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떠오르는 물질은? 십중팔구는 이산화탄소(CO2)를 떠올린다. 그런데 버리는 CO2를 다시 이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를 만들 때 배출되는 CO2로 다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면? 1시간 동안 태양에서 나오는 빛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1년간 사용해도 남을 에너지를 지구에 쏟아붓는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버리는 태양광 에너지로 필요한 물질을 만들 수 없을까?
미래 화학, 블루케미스트리는 마법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CO2를 재활용하고, 햇빛으로 의약품을 만드는 미래 블루케미스트리의 현장을 살펴보자.
“꿈이 있었어요. 1년 내내 내리쬐는 햇빛으로 뭔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이었어요. 이 꿈 때문에 과학자가 됐죠. 15년 가까이 연구한 결과가 이제야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자리잡은 한국화학연구원 백진욱 박사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말을 건넸다.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서운함도 묻어났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과학자 특유의 자신감도 묻어났다.
“우리 팀 연구는 화학, 재료과학, 광과학, 생물학이 ‘짬뽕’이어서 복잡합니다. 은사께 연구 결과를 보여드렸더니 평생 화학을 공부한 은사님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셨죠.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라고도 불러요.”
백 박사 연구팀이 연구한 게 무엇이기에 이렇게 에둘러 표현할까. 바로 지금까지 활용하기 쉽지 않았던 햇빛을 이용해 정밀화학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태양광 공장을 꿈꾸다
백진욱 박사팀은 식물만이 할 수 있는 광화학 반응에 오랫동안 도전해 왔다. 그 결과 태양광 에너지와 광촉매 반응을 이용해 다양한 정밀화학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최근 발표했다.
백 박사팀이 만든 태양광 공장의 정식 명칭은 ‘광-바이오 인공광합성시스템’. 이 시스템에 원료 물질과 효소를 넣으면 화석연료로 만든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고도 원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태양광 공장의 발단은 물을 태양광을 이용한 광분해로 산소와 수소를 얻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분리한 수소는 수소자동차나 연료전지 등에 활용한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수소자동차를 구경하기는 어렵다. 수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아직은 수소라는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야 하고 결국 화석연료를 이용해야 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전기에너지 대신에 무한 청정에너지인 태양광을 이용할 수 없을까.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백진욱 박사팀은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40여 종의 광촉매 물질을 발견했다. 광촉매를 물에 넣은 후 햇빛을 쬐면 촉매가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자세한 원리는 이렇다. 광촉매는 가시광선을 흡수하는 반도체 입자다. 광촉매가 햇빛을 받으면 원자나 분자의 가장 바깥쪽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가 되는데(‘여기’라고 한다) 다시 에너지를 내뱉는 환원과정을 거쳐 수소를 분리하는 것이다(물이 수소가 되는 과정이 환원이다).
백 박사는 “이산화티타늄(TiO2) 등 기존 광촉매는 햇빛에서 자외선만 이용해 태양에너지 활용도가 4% 미만”이라며 “태양에너지의 46%를 차지하는 고효율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촉매 개발이 광반응 실용화의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이러한 광분해 수소 제조 공정은 백 박사에게 태양광 공장을 꿈꾸게 했다.
버리는 가시광선으로 새로운 화합물 ‘뚝딱’
지난 10월 12일 백진욱 박사팀은 광-바이오 인공 광합성 시스템, 즉 태양광 공장을 통해 이른바 ‘ 광학이성질체 키랄알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화학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이는 항우울제나 항히스타민제, 부정맥치료제, 천식치료제 등 30여 종의 중요 의약품에 들어가는 핵심 물질이다.
효과가 있는 ‘광학이성질체 의약품’을 만들려면 식물의 엽록체가 광합성을 하는 데 쓰는 NADPH라는 환원된 조효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 방법으로는 값비싼 조효소를 정량적으로 넣어줘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백 박사팀의 성과를 이용하면 햇빛만 쬐어줘도 NADPH 효소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실용화에 성공하면 예컨대 5만 원 짜리 신약을 1000원에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백 박사는 “NADPH는 휘발유처럼 효소반응을 일으키는 ‘연료’이며 이를 지속적으로 투입하기 위해 태양이라는 ‘산유국’을 활용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어떤 효소와 어떤 원료 물질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을 얻을 수 있어 태양광 공장을 만드는 블루케미스트리도 아주 먼 일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CO2를 자연자원으로 되돌리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의 정체는 뭘까. 화학적으로 보면 탄소가 산화하면서 안정된 물질로 변한 것이 이산화탄소다. 산화 과정에서 에너지를 발산한다. 정리하면 탄소로 이뤄진 화석연료를 태우면 산화 과정을 거쳐 안정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문제는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점이다. 과잉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법’은 없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내놓은 에너지를 되돌려 주면 된다.
