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밤하늘에 굽이굽이 흘러가는 은하수를 따라가다 보면 남쪽에서 커다란 S자 모양(또는 큰 낚싯바늘 모양)을 한 별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독침을 품은 꼬리를 치켜 세우고 있는 전갈이다.
현재 땅에 사는 전갈은 몸길이가 1.5-21cm 정도라고 하는데, 밤하늘에 걸려 있는 전갈은 얼마나 클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전갈은 거미류에 속하는 종류 가운데 기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화석은 약 4억년 전인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밤하늘에 사는 전갈은 얼마나 나이를 먹었을까.
지난 7월 10일 미항공우주국(NASA)은 전갈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안타레스 옆에 있는 구상성단(구형 별무리) M4에서 최고령 행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질량이 목성의 2.5배인 이 행성의 나이는 무려 1백30억살이다. 기존에 최고령으로 알려졌던 행성보다 90억살이나 더 먹은 것이다. 태양과 지구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에 목성형 행성이 태양 같은 별 근처에서 형성됐다고 하니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최고령 행성이 발견된 구상성단 M4는 안타레스와 함께 전갈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 전갈의 나이가 최고령 행성의 나이인 1백30억살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NASA가 발표한 최고령 행성의 상상도를 보자. 그림 위쪽에 최고령 행성의 일부가 보이고 배경은 M4에 속한 많은 별들이 수놓고 있다. 가운데 아래쪽을 유심히 보면 이 행성이 돌고 있는 특이한 별 한쌍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물질을 양 극으로 뿜어내며 빠른 속도로 자전하고 있는 중성자별이고 나머지 하나는 백색왜성이다. 두 별 모두가 마지막 단계를 맞고 있는 별이다. 최고령 행성이 두개의 별을 돌게 된 사연이 심상치 않으리라.
토박이별과 사투 벌여
최고령 행성이 지나온 1백30억년의 세월을 더듬어보자. 이 행성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우리 태양을 돌고 있는 목성 정도의 거리에서 젊은 별을 돌고 있었다. 이 행성은 젊은 구상성단 M4에서 여러 별들이 격렬하게 태어나고 죽어가는 동안 뿜어져 나온 강한 빛과 충격파를 견디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지구에 다세포 생물이 나타나던 시기에 행성과 별은 구상성단 중심부로 뛰어들었다. 이때 중성자별(이미 전에 무거운 별이 진화해 형성됨)과 쌍을 이루는 동반별을 만났고, 함께 중력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다가 원래 동반별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후 행성과 별은 중성자별과 함께 구상성단 중심부에서 벗어났고, 행성의 원래 별은 나이를 먹어 백색왜성이 됐다. 현재 이 행성은 우리 태양에서 천왕성이 위치하고 있는 거리 정도에서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을 돌고 있다.
최고령 행성과 별은 처음 중성자별을 만났을 때 또다른 동반별과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마치 전갈자리의 안타레스처럼. 안타레스(Antares)라는 이름은 화성에 대적한다는 뜻이다. 화성은 그리스신화에서 군신 아레스(Ares)라 불렸는데, 안타레스가 화성처럼 붉은 빛을 발하고 2년에 한번씩 화성이 근처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화성이 안타레스에 접근할 때 왕이 궁궐을 벗어나면 왕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었고, 옛날 멕시코의 마야인들도 안타레스를 죽음의 신으로 불길하게 여겼다.
최고령 행성이 행성으로 밝혀지기까지도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먼저 1988년에 중성자별이 먼저 발견됐다. 이 중성자별은 등대처럼 매초 1백번 정도씩 자전하면서 규칙적으로 전파를 방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바로 중성자별이 방출하는 전파의 주기에 나타난 불규칙성을 통해 백색왜성이 확인됐다. 그 후 여분의 불규칙성을 두고 제3의 천체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 천체가 행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허블우주망원경의 정교한 관측 덕분에 이 천체가 목성 질량의 2.5배에 해당하는 최고령 행성으로 드러났다.
여름 밤하늘에서 전갈자리의 안타레스 근처를 살피면서 최고령 행성이 살고 있는 별무리 M4를 찾아보자. M4는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니 도전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