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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세운 세모 위에 작은 세모 두 개를 그리면 옛날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내 얼굴이 보입니다. 얼굴도, 몸도, 꼬리도 모두 길쭉해 날렵하다는 인상 때문에 다른 동물을 속이는 약삭빠른 성격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요괴가 되어 인간을 홀린다고도 알려진 동물, 내 이름은 ‘여우’입니다.

 





나는, ‘닭을 잡아먹지 않는’ 여우입니다

나는 개과 여우 12종류 중 여우(Vulpes vulpes)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전역, 북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북부 아프리카, 호주 등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동물이지요. 나는 옛날 이야기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자주 보였다는 뜻이지요. 나는 인간 마을 뒤 야산이나 산림 저지대, 얕은 구릉처럼 언덕이 시작되는 곳에서 살아갑니다. 물이 가까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먹이인 쥐가 많다면 금상첨화지요. 인간도 이 지역에 집 짓고 살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느니 이런 말 있잖아요? 인간은 나와 많이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밤마다 인간을 홀린다는 말은 아마 날 주로 보는 시간이 밤이기 때문일 거예요. 낮에는 인간 눈에 안 띄는 굴이나 나무 그늘에서 쉬고 밤에 쥐 사냥을 다니거든요. 사냥을 다닐 때 내가 얼마나 날래게 움직였으면 ‘홀린다’고 표현하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3m 정도 되는 울타리도 거뜬히 뛰어 넘는다고요.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하겠어요. 사정이 이러니 인간은 내가 닭을 잡아먹는 닭도둑이라고 몰아가기도 해요. 뭐, 꿩도 사냥하니까 먹으려고 들면 못 먹진 않겠지만 쥐를 잡으러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걸 닭을 훔쳐간다고 오해한 거랍니다.

우리는 지금 5마리가 소백산 기슭에 있습니다. 그것도 전기 철책으로 둘러쳐진 곳에서 말입니다. 인간 손에서 약 5년간 살아왔던 3마리와 10월 말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와 내 친구 이렇게 다섯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남았을까요.

 




우린,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울릉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반도에서 넓게 퍼져 살던 내 조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한반도 남부에서 여우가 사라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습니다. 하나는 사냥입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우리 털이 따뜻하고 예쁘거든요. 인간의 혼수 필수품 중에 여우 목도리도 있었다고 하니 말 다한 셈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여우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진 못합니다.

 

1970년대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매년 평균 38만 마리가 넘는 여우를 잡아들였지만 여전히 살아가고 있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사라진 더 큰 이유는 1960~1980년대 있었던 쥐잡기 운동 때문이라고 해요. 쥐가 너무 많아 곡물이 부족해져 한반도 남부 전체에 쥐약과 덫이 놓였답니다. 문제는 우리 여우의 주식이 ‘쥐’라는 겁니다. 죽은 사체도 가리지 않지요. 쥐약을 먹은 쥐를 먹으면서 2차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1989년 이후에는 인간 눈에 여우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우리 여우가 더 많아졌으면 쥐를 훨씬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빠르게 쥐를 잡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결국 우리를 멸종 위기에 몰아넣은 것이지요.

 




우리는 북한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2004년에 강원도 양구에서 우리 조상의 사체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인간들은 양구를 중심으로 인제, 고성, 경북 문경 등의 산악 지대에서 여우가 있는지 확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다닐만한 길목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했습니다. 암컷의 배설물을 이용해 수컷을 유혹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까지 5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간들은 우리를 다시 백두대간에 복원하기로 했답니다.

10월 말부터 자연과 사투를 벌이게 될 나와 내 친구의 부모님은 2008년 북한에서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지역에 살던 여우입니다. 국경은 인간한테나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백두대간을 타고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 동북부, 몽골까지 나와 비슷한 동족이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들은 전세계에 있는 여우와 표본으로 남아있는 한국에 살았던 여우의 유전자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 동북부, 몽골에 있는 여우와 한국 여우가 같은 종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친인척인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토종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활동 무대는 이어져 있으니까요.

 


낯선 인간은 무서워요

얼마 전에 내가 있는 자연적응 및 훈련장에 낯선 인간(기자)이 왔습니다. 내가 사는 모습이 궁금하다나요? 지금까지 나를 돌보는 인간은 내 방에 들어 올 때 이상한 비닐을 둘러쓰고 내 배설물을 묻혀서 여우 냄새를 ‘퐁퐁’ 풍기며 들어와서 별로 걱정 안했는데, 이 낯선 인간은 조심성도 없이 창문 너머로 나를 훔쳐봤습니다. 가뜩이나 이 날은 훈련장 보수 때문에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인간들 몰래 숨겨놨던 먹이를 막 배불리 먹고 쉬는 중이었는데 말이죠. 너무 무서워서 문을 타고 올라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등 위로 숨어 버렸습니다. 좀 높지만 나처럼 날쌘 여우는 발 디딜 곳이 조금만 있으면 그 정도 뛰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나를 본 인간들의 눈빛이 어땠냐구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내 눈빛이 내뿜는 카리스마에 놀란 거지요. 내가 천장으로 숨었을 때 이를 지켜본 인간들의 표정이란…. 어이없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무척 놀란 표정이었으니까요.

