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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30년에 10만 개 쏟아진다? 배터리 재활용 풀어야 할 숙제들

 

유럽연합(EU)의 입법부인 유럽의회는 올해 6월, 일명 ‘배터리법’을 본회의에서 승인했습니다. 환경을 위해 배터리 생산 시 재활용 광물 사용 비율을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이 지난해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도 폐배터리 재자원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터리 광물 원산지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데, 폐배터리를 갈아서 재활용하면 전기차 배터리의 국적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배터리 생산과 재활용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연구해야 할지 알아봤습니다.

전 세계가 배터리 재활용에

열 올리는 이유

 

“5년 전까지만 해도 사용 후 배터리에 이 정도로 관심이 높지 않았어요. 자본이 무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사용 후 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죠.”

 

김영식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재활용이 세계적인 이슈가 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습니다. 같은 질문에 90년대부터 이차전지를 연구한 1세대 연구자이자 국가 단위 배터리 정책과 방향을 잡아 온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역시 “차세대 이차전지 연구가 이뤄지고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자원의 편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원의 편재. 말이 어렵습니다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특정 몇몇 나라만 중요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21세기의 하얀 석유’ ‘백색 황금’ 등으로 불리는 배터리의 핵심 원료, 리튬(Li)이 대표적입니다. 미국지질조사국의 2023년 1월 자료에 따르면, 칠레와 중국,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호주, 미국에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약 80% 이상이 쏠려있습니다.

 

특히 중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볼리비아는 ‘리튬 삼각지’로 통합니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53%가 이 세 나라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들이 리튬 공급과 가격을 통제하면 세계 경제는 위협을 받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 칠레가 리튬 국유화를 선언해 한국을 비롯한 자원 빈국들이 바짝 긴장했죠.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이와 같은 자원의 편재를 분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원자재 채굴 과정에서 수반되는 환경오염 문제도 재사용과 재활용 흐름에 시동을 겁니다. 리튬을 예로 들면, 리튬 생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소금호수(염호)에서 물을 증발시켜 리튬을 얻어내거나 광산에서 리튬을 채굴하는 방식입니다(지구상의 리튬 대부분은 바다에 있으나 바다에서 리튬을 뽑아내는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입니다).

 

2022년 4월 26일, 미국의 비영리단체 천연자원수호협회(NRDC)는 ‘고갈, 남미의 리튬 광산 폐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리튬 생산이 증가하면서 원주민들이 식수난과 자연환경 파괴에 따른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소금호수에서 리튬 1kg을 생산하려면 약 2200L의 소금물을 증발시켜야 합니다. 보고서에서는 “원래 지하수로 스며들었어야 하는 물이 공기 중으로 증발되면서 리튬 채굴 지역의 농수가 부족해 작물이 마르고, 홍학, 여우, 도마뱀 등 희귀 생물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리튬을 광산에서 채굴하는 방식도 환경오염을 일으키긴 마찬가지입니다. 리튬을 추출하기 위해 광석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황산과 염산 등 화학물질이 사용돼 주변 생태계를 오염시킵니다.

 

재활용 과정에서 오히려

환경오염 발생한다?

 

그렇다면 당장 재활용을 시작하면 될 일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취재하며 몇 가지 어려운 점을 알게 됐습니다.

 

첫째는 재활용 공정이 오히려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취재 중에 만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술이 아직 최적화돼 있지 않다”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환경오염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폐배터리를 분쇄한 블랙매스에서 유가 금속을 뽑아낼 때를 예로 살펴봅시다. 습식제련 공정은 산성 물질을 이용해 블랙매스를 녹이기 때문에 폐산이 나옵니다. 건식제련 공정은 고온으로 블랙매스를 가열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김 교수는 “지금의 기술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며 “더 나은 (재활용) 기술들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건식과 습식이라는 기존의 제련 공정에서 벗어나 전기화학적 제련 방법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의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 연구팀은 회전하는 반응 용기 하나에 여러 가지 용매를 넣어서 다양한 유가 금속을 각각 분리해 내는 기존보다 간단한 공정을 개발해 올해 3월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doi: 10.1002/adma.202211946

