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0만 년 전 백악기 최후기, 지구에는 급격한 사건이 있었다. 훗날 ‘대멸종’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척추동물의 대부분은 죽음을 맞았고 공룡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소수의 공룡은 살아남았으니 수각류 공룡의 후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날개로 위험 지역을 피해 다녔고 깃털로 체온을 유지해 생명을 지켰다. 죽음마저 이겨내고 지구를 접수한 강인한 동물들이 오늘날 ‘새’의 조상이다.
앞발, 날개가 되다
조류(鳥類, Aviale)의 출현은 척추동물의 진화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특히 크기가 12m, 무게가 7t이나 되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속한 수각류 공룡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로 진화했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사건이다.
수각류 공룡에서 조류가 진화했다는 주장은 시조새(Archaeopteryx lithographica) 화석에서부터 시작됐다. 깃털과 날개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체구조만 보면 시조새의 골격은 현생 조류와는 매우 다르다. 새는 이빨이 없지만 시조새는 주둥이에 이빨이 있다. 새의 앞발은 손가락뼈가 융합돼 있고 손톱도 없는 반면, 시조새의 앞발은 날카로운 손톱이 발달해 있다. 새의 꼬리는 짧고 뭉툭하지만, 시조새의 꼬리는 파충류처럼 길게 뻗어 있다. 앞서 말한 깃털자국이 없었다면 그 당시 고생물학자는 시조새를 아마 작은 육식공룡으로 분류했을 것이다.
예일대 존 오스트롬 교수가 1969년과 1976년에 발표한 논문은 시조새와 현생 조류의 유사성을 해부학적으로 밝힌 기념비적인 논문들이다. 오스트롬 교수는 백악기 전기의 육식공룡 ‘데이노니쿠스(Deinonychus)’와 ‘시조새와 새의 기원’을 연구한 각각의 논문을 통해 조류 골격의 특징들이 수각류 공룡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화한 결과라는 사실을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뒷발로만 걷는 이족 보행이다. 이족 보행은 중기 트라이아스기부터 공룡에게 나타나던 특징이다. 수각류 공룡들은 육상에서 이동하는 데 앞발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뒷발, 그중에서도 가운데 3개의 발가락을 사용해 이동했다. 그 결과 발가락과 연결된 3개의 발바닥뼈가 서로 붙어 하나로 합쳐지고 첫 번째 발가락은 작게 퇴화하면서 오늘날 조류의 발 모양과 유사하게 변했다.
앞발의 변화도 중요하다. 맨 처음에는 5개의 손가락뼈가 있었지만 다섯 번째, 네 번째가 차례로 퇴화하고 3개의 손가락만 남게 진화했다. 두 번째 손가락이 길어지면서 동시에 손목뼈가 반달 모양으로 진화했고, 어깨 관절이 옆을 향하면서 이것으로 날갯짓을 할수 있게 됐다. 이족 보행을 할 때 무게중심 추 역할을 하던, 앞으로 뻗은 치골도 현생 조류처럼 점점 뒤로 향하게 됐다. 또 뒷발에 비해 앞발이 점점 길어지면서 앞발이 날개로 변할 조건이 갖춰졌다. 가슴 부분에는 날기 위해 필수적인, 양쪽 쇄골이 합쳐진 차골(叉骨, furcula)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수각류 공룡은 이미 새로 진화할 수 있는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악어와 같은 원시적인 파충류와 달리 다리가 곧게 뻗어 직립을 했고 앞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새처럼 3개의 뒷발가락으로 걸었고 앞발은 자유로웠으며 손목관절은 유연하게 회전할 수 있었다. 진화된 수각류 공룡의 한 종류인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는 몸집도 점점 작게 진화했다(몸집이 작을수록 비행에 유리하다). 모든 골격학적, 해부학적 자료들이 공룡이 새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 주고 있다.
깃털이 발달한 이유
현생 조류는 골격뿐 아니라 깃털과 비행 능력이라는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들이 언제,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조류 진화사의 오랜 숙제였다. 여기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건 약 20년 전, 깃털을 가진 진화된 공룡 화석들과 새로운 중생대 조류 화석들이 발견되면서부터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조새와 현생 조류 사이에 존재했던 후기 중생대의 조류화석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의 북표(北標)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발견된 화석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랴오닝 성 지방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화석들이 많이 발견되는 장소다. 전기 백악기의 석호 퇴적층이 발달해 있어 보존이 잘 된 화석들이 대거 발견되고 있었다. 산출된 화석들은 두 판으로 얇게 쪼개지는 셰일에 단단한 골격뿐 아니라 깃털이나 내장과 같은 무른 부분까지 정교하게 찍혀 있었다.
일명 ‘중화용조’라고 불리는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 ) 화석은 이런 석호 퇴적층에서 1996년 처음 발견돼 발표됐다. 시노사우롭테릭스의 크기는 약 1m 정도지만 꼬리가 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형태만 보면 작은 육식공룡인 콤프소그나투스와 매우 유사했다. 그러나 큰 차이점은 머리에서 등을 거쳐 꼬리 끝까지 길게 발달한 섬유형의 원시깃털. 깃털에서 추출한 화석화된 멜라닌 색소체를 분석한 결과 적갈색 색소가 발견됐다.
