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삼킨 흉포한 물의 공격
가뭄은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1200여 년 만에, 중국 동부 곡창지대는 53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2년 전 동아프리카는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찾아와 수만 명이 죽고 1000만 명이 굶주렸다. 홍수도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미국은 홍수 때문에 매년 100억 달러(약 11조 원) 이상 피해를 입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매년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물이 미쳐 날뛰고 있다. 물이 왜 이렇게 무서워진 걸까. 해답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지표와 바다에 있는 물이 더 많이 증발하고 식물이 품은 물이 더 많이 증산한다. 대략 지표면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증발산량은 7.5% 증가한다. 물은 순환하기 때문에 증발산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강수량도 증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다. 강수량은 위도나 지형에 따라 편차가 상당하다. 복수의 기후변화 모델들이 지구가 따뜻해지면 열대와 온대 지방에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아열대 지방은 강수량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와 동시에 건조한 아열대 지역이 점점 극지쪽으로 확장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물 폭탄을 내리기도 한다. 기후 변화 모델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단기간에 비가 많이 내리는 호우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또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같은 열대성 저기압도 더 자주 출현한다.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해수면에서 수증기가 증발해 공기 중에 충분한 수증기가 있어야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동시에 증발산량도 증가한다. 그 결과 대기 중 물의 농도가 증가하고 태풍도 더 쉽게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도 기후변화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하수는 인류가 사용하는 신선한 물의 3분의 1을 공급하고 있으며 특히 농업 용수의 40% 이상을 책임진다. 하천과 바다에 물을 공급해 마르지 않게 하는 것도 지하수의 몫이다. 그런데 최근에 기후 변화로 가뭄을 겪고 있는 아열대 지방의 지하수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호주의 머레이-달링 분지 대수층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000억t 이상의 물이 사라졌다. 대수층이란 빙하기에 만들어진 큰 지하수 저장탱크다. 인도는 부족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전기요금까지 보조해가며 지하수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지하수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쓴 만큼 잘 채워 넣는 일이 중요하다. 지하수를 충전하는 주요 경로는 지표면의 갈라진 틈과 투과성이 높은 지층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곳을 통해 연간 15조t 이상의 물이 지하수로 다시 돌아간다고 추측하고 있다. 인류가 한 해 동안 사용하는 신선한 물의 30%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기후변화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선 증발산량이 늘어 물이 흡수되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가뭄이 늘어 오랫동안 물이 공급되지 않거나, 지표면의 유속을 빠르게 하는 호우가 잦아져 물을 제대로 흡수할 시간도 부족하다. 빙하가 있는 고위도 지방의 경우에는 빙하가 일찍 녹기 시작해 막상 여름이 오면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게 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그레이스(GRACE) 위성이 내놓은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제이 파미글리에티 박사는 2014년 11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파미글리에티 박사는 가뭄 때문에 지구 전체의 지하수 사용이 늘어 더 이상은 자연적으로 보충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밝혔다. 지구의 중요 대수층을 살펴본 결과, 7개중 6개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수위가 줄었다.

‘무서운 물’에 직격탄 맞는 한반도
기후변화로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가뭄은 길어지고, 홍수는 늘고, 지하수는 사라지고 있다. 물과 관련한 이상기후로 매해 수만 명이 사망하고, 부족한 수자원을 두고 국가 간에 분쟁이 일기도 한다. 먼 나라 이야기라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가 다음 차례다. 아니, 한반도에도 벌써 무서운 물의 공격이 시작됐다.
몇 해 전까지 한국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한반도 6년 가뭄설이 농담처럼 돌고 있었다. 한반도에 큰 가뭄이 드는 때를 표시해보니 대략 6년에 한 번 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뭄의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 장마가 찾아오기 직전에 나오던 가뭄 뉴스가 이제는 겨울이나 봄에도 나온다. 이렇게 가뭄이 계속되면 토양이 갈라져 쉽게 침식된다. 갈라진 토양은 비가 조금만 내려도 쉽게 쓸려 내려가고 흘러내려온 토양은 하천에 빠르게 도달해 홍수 피해를 키운다. 토양이 쓸려 내려간 자리는 지층이 얇아져 다시 지하수로 돌아가는 물의 양을 줄이게 된다. 새로 지하수로 유입되는 물은 줄어드는데 농촌의 지하수 사용량은 제대로 관리조차 되지 않는다. 덕분에 지하수의 최종 종착역인 하천은 메마르고 있다.
지금도 앞이 깜깜한데 앞으로 한반도는 더 큰 위기에 빠질 전망이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IPCC) 5차보고서는 2050년까지 우리나라 평균기온이 3.2℃ 상승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현재는 제주도와 남부해안 일부 지방에만 해당하는 아열대성 기후가 한반도 전체로 확대된다. 비가 적게 오는 해가 많아져 가뭄 발생 기간이 3.4배 증가하고, 기온이 증가해 생활•공업•농업 수요는 늘어난다. 장마기간이 6~8월에서 7~9월로 이동해 농업용수 수요가 큰 6월에는 물 부족이 예상된다. 하루 강수량 80mm가 넘는 호우발생 일수는 60% 이상 증가한다. 특히 수도권•강원 영동지방은 호우가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거대 홍수의 강수량은 20% 증가해 현재 지어진 제방의 홍수방어능력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무서운 물의 역습에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걸까. 다음 파트에서 ‘똑똑한 물’로 무서운 물에 맞서는 사람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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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한반도 덮치는 무서운 물
Bridge. 그래픽으로 보는 서울 물 지도
Part 3. 공유, 기술, 소통으로 본 똑똑한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