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었더니, 유명 바리스타의 최고급 커피가 나왔다.”
최근 세계적으로 화제인 스‘ 탭(STAP, 자극촉발만능)줄기세포’ 연구 결과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줄기세포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이번만큼 단순한 방법으로 놀라운 결과를 낸 연구는 드물었다. 스탭줄기세포는 일본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종합연구센터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만든 만능줄기세포다. 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치료가 불가능한 퇴행성 신경질환을 치료할 수 있지만, 아직 한계가 많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스탭세포는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데다 실용화도 훨씬 쉬워 보인다.
복제배아와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장점만 합쳤다
지금까지 만든 줄기세포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자궁에 착상한 배아로부터 만드는 ‘배아줄기세포’로, 우리 몸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참고로 성체줄기세포는 골수 등에 들어 있는 줄기세포인데, 제한된 종류의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 핵을 넣어 만든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다. 2004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논문조작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세계 최초로 인간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분화가 잘 되고 면역거부반응이 없지만, 난자를 이용해 생명윤리 문제가 있고 암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체세포에 4가지 외부 유전자(Oct4, Sox2, Klf4, c-Myc)를 넣어 만든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이 연구로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배아줄기세포만큼 다른 세포로 분화하기 쉽고, 환자 체세포로 만들어 면역거부반응이 없다.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그러나 치료용 세포로 만들어 몸에 주입하면 극소수의 미분화세포로 인해 암이 생길 위험이 있다.
스탭줄기세포는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와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장점만 합쳤다. 난자를 쓰지 않아 윤리적 문제도 없고,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아 더 안전하다. 면역거부반응도 없다.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연구팀은 다른 줄기세포와 달리 분화가 끝난 세포를 약산성용액에 담그는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스텝줄기세포를 만들었는데, 성공률은 오히려 더 높다.
산성도만 조절해 세포의 운명을 바꾸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문제는 외부 유전자를 도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넣지 말고 간단한 자극만으로 만능줄기세포를 만들 수 없을까. 이것이 일본 연구팀의 목표였다. 연구팀은 먼저 갓 태어난 쥐의 비장에서 조혈모세포(백혈구, 적혈구 등 모든 혈구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채취했다. 갓 태어난 쥐를 이용한 이유는 아무래도 어린 세포가 나이든 세포보다 더 효율적으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 세포를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에 노출시킨 뒤 배양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하는 ‘전분화능’이 나타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다양한 조건 가운데 pH 5.7인 약산성 용액에 25분 동안 배양한 세포에서 녹색형광이 관찰됐다. 전분화능이 생겼다는 20뜻이다. 연구팀이 전분화능 유전자가 활동할 때 녹색형광유전자도 동시에 발현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에서는 발현하지만 조혈모세포에서는 발현하지 않는 여러 단백질도 스탭세포에서 전부 나타났다. 생후 1주일 된 유전자조작 쥐의 뇌, 피부, 근육, 지방, 골수, 폐, 간 조직에서 채취한 세포도 같은 과정을 거치자 전분화능이 생겼다.
하지만 스탭세포는 몇 세대 동안 분열하면 자가재생능력이 떨어졌다. 아직 완전한 줄기세포는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했다. 배아줄기세포를 키우던 배지에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을 넣고 스탭세포를 배양했더니,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수준의 자가재생능력까지 나타났다. 마침내 ‘스탭줄기세포’가 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상세포에 비해 염색체가 2배(사배체)가 되는 ‘사배체보완실험’에서 스탭세포는 쥐 태아뿐만 아니라 태반으로까지 분화했다. 배아줄기세포는 나중에 태반이 되는 배반포 외부 세포로는 분화하지 못한다. 스탭세포가 다른 그 어떤 줄기세포보다 분화능력이 한 수 위라는 얘기다.
이는 수백 년에 걸친 생물세포학의 역사를 뒤집을 만큼 획기적이다. 이전에 만들었던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유전자를 이용한 것으로, 기존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스탭줄기세포는 기본적으로 산성도만 조절해 세포의 운명을 바꿨다. 그간 쌓은 과학지식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단순하다.
돌연변이 없을지 검증해야
아직 모든 궁금증이 해명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연구가 ‘진짜’인지 확인해야 한다. 오보카타 박사는 지난해 봄에도 ‘네이처’에 스탭세포 관련 논문을 보냈다가 ‘실수로 얻은 결과’라며 게재를 거절당했다. 네이처 편집진조차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필자가 박사 과정 중 2006년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유도만능줄기세포 논문을 게재 전에 검토한 적이 있는데, 필자가 있던 실험실 동료들은 불가능한 연구라며 ‘게재 불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얼마 뒤 이 논문이 ‘셀’에 발표돼 알아 보니, 논문을 검토한 다른 두그룹에서 실험을 재현해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스탭세포처럼 기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연구라면 다른 실험실에서 똑같이 만들어보는 실험의 재현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학문적으로는 단순한 자극으로 어떻게 분화가 끝난 세포가 만능줄기세포가 될 수 있는지 분자 수준에서 규명해야 한다. 일본 연구팀은 아직 분화가 끝난 세포가 왜 약산성 용액에서 줄기세포로 변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또 실제 치료에 사용하려면 어른 쥐와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종에서 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 약산성 용액에 넣을 때 돌연변이가 일어나지는 않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스탭세포가 사실이라면 줄기세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특히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한 달이상 걸리는 반면 스탭세포는 일주일이면 만들 수 있어, 안정성만 검증되면 향후 재생의학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