말이 나왔으니 이 곳 훈련장 얘기도 살짝 해볼게요(자연적응 및 훈련장은 84~85쪽 그래픽 참조). 사람들이 물 먹으라고 일부러 물 웅덩이를 만들어놓기도 했고 여우굴을 파놓기도 했지만 정성이 고마워서 가끔 이용하는 정도입니다. 실제로 내가 먹던 먹이를 직접 굴을 파서 숨겨 놓으면 인간들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건 철책 높이입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는지 이제와서 점점 높이고 있거든요. 나는 낯선 인간을 보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데 옆방 할머니, 할아버지 여우는 인간 손에 키워져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는 다릅니다. 비록 동물원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이라고는 나를 챙기던 사육사나 볼 수 있었고, 이 곳에 와서는 거의 못 봤습니다. 인간 냄새도 못 맡았지요. 먹는 것도 살아있는 쥐를 직접 사냥해 먹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가끔은 쇠고기를 먹을 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 있을 때 먹었는데 먹이를 갑자기 바꾸면 탈이 날 수도 있거든요. 낯선 인간이 온 날도 먹은 게 체해서 그날은 거의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기자 주 : 잠시 놀란 것일뿐 지금은 먹이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답니다.)

비싼 쇠고기를 먹을 때도 있지만 내가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고기도 있습니다. 바로 살아있는 닭입니다. 닭의 모습과 맛을 알아 나중에 야생에 나간 뒤 인간이 키우는 닭을 훔쳐 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 주변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참 신경써야 할 것도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만큼 인간도 쥐약을 쓰지 않고 커다란 개들은 좀 묶어놨으면 좋겠어요. 특히 쥐는 내가 열심히 잡아먹으면 인간도 좋고, 나도 좋고 1석2조 아니겠어요?






















자연에서 어떻게 살지 막막하지만 도전해 보렵니다

한반도 남쪽에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선 많고 많은 산들 중에 사람들은 내가 살 곳을 왜 소백산으로 정했을까요. 인간들은 2010년에 오대산, 덕유산, 소백산 중 가장 적절한 장소를 조사했습니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하고 한반도 전지역에서 여우가 살았던 만큼 비교적 중간에 있는 산을 고른 거지요. 쥐나 나무열매처럼 내가 먹을 먹이나, 동물을 잡는 올무나 인간처럼 여우를 위협할 요인이 얼마나 많은지를 조사해 소백산이 가장 적절하다는 결정을 했답니다. 그 뒤 2011년 12월에 약 9600m2 정도 크기의 자연적응 및 훈련장을 경북 영주시에 완성했지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1~2월에 짝짓기를 하고 3~5월에 새끼를 낳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대공원에서 사는 우리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내가 4월에 태어나긴 했습니다만, 야생에서도 그럴까요? 인간들은 날 보며 직접 알아내야 할 겁니다.

이제 곧 나는 야생으로 나갑니다. 올해 4월에 태어난 어린 여우지만 부모와 떨어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원래 여우는 1년도 되지 않아 부모에게서 독립하거든요. 내가 야생에 나가는 시기는 바로 여우가 독립을 하는 시기랍니다. 독립한 뒤 새로운 짝을 찾고 굴을 파서 집을 짓고 짝짓기를 하는 거지요. 본래 독립을 하고 나면 수컷 한 마리가 배우자가 될 암컷 한 마리를 만나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2~6마리 정도 낳습니다. 여우 가족에게는 엄마, 아빠, 새끼 말고도 새끼를 돌봐주는 암컷 보모가 2~4마리 있기도 해요. 보모 여우가 새끼를 낳는 사례도 있지만 글쎄요, 한국에서 살았던 여우는 어땠는지 알려진 게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야생에 나가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여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겠지요. 내 목에 달린 위치추적 발신기가 행동 영역, 굴을 만드는 위치 등을 알려줄 겁니다.

올해 말 자연적응 및 훈련장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새로운 친구들이 옵니다. 벌써 10마리가 예약되어 있어요. 일부는 훈련을 거친 뒤 나처럼 소백산으로 방사되고 일부는 훈련장에 남아서 여우가 정말 일부일처에 보모 여우를 두는지, 새끼는 몇 마리나 낳는지 알려줄 거랍니다. 우리 여우는 성격이 좀 예민한데 잘 될지 걱정입니다. 다들 무사히 적응해서 나와 함께 만나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소백산에서 머물지 않고 산맥을 따라 북쪽이나 남쪽으로 함께 움직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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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여우야 여우야 같이 살자
Part 1. 응답하라 백두여우
Part 2. 우리 이렇게 살고 있어요
Bridge. 달갑지 않은 늑대가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
Part 3. 잡놈을 복원하라
Part 4. 우리 함께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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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 도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중부복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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