자연에서는 광합성이 이런 역할을 했다. 광합성을 흉내내기 어려웠던 과학자들은 수소에 주목했다.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환원시킬 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탄소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산화탄소를 자연에서 얻는 자원으로 되돌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소를 비교적 싸게 얻으려면 화석연료를 또 태워야 한다.
과학자들은 2000년대 이후 값이 싸면서도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을 일으킬 정도의 에너지를 지닌 물질을 찾아냈다. 바로 메탄이다. 전기원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화학촉매연구센터장도 메탄과 이산화탄소로 메탄올(CH3OH)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메탄올은 고급 휘발유 첨가제나 포르말린, 바이오디젤 등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물질이다.
전기원 박사팀이 메탄올을 얻어낸 반응은 두 단계다. 1단계에서는 메탄과 물,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얻는다. 2단계에서는 일산화탄소 한 분자와 수소 두 분자를 이용해 메탄올을 얻는다. 전기원 박사는 “각 단계의 반응에서 촉매가 중요한데 1단계에서는 약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크기로 만든 니켈과 세륨산화물 촉매를, 2단계에서는 구리와 아연 촉매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용하는 메탄올을 이 공정으로 만든다면 연간 20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1단계 반응에서 이산화탄소를 변환시킬 때 탄소가 쌓여 촉매 물질을 덮어버릴 수 있다. 이를 ‘탄소침적반응’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연구에서 큰 장애물이었다. 전 박사팀이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산소를 빠르게 공급해 탄소와 재빨리 반응시키는 것이다. 또 니켈과 세륨산화물로 이뤄진 촉매 물질을 10nm 크기로 잘게 부숴 탄소침적반응이 생기지 않도록 했다.
최근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셰일가스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가스를 채취할 때 함께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바로 메탄올로 만드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전 박사는 “아직은 장기 연구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이산화탄소로 자원을 만드는 새로운 화학이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학도 ‘레고’ 만들 듯
2007년 사이언스는 ‘중간 영역이 있다(There’s Room in the Middle)’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치탐(Cheetham) 교수는 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기 재료와 유기 재료는 반도체, 자성체, 이차전지, 형광체, 탄소나노튜브, 합성수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무기물과 유기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소재가 무기물과 유기물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동안 나타나지 않던 제3의 놀라운 특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블루케미스트리의 또다른 지향점이다. 유기물과 무기물을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물질은 같은 특성을 갖는 기존 물질에 비해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석유화학공장에서 사용하는 촉매의 약 80% 이상이 촉매를 사용하고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제올라이트 촉매다. 제올라이트는 내부에 분자 크기의 나노세공이 매우 많아 표면적이 넓다. 질량 1g에 표면적이 200~700㎡에 달한다. 또 결정구조 내부에 양이온이 들어 있어 구멍속으로 들어온 다른 양이온과 자유롭게 교환된다. 때문에 세공보다 작은 분자를 선택적으로 흡착·통과시키거나 이온 교환이 쉽게 일어난다. 제올라이트는 촉매뿐만 아니라 제습 및 정제용 흡착제, 산소 발생기 등에도 널리 쓰인다.
그러나 제올라이트는 구성 성분이 실리콘, 알루미늄, 산소가 결합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만큼 세공 크기도 정해져 있다. 다양한 원소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공 크기가 다양하면서도 표면적이 제올라이트보다 넓은 물질이 필요해졌다. 한국화학연구원 장종산 박사팀은 제올라이트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 개발에 성공해 현재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유기물과 무기물을 결합해 새로운 골격과 나노세공을 갖는 새로운 물질을 만든 것이다.
유기화합물과 금속을 결합해 만든 유기금속 화합물은 원래 세공이 없다. 그러나 장종산 박사팀은 금속 이온(착물)에 ‘리간드’의 일종인 카르복실산을 배위결합 이라는 방식으로 붙여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냈다. 단백질에 결합하는 물질이나 각종 수용체, 신경 전달 물질 등도 일종의 리간드다.
이온 형태의 전이금속과 유기 리간드가 결합해서 어떻게 세공이 있는 결정체를 만들 수 있을까. 장 박사 연구팀은 물 속에서 합성하는 방법과 마이크로파합성을 고안해 냈다. 물 속에 녹은 전이금속과 유기 리간드가 결합하면 결정체가 생기는데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는 이를 다공성 소재로 만든 것이다.
장 박사팀이 가장 최근에 합성에 성공한 하이브리드 나노세공체의 표면적은 1g에 4200m2, 세공 크기는 2.5~3.5nm다. 이러한 나노세공체는 소량의 약물로도 약효와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약물전달체나 화학물질 전달체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무게의 물질이라도 표면적이 훨씬 넓고 세공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장종산 박사는 “다양한 금속 이온과 리간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어 수만 종류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립 완구 레고와 같다”고 설명했다. 블루케미스트리가 최소한의 물질로 효과를 배가시키는 신물질의 세계를 열어젖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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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마법의 블루 팩토리
PART 3. 2030년 블루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