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Oriental White Stork, Ciconia nigra)는 러시아,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아시아에 산다. 전체 2000마리 미만으로 추정되는 겨울철새로 국제적인 멸종위기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1년 4월 4일 충북 음성에서 번식하던 마지막 한 쌍 중 수컷이 밀렵에 희생돼 멸종됐다.
‘황새 쌀’ 들어봤나요
우리나라에서도 황새 복원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예 ‘황새 쌀’이라는 브랜드가 생겼다. 일본 효고(兵庫)현 도요오카(豊岡)시에서다. 어찌 된 일일까. 도요오카는 인구 7만 정도의 농촌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100여 마리의 황새가 살았다. 전쟁 후 농약 사용이 급증하면서 황새가 하나둘 사라졌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71년에 마지막 황새가 야생에서 사라졌다. 이후 도요오카 시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황새를 도입했다. 1981년 인공증식을 시작으로 2000년에 효고 황새 고향공원을 개원, 2005년부터 황새 야생 복귀 사업을 진행했다. 현재 44마리가 효고현 도요오카시를 중심으로 일본 32개 현에서 서식하고 있다. 2011년에는 효고현의 이웃인 후쿠이현에서 한 쌍이 번식했고 올해는 지바현에서 새로운 번식지가 탄생해 황새마을이 만들어졌다.
설명만 듣고 보면 자연스러운 복원 과정이지만 이는 매우 놀라운 결과다. 주민들이 스스로 친환경 농법을 개발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황새와 공존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요오카 주민들은 스스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줄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결국 ‘황새쌀’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뿐만 아니다. 도요오카시는 ‘황새 공생과(共生課)’란 부서를 설치했다. 시장은 관용차 옆면에 황새 그림을 큼지막하게 새겨 넣는가 하면 시내버스, 하수도 맨홀 뚜껑에도 황새 그림을 새겨 넣어 생태 관광 도시로 만들었다. 황새마을, 황새 쌀에 생태 관광 상품이 더해져 황새 복원만으로 지역경제가 일어났다.
따오기도 일본의 대표적인 복원 종이다.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섬은 현재 친환경 농업 정착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도섬 주민들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땅에 주목했다. 묵혀둔 논을 다시 복원해 따오기 서식처로 만들고 친환경 농업을 기반으로 독특하며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조성하고 있다.
‘뚜루 뚜루’ 두루미에게 먹이를 주다
두루미(Red-Crowned Crane, Grus japonensis)는 전 세계에 약 2800마리로 추산되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겨울철새로 분류돼 있으며 휴전선 근처의 강원도, 경기도 지역을 월동지로 이용한다.
전세계 2800마리 중 절반이 넘는 두루미가 어디에 있을까. 놀랍게도 일본 홋카이도에 있다. 일본에서 두루미는 에도막부 시대에 홋카이도 전체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혼슈지역으로 이동하며 월동했다. 이 시기 두루미를 잡아 소금에 절여 장군가에 상납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후 메이지 시대에는 무분별한 포획으로 일시적으로 절멸됐다. 그러다가 다이쇼 시대(1912년 7월 30일~1926년 12월 25일)에 홋카이도에서 10여 마리의 두루미가 재발견돼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보호 활동이 시작됐다. 1950년대 겨울에 대한파가 몰아치자 두루미들은 먹이가 부족해 농민들이 모아둔 옥수수 종자를 먹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농민들은 쫓아내기는커녕 마치 드라마처럼 두루미에게 먹이주기 활동을 시작했다.
1966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두루미 먹이주기 활동이 시작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의 환영이 인간과 두루미가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두루미 먹이주기는 매년 10월부터 3월까지 이뤄지는데, 매월 약 9t의 옥수수를 공급한다. 이 놀라운 결과는 연구자들과 북해도 주민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가능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오카야마현은 과거에 두루미를 사육한 전통을 복원해 현재 자연보호센터에서 약 70마리의 두루미를 인공 증식·사육하고 있다. 일본의 3대 정원의 하나인 후락원(고라쿠엔)에도 두루미 사육장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해마다 새해 첫 날에 두루미를 공원에 풀어주는 행사를 진행,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일본 북해도에 전세계 두루미 중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민이 생태 파괴한 정부를 꾸짖다
미국의 북부 점박이 올빼미(Northern Spotted Owl, Strix occidentalis caurina)는 캘리포니아주 북부, 오레곤 주와 워싱턴 주의 태평양 연안 북서부 노령림에 서식하는 종이다. 올빼미과의 다른 종과 달리 사람을 경계하지 않으며, 쫓아내기 전에는 오히려 가까이 접근하는 습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적절한 서식지만 있으면 매년 같은 세력권을 유지한다. 1987년부터 미국 연방정부가 연방소유 산림에서 대규모 벌채를 마구잡이로 허가했다. 이에 따라 북부 점박이 올빼미의 서식처인 150년 이상 된 큰 나무들이 급격히 감소했다. 결과는 해당지역에서 북부 점박이 올빼미의 멸종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사라지게 되면서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다. 북부 점박이 올빼미가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되자 연구자들과 시민들은 멸종위기생물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연방정부를 법원에 제소했고 법원은 멸종위기생물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연방소유산림에 대한 벌채를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북부 점박이 올빼미 서식지 보호가 가능해졌다. 벌채 금지와 함께 연방 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이 지역 올빼미 개체수 확인이었다.
