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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 과학자의 이상한 물


약 46억 년 전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지구는 아주 뜨거웠다. 수많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고, 이 충돌로 생긴 에너지 때문에 지표면의 온도는 수천ºC에 달했다. 암석이 녹을 정도로 뜨거웠으니, 물은 당연히 모두 증발해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지구는 표면의 절반 이상이 물로 덮여 있다. 누가 언제 지구에 물을 가져다 놓았을까.

물의 ‘레시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구의 물은 우리가 아는 보통의 물과, 그보다 좀 더 무거운 물(중수)이 일정한 비율로 섞여 있다. 무거운 물은 보통 수소 대신 조금 더 무거운 중수소로 이뤄져 있는데, 지구 바닷물에는 보통 수소 대비 중수소 비율이 0.01% 정도다.

과학자들은 만약 혜성이나 소행성의 중수소 비율을 조사하면 물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이슈가 된 탐사선 로제타의 탐사 결과부터 살펴보자. 로제타가 혜성 ‘67P/추류모프 게라시멘코(추리)’ 주변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가 2014년 12월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추리 주위의 중수소 비율은 지구보다 무려 세 배나 높았다. 이보다 30여 년 앞서 1986년에는 지오토 우주선이 핼리혜성 주변에서 역시 무거운 물의 비율을 측정했다(26쪽 참고). 이 값은 지구보다 2배 가량 높았다. 반면 2011년 허셸 망원경으로 관측한 명왕성 근방의 카이퍼대 혜성에서는 지구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눈치챘겠지만, 혜성의 물 레시피는 지구와 달리 천차만별이다. 만약 혜성이 지구에 물을 배달했다면, 현재 지구 바닷물의 레시피처럼 일정해야 하는데 말이다. 아쉽게도 혜성은 후보에서 탈락이다.

얼음으로 이뤄져 수증기를 뿜어내는 혜성과 달리 소행성은 대기가 없어서 물 레시피를 알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지구에 떨어진 운석, 즉 소행성 파편을 연구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소행성은 아주 건조해서 물을 거의 포함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2014년 10월 미국 MIT대 연구팀이 소행성 베스타에서 온 운석으로부터 물의 흔적을 발견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베스타의 물은 지구와 성분이 비슷했다. 그러나 소행성과 지구의 물 레시피가 비슷하다고 해서 섣불리 지구의 물이 소행성에서 왔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혜성 중에도 지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중수소 비율 외에 질소와 탄소의 레시피도 조사했다. 수소처럼, 질소와 탄소에도 평범한 종류가 있고 동위원소라고 부르는 좀 더 무거운 종류가 존재한다. 조사 결과 베스타는 질소와 탄소의 비율도 지구와 비슷했다. 이제 소행성이 지구로 물을 가져다 준 배달부라고 해도 좋을 듯한데 아직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소행성 베스타에 물이 있다 해도 혜성에 비해서는 정말 적은 양이다. 어떻게 이런 소행성들이 지구에 바다를 만들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은 지구에 물을 가져다 준 소행성의 고향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얼음이 많은 곳에서 왔다고 추측한다. 소행성들이 태양계 형성 초기에 목성과 같은 거대한 행성의 중력에 휘둘려 지구 근방까지 온 뒤 어린 지구와 충돌해 바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달의 엄청나게 많은 크레이터가 말하는 것처럼, 지구도 태양계 초기에 셀 수 없이 많은 소행성과 부딪혔을 것이다. 지구는 큰 중력으로 충돌 때마다 물을 놓치지 않았고 이 물이 현재의 바다가 됐다.

그렇다면 언제 물을 배달했을까? 지구는 지질활동이 아주 활발해서 지표면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아주 초기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베스타를 살펴봐야 한다. 베스타 운석의 나이부터 따져보면 베스타는 태양계가 탄생하고 약 800만~2000만 년 뒤에 만들어졌다. 그때는 목성이 소행성들을 이리저리 마구 튕겨 보내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전까지는 달의 암석을 분석한 결과 태양계 탄생 이후 최대 1억5000만 년 이내에 구에 물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베스타는 이 시점을 약 1억3000만 년이나 앞당겼다.
 


