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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가?

바이러스의 인간사육


레트로트랜스포존

트랜스포존이란 DNA 위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전이) DNA 유전인자를 말한다. 그중 레트로트랜스포존은 RNA 중간체로 전사된 다음, 이 RNA 가닥을 이중가닥의 DNA로 역전사하고 이것을 다시 유전체의 다른 위치에 삽입한다. 기존의 레트로트랜스포존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전이가 반복될수록 그 수가 늘어나지만 대부분은 돌연변이가 축적돼 이동능력을 상실했다. 전이과정에 필요한 역전사효소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 가진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이러스의 다양성은 다른 세포 생물(미생물, 동물, 식물 등) 전부를 합한 것보다 크다.

개체 수도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을 합한 것보다 월등히 많다. 실제로 바닷물 1L 속에는 약 10억 개의 바이러스 입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세균(박테리아)에서 귤나무, 곰팡이, 사람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모든 생물을 감염시킬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바이러스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잘못된 접근일 수도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기원’이란 거대한 비밀에 닿기 위해 주로 유전정보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크게 세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세포는 바이러스의 아버지?

먼저 세포퇴화설이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폭스바이러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바이러스의 유전체(게놈)는 사람과 같은 DNA 이중가닥으로 돼있고 80~100개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체 크기가 아주 작은 박테리아보다 큰 경우도 있다. 최근 밝혀진 미미바이러스의 유전체 크기는 세균인 마이코박테리아의 2배가 넘는다.

세포퇴화설은 이런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즉 정상적인 세포가 퇴화해서 세포라는 옷을 벗고 유전체와 껍질 단백질만 남은 바이러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만으로는 전체 바이러스 종류의 절반을 넘는 RNA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하기 어렵다. 세포는 DNA만으로 유전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세포탈출설이다. 이 가설은 세포 퇴화설이 풀지 못하는 RNA 바이러스의 기원을 밝히는 데 좀 더 유리하다. 탈출 가설은 세포 유전체의 일부분이 세포를 벗어나 자기복제와 물리적 보호에 필요한 효소와 구조 단백질을 얻으면서 바이러스가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주로 사람에 감염해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 콩과 식물을 숙주로 하는 코모바이러스, 모기와 포유동물을 오가며 생활하는 신드 비스바이러스 등은 숙주와 활동영역이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이들 모두 ‘피코나-수퍼패밀리’의 구성원으로서 각각의 유전체는 세포 속에 있는 전령RNA(mRNA)와 구조가 매우 닮았다.

또, 이 바이러스들은 RNA 유전체를 복제하기 위해 특별한 효소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세포에도 비슷한 유전자가 있어 탈출 가설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세포퇴화설로 설명하기엔 이들의 유전체 구성이 너무나 단순하고 간결하다.

독립기원설은 바이러스와 세포가 각각 독립적으로 출발해 서로의 진화에 영향을 주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으로 본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일례로 레트로바이러스가 자주 등장한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예외 없이 ‘역전사효소’ 유전자를 갖고 있다. 역전사효소는 RNA의 유전자 정보를 DNA로 옮겨 담는 매우 특별한 효소다.

그런데 현존하는 세포성 생물에서는 역전사효소의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며 그나마 레트로바이러스의 친척인 레트로트랜스포존에서 유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세포 속에서 모든 유전정보의 흐름은 ‘DNA→RNA→단백질’의 방향으로만 진행된다(이것이 1956년 프란시스 크릭이 제창한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 ‘센트럴 도그마’다. 이를 거꾸로 하는 ‘역전사 현상’은 1970년에야 발견됐다). 여기에 RNA가 DNA에 앞서 생명현상의 매개분자로 사용되었음(RNA World)을 전제한다면 역전사효소와 레트로바이러스의 기원은 적어도 현재의 세포 형태가 완성 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세 가지의 기원 가설이 모든 바이러스의 탄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홍역이나 광견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음성가닥 RNA라는 또 다른 형태의 유전체를 갖고 있으며, 숙주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진화 역사상 비교적 ‘젊은’ 바이러스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곤충과 식물을 오가며 감염하는 제미니바이러스와 단일가닥 DNA 유전체를 가진 파보바이러스 등은 오늘날 세포에서 볼 수 있는 이중가닥 DNA 복제와는 매우 다른 복제기법을 사용하고 있어 이 바이러스들에 대한 기원도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현존하는 바이러스들의 기원은 한 가지 가설만 맞는 게 아니라 앞서 소개한 가설들이 모두 합해진 형태이거나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한 가설까지 포함해 여러 계통의 기원이 각각 존재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독립기원설

분화직전 공동조상(LUCA)로부터 오늘날 볼 수 있는 진핵생물, 박테리아, 고세균의 조상이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고대 바이러스권에서 이 3종류를 숙주로 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진화해 왔다는 가설이다.


