵 가게 오픈
이동부와 가열부를 다시 만듭니다. 반죽과 앙금을 보관하다 출력하는 출력부도 끝냈습니다. 제어부에는 출력부와 이동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코딩한 아두이노 보드가 탑재됐습니다. 제어부의 빨간 스위치만 누르면 전력이 공급되면서 각 부위가 움직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붕어빵 틀은 3D 프린터로 붕어빵 모형을 만든 뒤, 서울 왕십리의 주물 공장을 찾아가 알루미늄 틀로 완성했습니다.
이제 작품은 얼추 완성됐고, 코딩하기에 앞서 직접 붕어빵을 먼저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원정대 중에서 붕어빵을 구워본 사람이 없습니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요. 붕어빵 틀을 가스버너 위에 올려놓고 직접 적당량의 반죽과 앙금을 넣고 구워봤습니다. 역시나 한 번에 될 리가 만무합니다. 한 번은 반죽이 안 익고, 한 번은 반죽이 넘쳤고, 또 한 번은 너무 타서 눌어붙었습니다.
특히 눌어붙는 건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알루미늄 틀에 바로 반죽을 구우면 안 된다는 걸 직접 해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원정대는 프라이팬이나 냄비 바닥처럼 코팅을 추가로 입혀 붕어빵 틀을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적당량의 반죽과 앙금, 그리고 불의 세기와 가열하는 시간을 알게 됐습니다. 이 결과에 따라 코딩도 완료했습니다. 비로소 붕어빵 자동 조리 장치가 완성됐습니다.
앞서 기계가 녹아내린 것 외에도 일일이 다 언급을 못했을 뿐 설계하고 제작하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점과 맞닥뜨렸습니다. 출력부에 보관한 반죽이 새 질질 흘러나오기도 하고, 코딩 과정에서 숫자 하나가 잘못 입력돼 반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언 두 달 반에 걸친 긴 여정에 인턴 기간이 끝난 메이커 화니 님 대신 또 다른 메이커 민바크 님이 바통을 이어받아 원정대에 합류했습니다.
어느덧 따뜻해진 3월 초, 드디어 최종 시연회가 열렸습니다. 붕어빵 가게들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긱블의 공방 앞에는 붕어빵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손님은 긱블러들.
긴장된 마음으로 스위치 버튼을 누르자 노즐이 X-Y 플로터 레일을 따라 착착 움직이고, 반죽과 앙금이 슉슉~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숙달되지 않은 붕어빵 자동 조리 장치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붕어빵이 아닌, 반죽 가득한 ‘붕어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손님들은 붕어빵의 외모에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원정대 중 반죽 장인이 있었던 것인지 맛만큼은 찰집니다. 다음 겨울에 더욱 완벽한 붕어빵 자동 조리 장치 2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메이커의 길은 역시 멀고 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