올해 3월 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던(DAWN) 우주선은 소행성대의 왜행성 세레스에 도착했다. 세레스에는 거대한 지하 바다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로제타와 던 우주선 같은 소행성 탐사선은 태양계의 기원뿐만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행성의 물의 기원에 대해 좀 더 확실한 대답을 해줄 것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원소는 무엇일까. 일단 가장 많은 물질은 물이다. 물은 몸의 60% 이상을 구성하고 있다. 당연히 물을 구성하는 원소인 수소와 산소가 우리 몸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다. 물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둘 중에서는 수소가 더 많다. 수소 원자는 무려 4.2×1027개나 있다. 몸속에 수소원자가 이렇게 많다보니 우리 몸의 영상을 찍을 때 이를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수소원자핵을 비롯한 일부 원자핵은 스핀이라는 성질을 가진다. 스핀은 지구가 자전하듯 원자핵이 가상의 축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원자핵이 물리적으로 회전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각운동량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핵이 스핀을 가지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스핀은 그냥 ‘존재’한다. 질량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는 것처럼 스핀도 그냥 존재하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원자핵의 스핀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세상에는 없는 성질이므로 이를 실제로 관찰하기도 대단히 어렵다. 우리가 스핀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는 자기공명 영상장치(MRI) 같은 강력한 자기장 속에서다.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다

MRI는 자기장을 이용해 수소원자핵을 회전시킨 뒤 정상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수소 원자핵의 회전축은 외부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된다. 사람도 MRI에 들어가면 몸속 수소원자핵들이 작은 자석처럼 외부 자기장 방향으로 배열된다. 이렇게 일정한 방향으로 수소원자를 고정시킨 뒤 고주파의 전자기파를 쏴 수소원자를 회전시킨다. 회전하는 수소원자핵은 고주파를 끄더라도 한동안 계속 돌면서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다 천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MRI는 이때 수소원자핵이 내놓는 전자기파를 측정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측정해서는 몸의 입체구조를 알 수 없다. 관찰하는 대상 전체의 신호를 측정하는 것이 라 특정한 위치별, 단면별 신호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소원자가 흥분상태일 때 x, y, z축의 3가지 경사자기장(gradient magnetic field)을 추가로 걸어준다. 경사자기장은 몸속 수소원자핵들을 저마다 위치에서 각자 다른 속도로 회전하게 한다. 이 속도가 몸의 특정 부위를 나타내는 좌표가 된다. 마지막으로 좌표 정보를 수학적으로 해석해 입체구조를 그린다.
 


자기장이 강하면 보다 많은 수소원자핵들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시킬 수 있다. 당연히 더 강한 신호가 만들어진다. 신호가 더 강해지면 MRI 영상도 더 정밀해진다. 그래서 현재 MRI 연구의 가장 큰 목표는 강한 자기장을 내는 MRI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인체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최고성능의 MRI는 9.4T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현재 11.7T와 14T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자핵이 아닌 원자 자체로 보면, 물(수소)은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성질을 갖는다. 외부자기장이 주어졌을 때 그 자기장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자성을 띤다는 점이다. 앞에서 수소원자핵은 외부자기장과 같은 방향으로 자성을 띤다고 설명했는데 수소원자(원자핵+전자)는 그 반대라고 하니 모순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원자 혹은 분자의 자성은 ‘원자핵’이 아닌 ‘전자’가 결정하기 때문에 틀린 말이 아니다. 물의 수소 전자는 외부 자기장에 반대 방향으로 자성을 갖는다. 수소처럼 외부 자기장 반대 방향으로 자성을 가지는 물질을 반자성물질이라 부른다.

수소는 우리 몸에서 62%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자기장 속에서 우리는 자기장 반대 방향의 자석이 된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 만약 개구리를 아주 강력한 자기장(16T)에 두면 수소의 반자성 때문에 중력 반대 방향으로 힘이 생겨 그 자리에 뜬다. 사람도 약 4만T 정도 자기장에 들어가면, 공중부양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런 자기장을 만들 수 없고, 존재하더라도 누구도 무사히 탈출할 수 없다.



미시세계는 우리가 평상시에 경험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다. 물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카락 굵기(약 100μm, 1μm는 100만분의 1m) 수준의 작은 관으로 만든 미세유체 칩(microfluidic chip)에서는 큰 물에서 힘을 못 쓰던 세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작은 물’을 휘두르는 첫 번째 특성은 표면장력이다. 표면장력이란 표면적을 가능한 작게 만들기 위해 액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말한다. 물은 수소결합 때문에 표면장력이 특별히 더 강하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고, 물방울에 갇힌 개미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재밌는 실험을 했다. 일명 ‘춤추는 물방울’. 투명한 슬라이드 위에서 물방울이 서로 술래잡기를 하듯 서로 따라다닌다. 아무런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말이다. 물방울 속에 섞인 유기물인 프로필렌글라이콜이 이 현상의 비밀이다. 슬라이드 위에 놓인 물방울은 마치 돔구장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 물방울 표면에서 물은 프로필렌글라이콜보다 훨씬 빨리 증발한다. 따라서 그곳의 프로필렌글라이콜 농도가 높아진다. 이때 표면 장력의 균형이 깨지면서 물방울이 스스로 움직인다.

