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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년전 공룡의 뒷모습이 보인다

한국의 공룡시대

지층면에 우묵우묵 파인 자국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고, 삼지창 모양의 발가락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 여러 종류의 공룡화석이 국내에서 발견되고 한반도에도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화석이 나오기 전까지 한반도에서는 왜 공룡이 발견되지 않았을까. 사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공룡이 주로 발견되는 중생대 육성층(육상에서 쌓인 지층)이 한반도에도 영남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체구의 공룡이 현재의 뱀이나 개구리처럼 땅속에 들어가 동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들은 항상 따뜻한 곳에서만 살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중생대에는 한반도가 공룡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 고위도(高緯度)에 있었기 때문에 공룡화석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었다.

필자가 1973년 봄 일본 도쿄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반도 지질계통 수립에 크게 기여한 고바야시(小林)교수가 이미 고령으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만나기 위하여 나타났다. 그는 만나자마자 내게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고생대 대결층(大缺層)에 해당하는 지층이 나타났느냐는 것과 공룡화석을 발견했느냐는 것이었다.

알 껍질이 최초의 공룡화석으로
 

공룡화석산지^A: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봉암산록(골격화석) B:경북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도로변(골격화석) C:경남 합천군 율곡면 노양리 산록(골격화석) D:전남 광양군 골약면 마동리 해안(골격화석) E: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알껍질 및 골격화석) F: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족흔화석) G:경남 창원군 진동면 진동리 해안(족흔화석)


1973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생들과 함께 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 일대의 지질을 조사하던 중 필자는 이상한 화석을 발견했다. 완만한 곡면을 보이며 0.5㎜ 내외의 두께를 갖는 검은색 파편들이 암석속에 무질서하게 박혀 있었는데 표면에는 독특한 문양이 나타나 있었다. 조개나 소라의 껍질은 분명 아니고 거북의 배갑(背甲)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얇았다. 이 화석이 어느 생물의 어느 부분의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외국의 많은 문헌과 화석표본을 조사한 결과 이것이 바로 공룡의 알껍질 화석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을 1976년도 대한지질학회에서 발표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알화석이라면 그 외형이라도 나타나야 할텐데 작은 파편들만 압착된 상태로 암석 속에 박혀 있었으니 선뜻 믿으려 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공룡의 알화석이라면 그 희귀성 때문에 해외토픽 감인데도 국내 언론기관에서는 거의 외면해 버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4년 10월 독일 본(Bonn)대학의 에르벤(Erben)교수가 한국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왔다. 그는 공룡의 알화석에 관해 이미 많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유명한 학자다. 표본을 관찰한 에르벤교수는 당장 그 화석의 산지를 안내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현지에 찾아가 보았으나 10년 사이에 변한 것이 너무 많았다. 화석을 채집한 바로 그 자리에는 불행하게도 어구(漁具)를 넣어두는 임시가옥이 서 있지 않은가. 지구의 반을 돌아 찾아온 노교수의 성의와 그의 실망하는 딱한 표정을 보고 필자는 필요한 만큼의 표본 일부를 제공하기로 했다. 에르벤교수는 입김으로도 쉽게 날아가 버릴 정도의 1X2㎜ 크기의 작은 파편을 표본에서 바늘로 떼어내어 솜에 싸고 또 쌌다. 그는 그 파편을 지나칠 정도로 소중하게 다루면서 한국의 최대 선물이라고 고마워했다.

그로부터 2,3개월 지난 뒤 자세한 설명이 담긴 편지와 함께 기증받은 알껍질 표본의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날아 왔다. 에르벤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 알껍질화석의 주인공은 이제까지 중국 본토와 몽고 등지의 상부 백악계에서 보고된 조반류(鳥盤類, Orinithischia)에 속하는 것인데, 하부 백악계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므로 계통 진화 해석상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다. 여기서 백악계(白堊系)란 백악기(白堊紀)에 퇴적된 지층을 가리킨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일대 족흔화석 산지


2중 발견의 해프닝

공룡의 골격화석은 현재 P대학 교수로 있는 K씨가 학생시절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봉암산 고갯길 옆 노두에서 발견한 것이 처음이다. K씨는 발굴준비가 될 때까지 발표를 보류하라는 지도교수의 지시에 따라 발견사실을 덮어두고 있었는데 그만 1977년 K대학 C교수가 독자적으로 발견해 한발 먼저 공표했다. 그 표본은 현재 P대학과 K대학에 분산 보관돼 있다.

1980년에는 필자가 학생들과 함께 경남 합천군 율곡면 노양리 산록에서 골격화석 산지를 발견했다. 국내에서 발견된 산지중에는 보존상태가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이때도 발굴준비를 기다려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가 주변학자들의 권유에 따라 학술논문 발표에 앞서 보도자료로 나갔다.

