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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작지만 끈질긴, 가볍지만 정교한

‘피이~’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해변을 울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급히 망원경을 돌렸다. 맨눈으로 잘 보이진 않지만 화면 속에 검은 얼룩과 이상하리만치 길고 붉은 부리가 보인다. 검은 머리와 흰 배가 마치 턱시도를 입은 듯 하다해서 ‘갯벌 위의 신사’라는 별칭을 가진 검은머리물떼새다. 녀석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갯벌 진흙 속에 부리를 박고 한참 동안 먹이를 찾는다. ‘피이~’ 동료들에게 위치를 알리는 또 다른 녀석의 소리. 14년 동안 새를 연구해온 빙기창 자연환경복원연구원 박사는 들리는 소리만으로 25마리 정도가 해안가에서 먹이를 먹고 있음을 짐작했다.

뛰어난 이동성, 전략의 승리

지난 4월 8일 충남 태안군 드르니항. 굽은 해안선이 육지 속으로 움푹 파고든 만에서 녀석들과 첫 조우를 했다. 검은머리물떼새는 몸길이가 45cm에 달하는 대형 도요새로, 이맘때 금강 하구 갯벌과 서해안에서 자주 눈에 띈다. 해변은 녀석들과 큰뒷부리도요와 같은 대형 도요목 철새들의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와 같은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보낸 뒤 번식을 위해 시베리아나 만주 등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이다. 1만km가 넘는 긴 비행을 하고 있는 녀석들은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뾰족한 부리로 바위틈새, 갯벌 깊이 숨은 조개나 게 따위를 찾아 쉴 새 없이 땅을 헤집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는 철마다 다른 철새를 볼 수 있다. 이날 해안에서 본 도요목 철새와 같이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는 사이에 중간 기착지로 잠시 거쳐 가는 철새들이 있는가 하면, 제비나 백로, 꾀꼬리와 같이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여름 철새들도 있다. 또 매년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하는 기러기와 오리류, 두루미류 새들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동성’. 좋은 환경과 먹이가 있는 곳으로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새만이 가진 능력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들고, 폭풍우나 비행기, 높은 빌딩, 맹금류의 공격 등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빙 박사는 새들마다 전략이 있다고 설명했다. 태안 해변에서 본 큰뒷부리도요의 경우 한 번 비행을 시작하면 해발 6000m 고도에서 내려오지 않고 수일 동안 날아간다. 고도 수천m 높이의 순풍을 타고 최적의 이동 경로로 이동해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고 몸집이 큰 새들이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는 더 높이 날아가는데, 높이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바다 위나 산비탈에 생기는 따뜻한 상승 기류를 타고 적당한 높이에 올라간 뒤 서서히 하강 비행하고, 또 다시 상승 기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식이다. 이와 달리 몸무게가 100원짜리 동전 1개 무게(6g)인 노랑눈썹솔새는 땅 위를 수십m 높이로 낮게 날면서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한다. 1550km 이상 이동하는데 중간 중간 나뭇가지나 바위 등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전남 흑산도와 태안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에서는 철새가락지조사를 통해 새들의 이동성을 파악하고 있다. 발목에 가락지를 채워 날린 뒤 회수되는 위치를 기록하는 조사인데, 몸집이 작은 새에 주로 적용한다. 이 조사엔 전 세계 조류학자들이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227종, 5만 마리가 넘는 개체에 가락지를 채워 보냈다.



‘갯벌 위의 신사’라는 별칭을 가진 검은머리물떼새. 우리나라를 거쳐 러시아로 날아가는 도요목 철새들은 긴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먹이 활동에 전념한다.



철새 이동 고도

 

육·해·공 접수한 뛰어난 사냥꾼

굳이 철새의 경이로운 이동성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비행은 새들만이 가진 큰 능력이다. 비행은 새를 지상 최고의 사냥꾼으로 만들어준다. 같은 날 오후에 방문한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이하 구조센터)에서는 비행의 필수 요소인 날개와 깃털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었다.

늦은 오후 구조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강력한 눈빛이 기자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과연, 입구에선 매,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올빼미 등 맹금류 5마리가 횃대에 나란히 앉아 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조센터에서 치료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적응훈련을 받고 있는 녀석들이다. 구조센터 소속 수의사 김희종 박사는 이들의 수술과 재활운동을 담당하고 있다. 김 박사는 비교적 온순한(?) 녀석이라며 그중 한 마리를 팔위에 얹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녀석의 발톱을 보니 제안이 썩 내키진 않았다.

놀라운 지구력의 비밀
 

구조센터에서 마주친 맹금류 새들. 눈빛이 매섭다.


공중곡예와 잠행에 적합한 날개 깃털

구조센터에 있던 야생동물 10마리 중 6마리는 새, 특히 날개를 다친 맹금류였다. 맹금류는 새 중에서도 비행의 도사로 꼽힌다. 날개 깃털을 손가락처럼, 꼬리를 방향타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양력과 추력을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날던 매가 급정지해 먹이를 낚아챌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날개를 다친 녀석들은 이전 비행실력을 100% 낼 수 없다. 김 박사는 “깃털 끝만 상해도 제대로 날 수 없다”며 “6개월 정도 치료와 재활훈련을 마친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맹금류라도 날개 모양은 제각각이다. 가까이 서보니 매는 날개가 짧고 뾰족한 반면 독수리는 넓고 컸다. 매의 날개는 제트기처럼 속도를 높이는 데 최적화됐지만 독수리는 여객기처럼 바람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가장 신기했던 건 수리부엉이였다. 2m 가량 되는 큰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김 박사는 이것을 부엉이의 독특한 날개 특성이라고 귀띔했다. 비둘기처럼 일반적인 새는 날갯짓을 할 때 날개 뒤에 소용돌이가 발생해 퍼덕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부엉이 날개를 보니 앞면에는 뻣뻣한 깃털이 있고, 날개 위에는 부드러운 솜털이 나있으며, 뒷면에는 술 모양의 기관이 있었다. 김 박사는 “큰 깃털 가장자리에 있는 술 모양의 구조가 날개 뒤 소용돌이를 미세하게 나눠서 소음을 약화시킨다”며 “먹잇감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스텔스 사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엉이의 날개. 말단에 있는 부드러운 솜털이 날갯짓 소리를 흡수해 소리 없이 먹잇감에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새는 유전체도 가볍다?