표면장력은 아주 낮은 농도의 물질을 검출하는 센서 칩을 만들 때 활용하기도 한다. 작은 관에 물과 오일을 흘리면 표면장력 때문에 오일에 둘러싸인 작은 물방울을 계속 만들 수 있다. ‘미세 물방울 제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검출 민감도를 올리는 데 활용된다. 1mL 용액에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바이러스를 검출하기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만약 1mL를 100만 개의 1nL 물방울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바이러스는 쪼개지지 않으므로 물방울 100만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1개/nL 농도의 바이러스가 있다. 처음(1개/mL) 보다 100만배나 진한 농도다. 이런 식으로 큰 물을 작은 물로 잘게 쪼개면, 낮은 검출 성능으로도 민감하게 목표를 찾아낼 수 있다.



표면전하도 작은 물을 가만두지 않는다. 물질의 내부와 외부는 전기적 준위가 다르기 때문에 표면에 전하가 생기는데, 이를 표면전하라고 부른다. 물이 접촉하는 면의 표면전하를 이용해 작은 물의 모양을 쉽게 바꿀 수 있다.

포스텍 연구팀은 점프하는 물방을을 만들었다. 소수성으로 코팅된 절연층 위에 물을 올리면 물방울이 공처럼 둥근 모양이 된다. 이 상태에서 절연층 아래 전극에 전류를 흘리면 표면전하가 변해 물이 전극 방향으로 납작하게 눌린다. 이 상태에서 전기장을 끄면 물방울에 저장된 전기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해 물방울이 공처럼 튀어 오른다. 펄스 형태로 전기장을 가하면 더 높이 점프시킬 수 있다.

 

표면전하를 이용해 물방울 발전소를 만들 수도 있다. 부산대 연구팀의 성과다. 물과 음전하를 띤 표면이 접촉하면 접촉면에는 물속 양이온이 모여 층을 형성한다. 물방울을 두 평면 기판 사이에 놓고 누르면 물과 기판 사이의 접촉면이 넓어진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떠돌던 양이온이 넓어진 면으로 이동하면서 표면 전하 분포도 바뀐다. 평형을 이루던 기판의 자유전자 균형이 깨진다. 양쪽에 전위차가 생기고, 전류가 흐른다. 단 1g의 물로 LED 전극 6개를 동시에 밝힐 수 있다.

마지막은 점성력이다. 물과 같은 유체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는 관성력과, 형태가 바뀌는 것에 저항하려는 점성이다. 커다란 관에서는 점성력보다 관성력이 훨씬 크다. 관이 하나인 수도꼭지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틀면 움직이려는 힘이 커서 물이 잘 섞인다. 하지만 미세채널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한 손은 뜨거운 물, 반대는 차가운 물로 씻게 될 것이다. 미세채널에서는 관성력보다 점성력이 더 크고, 따라서 물은 서로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루게 된다. 이를 층류현상이라고 부른다.

층류현상은 의학에도 활용된다. 건강한 정자를 찾을 때다. 입구가 두 개인 미세유체 칩의 한 쪽 입구에는 희석시킨 정액을, 다른 쪽은 깨끗한 액체를 흘려준다. 두 액체는 층류현상 때문에 서로 섞이지 않는다. 정액에 든 불순물과 운동성이 낮은 정자는 반드시 들어온 채널의 출구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활동성이 뛰어난 건강한 정자는 다른 채널로 넘어가기도 한다. 따라서 반대 출구에는 항상 건강한 정자만 모인다. 미국 미시건대 연구팀은 이런 건강한 정자를 골라내 인공수정 성공률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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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이상한 물, 무서운 물, 똑똑한 물
Part 1. 세 과학자의 이상한 물
Part 2. 한반도 덮치는 무서운 물
Bridge. 그래픽으로 보는 서울 물 지도
Part 3. 공유, 기술, 소통으로 본 똑똑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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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유제 한국천문올림피아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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