이것을 이번에는 K씨가 약 보름 뒤에 자신이 발견한 것으로 다시 공표하고 화석산지를 완전히 파손시켰다. 이때 발생한 2중발견의 해프닝은 학계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여기서 발굴된 표본도 P대학과 경북대학에서 분산 보관하고 있다.

그뒤 1983년과 1984년에 필자는 전남 광양군 골약면 마동리 해안과 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에서 역시 공룡의 골격화석을 발견했다. 이때 발굴한 표본은 경북대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 표본은 지금껏 보도되지 않은 것이다.

1987년에는 동력자원연구소의 손진담연구관이 경북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도로변에서 역시 공룡의 골격화석을 발견해 공표했으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의 주인공은 어떤 종류의 공룡인가. 중생대에는 수백종의 공룡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중 어느 종이냐 하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부위의 골격이라도 완전하게 발굴, 다른 공룡의 것과 면밀히 비교해 봐야 한다. 이러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비교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축적돼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그런 전문지식을 갖춘 척추동물 고생물학자가 아직 없다. 그러므로 신문이나 TV를 통해 여러가지 공룡의 이름들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유수의 공룡 발자국화석이 발견되고

1982년 1월 겨울방학을 이용해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남해안 일대의 지질을 조사했다. 조사구역은 전남 광양군 해안으로부터 하동군 사천군 삼천포 해안을 지나 고성군 해안까지로 정했다. 이들 지역에서 중생대 해성층을 발견하는 것이 조사의 주요 목적이었다.

육성층에서는 공룡과 같은 육상동물과 담수(淡水)에 살았던 동물의 화석이 종종 눈에 띄지만 지질시대를 정확하게 제시해주는 표준화석은 발견되지 않는다. 중생대 백악기만 해도 1억3천만년 전부터 6천만년 전까지 약 7천만년 간의 장구한 기간이다. 이 7천만년 중 어느 시기냐 하는 판단은 암모나이트와 같이 세계적으로 넓게 분포하는 바다생물의 화석을 발견해야 가능하다.

백악기라는 시대가 일본에서는 10개로 세분되고 또 이들 세분된 시대를 다시 전기 중기 후기로 각각 나누고 있다. 이는 일본의 중생대 백악기 해성층으로부터 좋은 표준화석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해성층이 분포하고 있다. 내가 해안을 조사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바닷물에 씻긴 지층들이 내륙의 어디 보다도 잘 나타나 조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달이 넘도록 조사했으나 담수서(淡水樓) 조개와 소라화석의 산지를 몇곳 발견했을 뿐 기대했던 해성층은 찾지 못했다. "우리가 조사한 지역에서는 해성층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도 소중한 거야.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것으로 만족하자"는 말 로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을 달래면서 마지막으로 고성군 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후였다.

우리 일행은 하이면 덕명리 봉화골 해안에 도착, 조사를 시작했는데 지층면에 파인 이상한 모양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의 발자국처럼 작고 길죽하게 생긴 우묵우묵 파인 것들이 7,8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발자국을 스케치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동행한 한 학생이 무엇이냐고 물어 왔다.

"지층면에 보이는 이 우묵우묵한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글쎄요 무슨 퇴적구조 같기도 하지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요"

"자갈과 같은 무기물이 퇴적되면서 남긴 흔적이라면 이렇게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틀림없이 어느 동물의 발자국이야. 이 지층이 퇴적될 당시에 이러한 발자국을 남길만한 포유류는 없었으니까 이것은 분명히 어떤 새끼공룡의 발자국이야."

그러나 학생들은 여전히 "글쎄요"하면서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았다. 보존상태가 선명치 않고 새끼공룡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공룡의 발자국으로는 너무 작고 빈약하지 않은가 하는 눈치였다.

다시 봉화골 해안으로부터 덕명리와 상족 유원지 해안을 거쳐 상족해안까지 조사해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공룡의 발자국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왜냐하면 그 발자국과 비슷한 것들이 조사해온 해안 일대에 너무도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학생들과 함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다시 달려가 보았다.

상족마을 선착장을 지나 해안에 펼쳐진 지층면에 우묵우묵 파인 자국들이 역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을 뿐 아니라 삼지창(三枝槍) 모양의 발가락까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은가. 바로 이거다. 틀림없는 공룡의 발자국이다. 이것을 보고도 의심하겠는가. 순간 1억년 전 공룡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억제하기 어려운 감동을 누르고 숙소로 철수했다. 발자국 화석이 눈에 어른거려 밤에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새벽 일찍 학생들을 깨워 언론기관에 연락, 공표를 서둘도록 했다.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기자들은 한결같이 정말 이것들이 공룡의 발자국인가 의심하는 것 같았다. TV뉴스의 앵커도 "공룡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시청자 여러분 한번 보시지요"하는 정도였다.