연방정부는 특정 무선신호를 송출해 일주일에 한두 번 새의 위치를 알려주는 송신기를 올빼미의 몸에 부착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안테나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올빼미 위치를 확인, 올빼미 서식지의 데이터베이스와 지도를 만들었다. 수천 회에 걸쳐 올빼미의 위치를 기록한 데이터를 통해 점박이 올빼미의 생태를 관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벌채 금지뿐만 아니라 올빼미를 보호하기 위한 지침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공유했다. 북부 점박이 올빼미는 현재 이 지역 환경 상태를 측정하는 척도인 지표종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노력, 계획이 북부 점박이 올빼미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산림 태우니 도로에서 곰을 보다
곰은 지리산반달가슴곰처럼 전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멸종위기 동물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이 있는 캐나다 앨버타주 워터튼 국립공원 일대에서도 그랬다. 야생동물과 아웃도어 레포츠의 천국인 캐나다는 멸종위기 동물 복원보다는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캐나다 워터튼국립공원(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에는 현재 약 50여 마리의 흑곰(American Black Bear, Ursus americanus)이 서식 중이다. 서식 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곳 주민 및 방문객들과 함께 살고 있다. 실제로 공원 근처 도로를 운전하고 가다 보면 드물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차를 멈추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곰을 지켜본다. 공원 안에 사는 주민들과 공존하는 셈이다.
공원 내에서 흑곰은 이 지역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이다. 이 지역 생태 보호를 위해 공원관리 당국이 하는 일은 산림을 태우는 것과 곰의 개체수 확인이다. “1~2년에 한 번씩 조사를 실시해 태울 산림을 지정하고 불태웁니다. 곰뿐만 아니라 사슴류와 키가 작은 다람쥐 같은 초식동물이나 산쥐 등까지 보호하는 종합적인 대책이지요.” 현지에서 만난 션 갤라거 연구원의 설명이다.
관리 당국이 하는 연례 행사인 산림 태우기는 이 지역 생태의 밑바탕이 되는 식생을 건강하게 만든다. 로키산맥에 자리잡은 워터튼 국립공원은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침엽수가 덮고 있다. 야생동물들이 사는 고지대로 갈수록 기온이 낮아지는 데다가 겨울철 눈이 많이 내려 빙하가 형성되면 식생의 건강 상태가 나빠진다. 야생동물의 먹이가 줄어드는 셈이다. 적당히 산림을 태우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허약한 원래의 식생 대신 건강한 식생으로 바뀐다. 초식 동물의 먹이를 확보해 나가면서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곰의 개체수를 유지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곰은 큰 나무에 몸과 발톱을 비비면서 영역을 표시하는데 이 때 남긴 털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개체수를 파악한다. 곰이 비빈 흔적이 남아 있는 나무 둘레에 철사를 설치해 좀 더 쉽게 털을 채취하며 개체수를 관리하고 있다.
소통과 참여, 공생하기 위한 궁극의 화두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복원의 사전적 의미처럼 멸종위기종 복원은 쉽지 않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 사례만 볼 때, 따오기나 황새는 인공증식에서는 성공적이지만 아직 방사한 개체가 없어 향후 자연 적응 훈련이나 야생에서의 생존에 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반달가슴곰은 방사 후 밀렵, 등산객의 먹이 주기로 인한 야생 적응 실패, 서식지 단편화 등 안정적으로 생존이 가능한지 아직 불투명하다. 산양 복원도 생태축 연결이 최우선 과제인데 도로나 개발로 백두대간과 월악산의 생태축 연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의 소통과 참여다. 해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서식지 주변 지역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특히 지역 주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멸종위기 야생동물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 있다. 나아가 지역 브랜드 개발 및 생태 관광을 통한 경제 활성화도 이룰 수 있다.
생물종의 다양성은 인간의 생존과 건강, 경제적인 자원을 떠받치는 잠재적인 자원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생물종 수가 3000만~500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 중 우리에게 알려진 종은 약 170만에 불과하다(열대우림의 수많은 생물종은 정체도 모른 채 사라지고 있다). 멸종위기 동물 복원은 인간이 더욱 건강하게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집 근처 국립공원에 따오기와 황새가 놀러 오고 곰과 여우가 눈치를 살피는 모습.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한번쯤 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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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여우야 여우야 같이 살자
Part 1. 응답하라 백두여우
Part 2. 우리 이렇게 살고 있어요
Bridge. 달갑지 않은 늑대가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
Part 3. 잡놈을 복원하라
Part 4. 우리 함께 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