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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강함을 배운다

비둘기 날갯짓 ▶ 3D 가상 새

“새가 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은 그것이 경이롭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비행기로는 어렵고 복잡한 이착륙도 새는 날갯짓 한번으로 가뿐히 해내죠. 새에 대해 아직 연구할 게 많다는 뜻입니다.” 이제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새의 비행을 예찬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최근 컴퓨터를 이용해 새의 비행을 실제와 똑같이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새는 생체모방 분야에서 꾸준히 다뤄져 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 날개’ 이야기에서부터 14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새 비행 연구, 1900년 오빌과 윌버 라이트 형제의 유인 글라이더, 최신 항공기까지 모두 새의 비행 원리가 잘 녹아있다.
 
새의 몸통과 날개 뼈에 센서를 달아 움직임을 측정한다. 새 비행의 핵심인 정교한 날개 깃털 제어기술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새의 몸통과 날개 뼈에 센서를 달아 움직임을 측정한다. 새 비행의 핵심인 정교한 날개 깃털 제어기술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교수는 “아직까지 세상에 진짜 새처럼 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날개의 형태를 갖추는 것과 날갯짓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새 비행을 흉내 내려면 새의 정교한 날개 깃털 제어기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새는 항공기와 달리 날개와 깃털을 위아래 좌우로 움직여 비행한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는 주위 환경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서울대 운동 연구팀은 비둘기 날개 움직임을 1초에 1000장씩 찍는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해 분석했다. 그 결과 새가 날개를 아래로 내릴 땐 깃털을 가로로 눕혀 양력을 최대한 많이 발생시키고, 올릴 땐 깃털을 지면과 수직으로 세워 공기저항을 최소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같은 원리로 왼쪽으로 비행할 땐 오른쪽 날개의 깃털을 눕히고 왼쪽 날개 깃털을 세워 힘을 받는다). 새는 날개 뼈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날개를 내릴 땐 날개를 최대한 옆으로 길게 뻗고, 올릴 땐 어깨를 접었다. 비행기가 엔진, 상승키, 하강키, 좌우 방향키로 나눠하는 일을 새는 날개 한 쌍으로 모두 처리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런 날개 특성을 수치화해 컴퓨터 가상공간에 실제 새와 똑같이 날개와 깃털을 움직이는 3D 새를 만들었다. 프로그램은 새의 형태나 무게, 주변 환경 등 비행 조건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그러면 3D 새가 조건에 맞는 적절한 날갯짓을 보여준다. 프로그램 중에는 새를 물체에 부딪히게 하거나 인위적인 힘으로 미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추락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3D 새는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추락하는 법이 없다”며 “실제 새의 정교한 날개 제어기술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날갯짓을 하는 새를 직접 만들 계획이다.



절벽제비 비행 ▶ 드론

새의 비행 기술을 모방하는 새 모양의 드론. 몸을 비틀며 자연스럽게 회전할 수 있도록 모터와 기어를 설계했다.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워싱턴대 연구팀은 새의 비행 전략을 모방한 드론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새들이 주변 장애물을 절묘하게 피해 날아다닌다는 데 착안, 절벽에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절벽제비의 비행행동을 초고속 카메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절벽제비는 회전할 때 각도를 매우 크게 하면서, 회전 직전에 몸을 비틀어 장애물을 피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MIT 러스 테더레이커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나뭇가지나 바위 틈새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산불을 감시하거나 사바나 밀렵꾼들을 추적하는 등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페스토(Festo)도 자체 개발한 인조 갈매기 로봇에 이같은 자연 비행 기술을 적용했다. 무게가 450g에 불과한 이 로봇은 실제 새처럼 회전할 때 몸을 비틀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갈매기가 선회할 때 몸을 기울이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페스토는 이를 위해 로봇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기어와 몸의 기울기를 조절하는 기어를 결합시켰다. 외형도 움직임도 커다란 갈매기와 유사한 이 로봇은 ‘테드(TED)’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맨 위 사진).

머리

물총새 머리 ▶ 고속열차

새에게 배운 점은 날개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의 유선형 디자인이 물총새의 머리 모양에서 나왔다는 건 꽤 유명한 일화다. 신칸센이 처음 개통했을 당시엔 심각한 소음 문제가 있었다.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열차의 몸체와 지붕에 있는 집전장치에 바람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저항을 피할 수 없었다. 신칸센 엔지니어들은 물총새의 사냥 장면을 보고 힌트를 찾았다. 물총새는 먹이를 잡기 위해 수십m 높이에서 빠른 속도로 물에 다이빙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물이 거의 튀지 않는다. 부리가 완벽한 대칭에 가까운 쐐기 모양이기 때문이다. 부리 끝 한 점에서 시작해 머리쪽으로 갈수록 정확한 비율로 반경이 늘어난다. 물총새의 이런 부리 모양을 모방해 열차 앞면 디자인을 유선형으로 바꾼 결과 소음도 줄이고 이동에 드는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두개골과 뇌 사이를 채우는 액체층
 
딱따구리 머리 ▶ 헬멧


딱따구리의 ‘맷집’을 모방하기 위한 연구도 있다. 딱따구리는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붙어 나무 속에 있는 벌레 유충을 찾아 먹는다. 그러기 위해 하루에 1만2000번, 초당 최대 22회 주기로 나무를 쪼아댄다. 속도는 초속 7m로 뇌는 매번 1200G(1G는 중력가속도)의 충격을 받는다. 사람은 보통 80~100G의 충격만 받아도 뇌진탕을 일으킬 수 있다.

