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름다운 눈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수정처럼 맑은 눈’이라고 부른다.
수정은 석영의 변종 광물 중에서도 불순물 없이 순수하게 결정을 이룬 것이다. 수정을 영어로 Rock Cry stal이라고 부르는데, Crystal은 그리스어로 얼음을 뜻하는 Krystallos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바위 얼음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위처럼 변하지 않는 얼음, 즉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만큼 수정은 투명하고 깨끗한 광물이다.
그 신비로운 투명함 때문에 수정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품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 점술가들이 미래를 예지하는 수정구 말이다,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등의 영화를 보면 신비한 힘을 가진 보물로 수정을 묘사한다.
석영은 장석에 이어 지각에서 두 번째로 흔한 광물이다. 지각에 가장 많이 함유된 원소인 산소(O)와 두 번째로 풍부한 원소인 규소(Si)가 결합했다. 흔하기 때문에 생성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다.
자연 상태에서는 순수한 SiO2만으로 결정을 이루는 것은 아주 드물고, 비슷한 크기의 불순물 이온들(철, 티타늄, 망간 등)이 부분적으로 규소 대신 산소와 결합해 다양한 색상의 변종들이 생겨난다. 보라색 자수정과 노란색 황수정, 분홍색 장미수정 등이다.
또 석영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결정화되는데, 내포된 물질과 결정을 이루는 속도나 온도 차이로 인해 다른 광물을 포획한 형태가 되기도 한다. 금홍석이나 적철석, 전기석 등 여러 종류의 광물을 결정 안에 가둬 다양하고 신비스런 모습을 빚어낸다.
이처럼 다양한 석영의 변종 광물은 인류 문명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3, 4월호에 소개한 플린트나 흑요석은 도구로써 초기 인류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줬다.
내 손목 위에도 수정이 있다
과학적인 분석 능력이 점점 발달하면서 각종 광물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물리·화학적, 광학적 특성들이 속속 밝혀졌다. 그리고 그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태어났는데, 석영이 대표적이다.
석영은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압전효과’를 나타낸다. 반대로 석영에 전류를 흘리면 진동을 하는데, 1927년 벨연구소의 워렌 모리슨 등이 그 원리를 이용해 석영 진동자 시계를 발명했다. 손목시계의 시계판에 ‘Quartz’라고 써있는 시계가 바로 석영 진동자 기술을 적용한 시계다.
석영 진동자 시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스위스 장인들의 솜씨로 만든 정교한 기계식 태엽 시계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9년 석영 진동자 기술의 특허를 사들인 일본 기업 세이코가 값싸고 훨씬 정확한 손목시계를 개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기계식 시계는 장인들의 솜씨에 의해 정밀도가 좌우되고 가격도 비싸지만, 석영 시계는 값도 싸면서 아주 정확하다.
그 결과 기존 기술에 안주하고 방심했던 스위스의 시장 지배력이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됐다. 이후 스와치 등을 중심으로 한 스위스의 시계제조사들도 석영 진동자 시계를 개발해 옛 영광을 되찾기는 했지만,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었다.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경영 혁신 사례 중의 하나다.
반도체 만드는 현대판 ‘현자의 돌’
석영의 쓰임새는 손목시계에 그치지 않는다. 중세 이후 연금술사들이 찾아 헤맨 ‘현자의 돌’, 바로 반도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등 과학 기술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반도체라는 마법의 돌 덕분이었다. 이 역시 석영으로 만든다.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석영에 들어 있는 규소가 대표적인 재료다. 규소는 자연 상태로는 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규소가 가장 많이 포함돼 있는 석영에서 규소를 분리해낸다. 분리된 규소를 불순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으로 정제한 뒤 단결정으로 성장시키고, 이를 얇은 원판형으로 가공한 것이 반도체 웨이퍼다. 이를 기판으로 해서 전자회로를 만들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한다. 우리의 오랜 조상들이 석영의 일종인 플린트나 흑요석 등을 이용하는 석기문명을 발전시켰다면, 지금 우리는 석영의 성분인 규소를 이용한 반도체 중심의 문명 속에 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혹자는 현대를 제2의 석기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이지섭_director@naturehistory.com
광물 수집가이자 이야기꾼. 현재 희귀광물 3000여점을 전시하는 ‘민 자연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 30년 넘게 근무하다 부사장으로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