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7/65413470851f202f691562.jpg)
천연두는 대포보다 강력하다
인간이 생물무기를 쓰기 시작한 건 무려 기원전 6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병자의 분뇨로 적의 우물을 오염시키고, 또 창과 화살에 발라 썼다. 1346년 중앙아시아 의 타타르군은 카파(현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야. 당시에는 제노바의 지배를 받았다)를 함락시키기 위해 성 안으로 페스트로 사망한 시체를 던져 넣었다. 그러자 곧 성 안에서도 페스트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탈출해 지중해 연안으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지중해 여러 항구도시로 페스트가 퍼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흑사병으로 불렸던 페스트는 당시 유럽 인구의 약 33%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무서운 질병이었다.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남미 아즈텍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천연두 때문이라는 사례는 유명하다. 원주민을 진정 두렵게 한 것은 스페인 군의 대포가 아닌 천연두 였다. 스페인 군사로부터 전파된 천연두는 토착 질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의 30%가 사망해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18세기 영국 또한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면서 비협조적인 원주민을 제거할 목적으로 역시 천연두를 사용했다.
20세기에 들어 미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생물무기는 보다 체계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개발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중 일본은 만주의 731부대에서 대규모 생물무기 개발 연구를 했다. 연구개발 과정 중 약 1만 명의 죄수가 희생당했고, 그 중 3000여명은 한국·중국인 등을 포함한 전쟁포로였다. 일본은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의 피를 벼룩이 섭취하도록 한 뒤 벼룩을 중국 도시에 살포해 페스트를 퍼지게 했다.
바이오테러 무기의 조건
미국 질병관리센터(CDC)는 현재 사용하거나 훗날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위험도, 치사율, 전파력 등을 고려해 A, B, C 세 등급으로 분류했다. 가장 위험한 A등급에는 천연두, 출혈열바이러스, 탄저균, 보튤리즘, 페스트가 있다.
그 중 탄저균과 천연두바이러스는 대량 생산이 쉽고, 치사율이 높으며 공기 전염까지 돼 무기로써 가장 가치가 높다. 특히 천연두바이러스는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박멸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백신 접종이 중단돼 1980년 이후 출생자는 거의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다. 또 효율적인 치료 방법이 없으며 치사율은 30~40%에 이른다. 1989년 당시 구소련은 연 수십t의 천연두바이러스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혹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유전자 재조합, 돌연변이 유도 등의 방법을 이용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H5N1)의 유전자재조합을 실험실에서 시도할 수 있다. H1N1은 전염능력이 뛰어나고, H5N1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안그래도 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이 두 바이러스가 만나 괴물이 탄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원하는 바이러스를 얻는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2012년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메디컬센터 연구진과 미국 위스콘신-매디슨의대 연구진이 H5N1의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전염능력을 끌어올렸지만 대신 독성이 계절독감 수준으로 낮아졌다. 바이러스를 재조합해 가공할 병기를 만드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테러리스트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
비슷한 바이러스끼리의 재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에 속한 바이러스끼리 유전자를 합치는 것은 기술적으로 훨씬 더 어렵고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누가 알랴. 막대한 자본과 뛰어난 연구 인력의 투입으로 어느 은밀한 곳에서 사상최악의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있을지.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7/104417039351f202e8eabf5.jpg)
바이오테러 어떻게 막나
생물무기를 이용한 바이오테러를 막는 방법에는 크게 예방과 치료가 있다. 예방은 백신을 접종하는 것 외에도 감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경로차단, 제독 같은 방법도 포함한다. 치료에는 항바이러스제, 항생제, 항체 등을 사용한다. 생물무기는 어떤 병원체인지, 언제 어디서 사용한 것인지 확인이 어렵고 은밀하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관건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무기 중 가장 파괴력이 큰 탄저균과 천연두바이러스 모두 백신이 개발돼 있으나 두 종류 모두 여러 번 접종해야 하며 부작용이 있고, 생산비가 높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백신 개발도 필요하다. 특히 현재 보유한 백신은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추가 생산해 비축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바이러스의 인간사육
Part 1. 8월 바이러스 대습격
Bridge. 사람이 일으키는 대유행 전염병, 바이오테러
Part 2. 바이러스가 당신을 당장 죽이지 않는 이유
Part 3.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가?
Epilogue. 인류는 바이러스로 멸망하지 않는다
글 양재명 jaimyang@sogang.ac.kr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이러스학을 전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