이 보도가 나간 뒤 다시 K씨가 현장에 나타나 자기도 발견자이며, 하드로자우루스 브라키오자르스 등의 발자국을 확인했고, 이들의 체중이 몇 십t이고 체장은 얼마라고 자신있게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발자국까지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근거가 없는 만화같은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었다.
 

이 골격화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경남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해안에서 발견된 이 골격화석은 길이가 약23cm이고, 현재 경북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공룡의 골격인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설명하고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능 불가능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발자국만을 보고 간단히 그 동물의 종류를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 관련학자들 사이에 상식화돼있다. 발자국화석을 보고 그 종류를 거론하기 보다는 화석 자체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화석은 거의 지질시대에 살던 고생물(古生物)의 사체(死體)가 잔존한 것이지만 족흔화석은 살아 움직인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른 생물과 어떠한 생태학적 관계를 이루었는지를 추측케 하고 그 당시 해륙의 분포에 관한 고지리(古地理)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이어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대의 지층에서 족흔화석이 발견돼 그 당시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고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松川, 1983년, 1985년).

이 발견사실은 곧 '대한 지질학회지'(1982년)에 발표되었다. 뒤이어 일본의 전문잡지(1986년)와 미국(1989년) 호주(1989년)에서 발행된 전문서적에도 소개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세계각국에서 찾아와 필자는 매년 여러 차례씩 현장을 안내하고 있다.

특히 1987년부터 족흔화석 전문가로 유명한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로클리(Lockley)교수가 여러차례 방문,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1989년부터는 필자와 함께 국제 공동 연구를 착수,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에 따르면 이곳의 족흔화석이 적어도 유라시아대륙에서는 최대의 산지라고 한다.

그동안 조사 연구한 바에 따르면 덕명리 실바위해안으로부터 동쪽으로 경남 의창군 진동면 해안에 이르기까지 2백10여 층준(層準)에서 3천개 이상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또 1백50개 이상의 선명한 족흔열(足痕列)을 찾아냈다. 형태에 따라 분류하면 두다리로 걷는 이족보행(二足步行) 9종, 사족보행(四足步行) 4종 등 모두 13종으로 구분된다.

이들 공룡의 족흔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새의 발자국화석을 발견한 것도 매우 소중한 성과다. 중생대 조류의 발자국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편이어서 특히 학문적 가치가 큰 것이다.

척추동물 화석중에서 이빨화석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 또 이빨화석은 화석동물을 동정(同定)하는데도 다른 골격화석에 비해 매우 유효하다. 1990년 4월 경남 진양군 나동면 유수리 하천 바닥에서 4~5㎝의 이빨 화석 두개를 발견했다.

일본의 척추동물 화석전문가인 하세가와(長谷川)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카마라사우리데(Camarasauridae)과(科)에 속하는 공룡의 이빨화석이라고 한다. 문헌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카마라사우리데과 중에서도 미국의 오스본(Osborn, 1924년)이 몽고에서 발견, 학계에 보고한 것(Asiatosaurus mongoliensis)과 유사하다. 아무튼 국내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중 적어도 과(科)가 분명히 밝혀지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1974년에도 경남하동군 진교면 양포리 해안에서 5㎜ 정도의 작은 이빨화석을 발견했으나 이것이 파충류의 이빨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그 종류는 아직 분명치 않다.

대결층(大缺層)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중기부터 석탄기 중기까지의 지층이 한반도에는 분포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한반도에 분포하지 않는 지층을 가리켜 대결층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강원도 정선부근 지층에서 연세대 이하영교수가 실루리아기 화석을 발견, 대결층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표준화석(標準化石, index fossil, guide fossil)

어떤 일정한 지층에서만 산출돼 그 지층의 지질연대를 나타내주는 화석을 말한다. 실제로 이 표준화석을 통해 다른 생물들의 생존연대가 결정되고, 지질시대의 연대구분이 이뤄진다. 표준화석이 되려면 그 분포가 범세계적이어야 하고, 그 생존연대는 단기간이어야 하며(한마디로 굵고·짧게 산 종(種)이 표준화석으로 채택되기 쉽다), 진화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 이유는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명해진다. 대표적인 표준화석으로는 암모나이트와 방산충 등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층에서 암모나이트가 발견됐다고 하면 그 지층은 중생대 지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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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양승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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