랴오닝 성 지방에서는 시노사우롭테릭스 이후에도 수많은 깃털공룡들이 발굴됐다. 섬유형 깃털부터 방사성으로 벌어진 깃털, 좌우 대칭 깃털, 대칭 비행 깃털, 비대칭 비행 깃털 등 다양한 조합의 깃털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수각류 공룡뿐 아니라 초식공룡인 조반류 공룡들에게서도 원시적인 섬유형 깃털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의 깃털 구조는 너무 단순해서 비행에 적합한 깃털은 아니지만 짝을 유혹하거나 무리를 구별하는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로써 중생대는 칙칙한 단색이 아닌,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공룡들로 가득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새처럼 날고 품고 숨쉬고
그렇다면 공룡이 언제부터 날기 시작했을까. 원시 수각류 공룡은 이미 새처럼 속이 텅 빈 뼈와 차골을 갖고 있었다. 또 진화한 수각류 공룡들은 몸집이 작았고 옆으로 벌어진 강력한 긴 앞발과 커다란 전뇌가 발달한 상태였다. 학계는 수각류 공룡인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 )와 안키오르니스(Anchiornis )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들은 앞발뿐 아니라 뒷발에도 시조새나 원시 조류에 있는 비행 깃털이 발달했다. 뒷발의 깃털은 땅에서 걷기엔 매우 부적합한 구조다. 이 공룡들은 앞뒤 비행 깃털을 이용해 오늘날의 날다람쥐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를 활공 비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납작하고 긴 꼬리에 발달한 깃털은 활공 중 균형을 잡기 위한 방향타 구실을 했을 것이다. 원시 조류로 진화를 거듭할수록 성가신 뒷다리 깃털은 없어지고 긴 꼬리는 점점 짧아진 반면, 앞날개는 점점 강력해지면서 활공이 아니라 날갯짓을 이용한 비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조류의 독특한 생식과 성장 방식 역시 진화된 수각류 공룡과 유사점이 많다. 공룡의 알은 일반적으로 껍데기의 단면구조가 다양한 패턴으로 구성돼 있는데, 수각류 공룡의 경우에만 유독 알 껍데기가 단순한 2~3층 구조로 돼 있다. 이런 알은 숨구멍이 좁고 개수도 적어 현생 조류의 알 단면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오비랍토류 공룡은 난관이 2개여서 동시에 2개의 알을 낳는 반면, 조류는 난관이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또 공룡은 치골 끝이 융합돼 있어 상대적으로 큰 알을 낳지 못하는 반면, 조류는 치골 끝이 벌어질 수 있어 몸집에 비해 큰 알을 낳을 수 있다. 새처럼 알을 품는 포란 자세로 보존된 화석들(오비랍토르류, 트로오돈류, 드로마에오사우루스류와 원시 조류)을 보면 수각류 공룡도 조류처럼 새끼를 돌보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비랍토르의 긴 앞발과 깃털, 꼬리깃털은 포란(알 품기)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각류 공룡들이 한꺼번에 알을 낳고 복잡한 둥지를 만들어 새끼들을 동시에 부화시켰다는 증거는 공룡의 체온과 포란 장소의 온도가 주변보다 높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산란습성은 중생대 수각류 공룡에서 중생대 원시 조류, 신생대 현생 조류로 진화하면서 점차 생긴 것으로 해석된다.
조류는 몸을 가볍게 해주고 공중에서 부족한 산소를 저장해 놓는 ‘기낭(공기주머니)’이라는 매우 독특한 호흡시스템도 갖고 있다. 수각류 공룡에서는 기낭의 전조도 나타나는데, 바로 목뼈와 등척추 속에 있는 기공이다. 이런 기공들은 원시 수각류 공룡의 몸무게를 줄이는 역할을 했을 걸로 보인다. 더 진화된 작은 수각류에서는 조류와 더 유사한 기낭시스템이 발전했을 걸로 예상된다.
진정한 시조(始祖)새는 무엇
이처럼 조류를 정의하는 거의 모든 특징들이 진화한 수각류 공룡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공룡과 새의 구분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실제로 가장 원시적인 조류는 무엇인가에 대해 학자들은 아직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어떤 특징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조새가 가장 오래된 새가 될 수 있고, 가장 진화된 수각류 공룡 중 어떤 종이 시조(始祖)새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시조새를 가장 진화된 수각류 공룡 그룹에 넣을 수도 있다. 새를 정의하는 좀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은 공룡과 새를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며 역설적으로 공룡과 새가 얼마나 유사한가를 증명한다. 중생대에 대부분의 공룡은 멸종했지만 새로 진화한 공룡은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왔다. 이들은 친척들이 멸종한 이후 신생대 들어 폭발적으로 번성해 오늘날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1억5000만 년이나 지속된 경이로운 진화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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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처절한 생명력 : 대멸종에서 살아 돌아오다
Bridge. ‘새의 왕국’ 불러온 진화 빅뱅
Part 2. 작지만 끈질긴, 가볍지만 정교한
Part 3. 강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