과학자들은 딱따구리가 충격의 99% 이상을 몸, 특히 머리로 흡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 UC버클리의 윤상희, 박성민 박사팀은 비디오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딱따구리가 뇌를 보호하는 네 가지 구조를 밝혔다. 분석 결과 딱따구리는 단단하지만 탄성 있는 부리와 스펀지 구조의 두개골, 그리고 두개골과 뇌 사이에서 진동을 차단하는 액체층을 갖고 있었다. 또 혀에서는 진동을 감소시키는 설골층이 발견됐다.

딱따구리의 이런 구조는 우주선이나 자동차 에어백, 헬멧 등에 적용하는 충격흡수재 개발에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윤 박사팀은 6000G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충격흡수장치를 개발했다. 총알에서 오는 충격과 맞먹는 힘으로, 비행기 블랙박스에 적용하는 소재보다 60배 강하다.

도요새 부리 ▶ 집수장치

한편 도요새의 부리는 물부족 국가의 갈증을 해결하는 데 영감을 주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연구팀은 도요새 부리의 구조를 응용해 효율 높은 안개 수집장치를 개발했다고 지난해 9월 ‘응용재료 및 계면’ 저널에 발표했다. 바닷가에 사는 도요새는 가운데 경첩이 달린 것과 같은 긴 부리를 갖고 있다. 부리를 반복적으로 열고 닫으면 부리 입구에 있던 음식물이 조금씩 부리 안쪽으로 이동한다. 연구팀은 넓이가 10cm, 길이가 26cm인 두 유리판을 경첩으로 연결한 ‘인공 부리’를 안개가 낀 곳에 두고 네 숟가락 정도의 물을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수행한 청 루오 교수는 “대량 생산이 이뤄진다면 안개나 이슬이 존재하는 어느 지역에서나 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요새는 긴 부리를 여닫으며 먹이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 구조를 이용하면 안개에서 물방울을 모으는 집수 장치를 개발할 수 있다.]
[도요새는 긴 부리를 여닫으며 먹이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이 구조를 이용하면 안개에서 물방울을 모으는 집수 장치를 개발할 수 있다.]

 
몸과 둥지

타조 호흡기 ▶ 집진 장치

에뮤나 타조, 화식조, 레아, 키위새 등 날개가 퇴화돼 지상에서 생활하는 새인 평흉류들의 공통점은 호흡이다. 이들은 더울 때 마치 개처럼 숨을 헐떡인다. 폐와 비강 구조가 공기 소용돌이를 일으켜 전체적인 공기 흐름을 가속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공기는 흐름이 빨라지면 압력이 떨어지면서 온도가 내려간다. 이는 증발식 냉각기의 원리와도 유사하다.

이런 구조는 굴뚝에 설치하는 고효율 집진 장치에 활용될 수 있다. 굴뚝을 통해 분진 입자가 섞인 가스를 내보낸다고 할 때, 굴뚝의 구조를 평흉류의 호흡기 구조로 바꾸면 가스 흐름이 빨라지면서 온도도 내려간다. 그러면 가스에 섞인 수분이 물로 응축되고, 분진입자를 용해시켜 제거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집진 장치 외에 공기 여과기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새 둥지
새 둥지(➊)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매달린 사슬(➌)’.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자연물을 모방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➋).
[새 둥지(➊)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매달린 사슬(➌)’.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자연물을 모방한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➋).]

베짜기새 둥지 ▶ 건축물

“모든 것은 자연이 써 놓은 위대한 책을 공부하는 데서 태어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모두 이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1926년 사망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가우디는 건축 분야에서 생체모방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코로니아 구엘 성당의 ‘매달린 사슬’이 가장 유명하다.

가우디는 새 둥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전까지 인간이 만들었던 건축물은 모두 땅에 기둥을 세운 뒤 지붕을 얹는 방식이었다. 언뜻 견고해 보이지만 균형을 잃으면 중력에 의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는 베짜기새가 야자수에 지은 둥지가 중력에서 자유로운 ‘늘어뜨린’ 모양이라는 데 주목했다. 베짜기새는 야자수와 바나나에서 섬유 성분을 빼내 뜨개질을 하듯 안정적인 그물침대 모양의 집을 짓는다. 가우디는 천장에 쇠사슬을 매달고 여기에 모래자루를 달아 아치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매달린 사슬’을 만들었다. 부드럽지만 강한 구조가 특징이다.

미국 MIT 건축학과에서는 가우디의 건축 기법을 이어 컴퓨터 소프트웨어인 ‘파티클 스프링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파티클 스프링 시스템은 입자들이 서로 격자 형태로 연결돼 상호작용을 함께 하는 시스템이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의류 시뮬레이션과 같은 그래픽 제작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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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새는 왜 강한가
Part 1. 처절한 생명력 : 대멸종에서 살아 돌아오다
Bridge. ‘새의 왕국’ 불러온 진화 빅뱅
Part 2. 작지만 끈질긴, 가볍지만 정교한
Part 3. 강함을 배운다

201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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