인간 DNA의 8%는 바이러스의 것

과학자들은 이런 가설을 어떻게 생각하게 됐을까. 바이러스는 생활사 특성상 숙주와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그들의 집인 세포 속에 어떤 흔적들을 남겨놓지 않았을까. 몇몇 바이러스와 세포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겨왔다. 인간의 유전체 정보가 대부분 밝혀진 2000년 이후 과학자들은 이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바이러스와 세포는 같은 유전정보 언어를 쓴다. 핵산은 바이러스와 세포 모두가 정보의 저장매체로 쓰는 물질이다. 세포 생명체가 DNA만을 쓴다면 바이러스는 DNA외에 RNA도 사용하고, 때론 둘 모두를 쓰기도 한다. 핵산 세 개의 배열(ATG,AUG 등)이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시스템 또한 똑같다.

같은 언어, 같은 말씨를 쓰는 두 사람은 동향(同鄕)일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의 탄생 역시 같은 유전정보 언어를 쓰는 세포성 생물과 큰 연관이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세포퇴화설, 세포탈출설 등은 이런 추측에서 나온 가설들이다.

하지만 다른 추정도 가능하다. 태초에 다양한 유전정보 언어를 쓰는 무수히 많은 ‘자가복제 단위’들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세포는 자가복제능력의 결정판으로서 현재의 당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포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러스는 세포를 이용해 증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바이러스 유전체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세포의 유전정보 시스템과 같거나 비슷해야 하며, 적어도 세포의 유전자 발현 시스템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눈에는 세포를 닮은 바이러스만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없는 세포나 바이러스의 사촌들이 먼 옛날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와 그들이 숙주로 삼는 세포 속 유전정보의 교집합을 찾는 것도 서로에게 남긴 흔적을 찾는 방법이다. 실제로 바이러스와 숙주 생물은 많은 유전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DNA만 해도 전체의 8%가 레트로바이러스와 관련된 유전정보다. 인간이 생명활동에 활용하는 유전정보 전부를 합쳐도 불과 5% 정도라고 할 때 이는 실로 놀라운 양이다.

이렇게 인간 몸속에 바이러스 관련 유전정보가 많은 까닭은 레트로바이러스가 유전정보를 복제할 때 자신들의 RNA 유전체를 DNA로 바꿔 숙주의 유전체 틈에 끼워 완전히 통합시키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생식세포의 유전체에 통합된다면 시간이 흐르며 일부 파손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대대손손 숙주의 유전체 속에 계속 남아 ‘화석’ 유전자가 된다. 여기에 레트로트랜스포존 계열의 유전정보까지 더하면 인간 유전자에서 바이러스와 유사한 부분이 40%를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사실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체 구성이 레트로트랜스포존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레트로바이러스는 종종 탈출 가설의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원래부터 세포 속에 있던 레트로트랜스포존이 탈출해 바이러스가 된 것인지, 아니면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체가 레트로트랜스포존이 돼 세포에 남은 것인지는 흥미로운 논쟁으로 남아 있다).

생물(숙주)의 유전체는 결국 바이러스 유전체의 ‘썩지 않는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분석하면 과거의 바이러스가 어떤 유전정보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 또 여러 생물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면 바이러스가 어떤 숙주들을 감염시키며 진화해왔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

에너지 전달에는 거스를 수 없는 일정한 방향이 있다는 법칙. 열이 더운곳에서 찬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의미로서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 법칙에 따라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는 조직화된 모든 것은 시간이 가면서 물리적으로 붕괴된다.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주위의 에너지(또는 질서)를 얻어 엔트로피의 증가를 막거나 감소시켜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생물의 고유한 특성이라 주장했다.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뒤섞이고 있다.

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유럽인구의 절반을 희생시킨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지난 100년 사이에도 진화를 거듭했다. 지난 2011년 신종플루로 우리나라에서도 사망환자가 발생했고, 해마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이 전 세계를 괴롭히는 한편,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도 인간사회로 언제쯤 넘어올까 전전긍긍이다.

주목해야할 사실은 인간의 활동으로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이 점점 더 빨리 뒤섞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진화 역사 동안 바이러스는 가급적 각자의 활동구역을 지키며 살아왔다. 박테리아, 고세균, 진균, 식물 등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들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각자의 활동구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7억 년 전 등장한 곤충이 식물과 척추동물 사이를 오가며 바이러스의 활동구역을 뒤섞기 시작했다.

이처럼 활동구역이 뒤섞이자 바이러스의 진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숙주가 자연선택을 받아 멸종하거나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에게도 자연선택이 다양하게 일어난 것이다. 신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자연선택의 결과인 동시에, 숙주와 바이러스의 공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자연에선 서로 만나기 힘든 여러 숙주 종을 한 공간에 두거나, 인간 스스로 새로운 바이러스 활동구역으로 들어가면서 활동구역을 임의로 뒤섞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점점 더 잦아질 것이란 사실이다. 인류와 바이러스의 전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다.


정용석_ysjeong@khu.ac.kr
미국 텍사스-오스틴대에서 바이러스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의대에서 수학후 지금까지 경희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양한 RNA 바이러스의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며 현재 국제바이러스계통분류위원회의 한국학회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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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바이러스의 인간사육
Part 1. 8월 바이러스 대습격
Bridge. 사람이 일으키는 대유행 전염병, 바이오테러
Part 2. 바이러스가 당신을 당장 죽이지 않는 이유
Part 3.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가?
Epilogue. 인류는 바이러스로 멸망하지 않는다

201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정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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