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6월 ‘사이언스’에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의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인체의 허파꽈리 세포를 인공 칩 안에 배양하는 연구였다. 칩 안에 있는 허파꽈리 세포는 사람이 숨을 쉴 때와 똑같이 움직이고 물리적, 화학적 반응도 비슷하다. 연구를 주도한 허동은 서울대 의공학과 교수(당시 하버드대 연구원)는 “간단히 얘기하자면 허파꽈리를 구성하는 세포막, 폐세포, 모세혈관을 마이크로 크기의 칩에 배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의 날갯짓과 곤충의 특정 부위, 식물의 특정 기능 등 겉으로 드러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생체모방 공학의 영역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조직의 형태와 기능을 그대로 본따고, 생리적 기능까지 갖추는 연구가 최근 생체모방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핫(hot)’한 분야로 꼽힌다. 허 교수의 허파꽈리 조직 모사 칩은 신약의 반응을 테스트하고 부작용을 없애는 데까지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허파꽈리 칩을 통해 미세 신체조직 모방의 세계를 확인해 보자.
허파꽈리 조직을 칩 속에 담다
사람이 숨을 쉬도록 해주는 허파꽈리는 폐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다. 숨을 쉴 때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를 반복한다. 허파꽈리 외부의 압력이 대기압보다 낮아지면 허파꽈리가 팽창한다. 이 때 코나 입을 통해 공기가 폐로 빨려 들어간다.
허 교수가 만든 생체 칩은 이 허파꽈리를 그대로 모사했다. 연구진은 합성수지(PDMS)를 생체막으로 이용했다. 한쪽에는 인체에서 추출한 폐세포를 배양하고 다른 쪽에는 모세혈관 세포를 배양했다. 허파꽈리 조직과 똑같다. 세포가 자란 후 배양액을 제거하면 칩에서 자란 폐세포가 공기에 노출되면서 인체와 유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먼저 칩이 실제 허파꽈리처럼 움직이는지 알아봐야 했어요. 칩을 중간에 두고 양 옆을 진공 상태로 만들었죠. 그러자마자 칩의 폐세포가 팽창했어요.”(허동은 교수)
허파꽈리 모방 생체 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허파꽈리를 둘러싼 공간의 압력이 대기압보다 낮게 되면(칩에서 진공 상태) 허파꽈리가 순간적으로 팽창해 폐 속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현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허파꽈리 칩은 어디에 쓸까. 사람을 살리는 데 쓴다는 것이 허 교수의 설명이다. 신약을 개발하거나 약물 임상 실험을 할 때 동물을 이용하면 정확도, 효용성, 안정성이 떨어진다.
허 교수는 “신약을 하나 개발하는 데 약 8000억 원이 드는데, 실험 모델이 정확하지 않으면 엄청난 돈을 낭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세 신체 모방시스템을 만들어 인체와 비슷한 환경으로 실험하면 정확도와 성공률도 높여주는 것은 물론 시간이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생체 칩이 생리학적 기능도 모사할 수 있을까
생체모방 칩이 임상실험과 똑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생리적 기능이 같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균이 허파꽈리로 들어오면 폐세포에 염증유발물질이 만들어진다. 이후 면역세포가 허파꽈리로 모여들어 염증유발물질을 제거한다. 이 과정을 허파꽈리 칩이 동일하게 모사할 수 있을까.
연구팀은 허파꽈리 칩의 폐세포에 염증유발물질을 투입했다. 그러자 반대쪽에 있던 혈관세포가 신호단백질(수용체)을 만들며 면역세포를 불러왔다. 면역세포는 폐세포 쪽으로 이동해 염증유발물질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박테리아를 투입해도 마찬가지였다. 연구팀은 면역세포가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장면을 포착했다. 허파꽈리 칩이 실제 인체와 생리적 기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칩을 이용한 임상 실험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항암제 부작용 없애는 단백질 발견
올해 3월 서울대에 부임한 허 교수는 생체모방 칩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고 임상실험을 대신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허 교수는 최근 허파꽈리 칩을 활용해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단백질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은 바로 항암제 IL-2다. 이 항암제는 신장암이나 피부암에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으로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 나타난다. 혈관 내 조직이 상하면서 혈액이나 혈청이 허파꽈리로 유입돼 폐에 물이 찬다.
연구팀은 우선 허파꽈리 칩에 항암제 IL-2를 투여했을 때 실제 폐부종이 생기는지 관찰했다. 병원균 실험과 마찬가지로 폐세포 쪽에 폐부종 현상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다시 허파꽈리 칩에 다른 다양한 약물을 넣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반복한 결과, 항암제를 넣었을 때 조직 손상을 막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지금은 이 단백질을 분석하고 임상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허 교수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마이크로 생체 칩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생체 칩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며 다양한 생체 칩이 연구되기를 기대했다. 사람 살리는 신체 조직 모방공학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베껴야 사는 과학! 생체모방의 세계
Part 1. 과학자들이 탐내는 생체모방 명품 7선
Part 2. 허파꽈리가 칩속에서 헐떡헐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