 

처음부터 폐수를 만들어내지 않고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뽑아낼 방법을 고민하는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에코알앤에스는 폐배터리를 분쇄해 만든 블랙매스를 증류수에 녹인 후 이산화탄소를 결합시키는 등 결정화 과정을 거쳐 폐수 없이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규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앞으로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술도 친환경 기준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재활용 기술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효율이 좋아야 하고, 재활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쌓여있는 사용 후 배터리

평가 속도 높여야

 

사용 후 배터리를 재사용할지 재활용할지 평가하는 과정도 정비해야 합니다. 현재는 수거한 배터리를 평가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를 관리하는 김형준 한국환경공단 수도권서부환경본부 과장은 “배터리 하나를 평가하는 데 보통 8시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개의 배터리를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안전상 방폭 기능을 갖는 항온항습 챔버에 하나씩 넣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2022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도권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에 회수된 전기차 배터리는 781개인데, 그중 상태 평가가 완료된 배터리는 298개에 그칩니다. 사용 후 배터리가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시점이 되면 이 속도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박철완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상태를 빠르게 진단하면서도 정밀하게 감별하는 기술이 결국 리튬이온 사용 후 배터리 산업의 핵심이자 숨어있는 꿈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용 후 배터리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용 이력’을 확인하는 겁니다. 윤성훈 중앙대 융합공학부 교수는 “배터리를 얼마나 썼느냐보다 어떻게 썼느냐가 배터리의 미래 수명을 좌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는 사용 후 배터리의 재사용, 재활용을 판단할 때 크게 잔존수명과 절연저항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배터리마다 사용 이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이는 건강검진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라도 살아온 이력에 따라 질병 발생 여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심장, 간, 뇌 등 세분화된 건강검진을 하죠. 마찬가지로 오래 사용한 배터리일수록 세분화된 평가가 필요합니다.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도심에서 출퇴근용으로만 사용한 배터리와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달렸던 배터리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학계에서는 배터리 셀의 수명을 예측하기 위한 핵심 지표가 무엇인지 찾는 노력이 한창입니다. 이는 배터리 셀 각각의 상태가 조금씩 다른 불균일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최윤석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배터리는 불균일과의 싸움”이라며 배터리 수명을 예측하기 위한 지표로 “배터리 내부 각 셀들의 균일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배터리 셀 어느 하나가 심하게 열화돼 열을 뿜어낸다면, 해당 셀만 내부저항이 커지면서 잔존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셀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 결과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열화가 발생하고, 배터리 기능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임한권 UNIST 탄소중립대학원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8월 17일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의 잔존수명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전기차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최 교수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 교수는 “배터리 잔존수명이 80% 이하로 떨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스마트폰 배터리를 확인하듯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배터리를 기대하며

 

궁극적으로는 재활용하기 쉬운 배터리를 만드는 것도 폐배터리 재활용을 돕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배터리 성능과 제작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바닷물을 이용한 해수전지(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일종)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구조는 비슷하나 주원료로 바닷물 속 나트륨 이온을 사용해 경제적이라는 장점을 갖습니다. 전해질로 액체 대신 고체를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으면서도 화재 위험이 적은 차세대 배터리로 평가받습니다.

 

최윤석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를 당장 개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규태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만큼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사고 위험, 원료 수급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가 개발된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시스템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성능이 뛰어나면서 재활용도 잘 되는 차세대 배터리는 언제쯤 세상의 빛을 볼까요. 답은 2019년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고(故)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의 일화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1979년 구디너프 교수가 리튬이온 배터리 특허를 막 냈을 때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그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의 특허를 중소기업에 헐값에 팔아버립니다. 그런데 그의 특허는 불과 10년 만에 상용화되며 전기차 시대를 열어젖혔습니다. 2019년에는 구디너프 교수를 포함해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기여한 3명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배터리 기술이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관심 갖고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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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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