 

‘매의 눈’으로 자외선까지 추적

새의 사냥 능력을 이야기할 때 시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매의 눈’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새는 척추동물 가운데 시력이 가장 뛰어나다. 물수리는 바다 위 60~90m 높이에서도 작은 물고기를 덮쳐 사냥한다. 황조롱이는 나무가 빽빽한 숲속을 활공하며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를 낚아 채는 묘기(?)를 부린다. 도대체 녀석들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그 해답은 구조센터 해부학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부학실 선반에는 조난돼 목숨을 잃은 각종 새들의 두개골이 일렬로 전시돼 있었다. 주먹보다 큰 독수리의 두개골부터 엄지손가락 한 마디 길이도 안 되는 작은 물새의 두개골까지. 크기는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뻥 뚫린 커다란 안구의 흔적.

눈은 클수록 해상도가 좋다. 망막에 맺히는 상이 커 세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들은 다른 분류군에 비해 머리에서 안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사람의 눈도 많은 부분이 피부에 가려져 있지만 새들은 훨씬 더 기만적이다. 동공을 빼고는 전부 피부와 깃털에 덮여 있다. 타조 눈의 지름(각막에서 수정체 중앙을 지나 눈 뒤 망막까지의 거리)은 50mm로 사람(24mm)의 두 배가 넘는다. 낮에 활동하는 맹금류는 새들 중에서도 유독 큰 눈을 자랑한다. 독수리나 매의 경우 눈의 지름이 46mm로, 몸집이 훨씬 큰 타조 눈 크기와 맞먹는다.

뿐만 아니라 새들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 영역까지 볼 수 있다(구조센터 입구에 있던 맹금류들의 눈에 기자가 어떻게 보였을까.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대부분의 새들은 이런 자외선 시각을 이용해 먹잇감을 찾고 짝을 선택한다. 대표적인 예로 유럽황조롱이는 넓은 들판에서 작은 쥐를 추적할 때 쥐 오줌에서 반사되는 자외선을 보고 찾아낸다. 파랑밀화부리 암컷은 깃털에 자외선이 많이 반사되는 수컷에 매력을 느낀다.

새와 사람의 시각 차이는 망막에 있는 광수용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람은 망막에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광수용기가 있다. 원추세포라고도 하는데 이 세포에 있는 옵신 단백질이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해 빛에 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한다. 결과적으로 뇌가 빛을 ‘볼 수 있다’. 개를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이런 원추세포를 2종류밖에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하면 사람은 시각이 좋은 편이다. 총 100만 가지 이상의 색을 분리해낼 수 있다.

그러나 새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갔다. 새의 망막에는 빨강, 파랑, 초록빛 외에도 자외선을 흡수하는 광수용기가 한 종류 더 있다. 지난해 12월 11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들은 진화과정에서 옵신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아미노산 서열 변화가 일어났다. 논문을 발표한 연구진은 시각의 진화가 새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조류의 진화 역사를 보면 시각이 뛰어난 개체가 자연 선택되는 경향이 포유류에서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속에서 생활하는 펭귄만이 조류 중에서 유일하게 4색시가 아닌 3색시라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조류 vs 사람 색시각 비교

새대가리도 ‘지략’ 쓴다?


‘식스 센스’ 사냥 감각의 소유자

새들은 시력만 좋은 것이 아니다. 빙 박사는 “오전에 본 검은머리물떼새, 큰뒷부리도요 종들만 해도 촉각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녀석들은 민감한 부리를 모래나 진흙 속에서 먹이를 찾을 때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모래에 부리를 박아 모래 알갱이 사이에 있는 극미량의 물로 압력파를 발생시키는데, 먹잇감이 있는 경우 압력파에 교란이 생기면서 탐지가 가능하다.

귀가 특히 밝은 새들도 있다. 야행성인 올빼미는 귓구멍이 한쪽은 눈 아래, 한쪽은 눈 위에 비대칭적으로 있다. 대칭이 ‘대세’인 동물의 세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이렇게 ‘짝짝이 귀’에 들어온 소리를 비교하면 소리 출처의 좌표를 x, y, z축으로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올빼미는 귓구멍 주변에 깔때기처럼 소리를 모을 수 있는 특이한 깃털들도 나 있다.

자기장을 감지해 항법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흐린 날에도 집을 찾고,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철새가 매번 같은 바위에서 번식을 하는 이유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6번째 감각, 일명 ‘자각’으로 정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진행된 실험에 따르면 철새인 유럽울새는 캄캄한 어두운 상자 속에서도 동서남북 방향을 정확히 구분한다. 자기장 감지를 방해하는 자석을 비둘기에 부착하면 목적지를 잘못 찾아가기도 한다.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자각이 실험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새의 반전매력이 어디까지일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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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새는 왜 강한가
Part 1. 처절한 생명력 : 대멸종에서 살아 돌아오다
Bridge. ‘새의 왕국’ 불러온 진화 빅뱅
Part 2. 작지만 끈질긴, 가볍지만 정교한
Part 3. 강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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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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