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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동물을 자연에 많이 방사하기만 하면 순조롭게 개체수를 늘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혈연관계가 가까운 종들만 방사한다면 이들끼리 야생에서 교배해 번식하게 된다. 이것이 근친번식이다. 근친번식만으로 개체수가 늘어나면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만 태어난다. 이들은 동일한 질병이나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이른바 ‘근친퇴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야생 동물의 적 ‘근친퇴화’

근친퇴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플로리다 팬서(Florida Panther)다. 플로리다 팬서는 마운틴라이언(Mountain Lion) 또는 퓨마(Puma)로도 불리는 표범처럼 생긴 육식동물이다. 미국 남부, 특히 플로리다에서만 산다.

플로리다 팬서는 오랜 시간 동안 외부 생태계와 단절돼 근친퇴화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연구 결과 플로리다 팬서 수컷의 정자가 기형이 많았고 질이 나빠지고 양도 줄어드는 등 근친퇴화가 뚜렷했다. 이에 생태 보전 당국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텍사스의 팬서를 이곳에 도입해 교미를 유도했다. 다행히 유전적 다양성이 늘어나 1970년대 20여 마리에 불과했던 플로리다 팬서는 2011년 약 100~160마리로 늘어났다.

지리산에 35마리가 살아있는 반달가슴곰도 복원 전 근친퇴화 과정을 겪었다. 지난 2001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보존번식전문가그룹(CBSG)이 지리산 반달 가슴곰의 생존능력을 분석한 결과 생존 확률이 향후 20년 간 50%를 넘지 못했다. 환경부는 급히 러시아와 북한에서 유전적으로 비슷한 반달가슴곰을 들여와 인위적으로 교류,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악몽 같았던 구제역 피해도 근친퇴화의 영향이다. 가축을 인위적으로 사람에게 유리한(육류로 적합한) 품종으로 만들기 위해 근친 교배를 반복하다가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졌고,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야생동물 중 멧돼지가 구제역에 걸려서 집단으로 폐사하는 일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부분 잡종인 야생 멧돼지는 질병에 약한 유전자는 도태되고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과정을 거치면서 질병 저항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서식지를 교환하라


2007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된 산양이 멸종위기에 이른 과정은 드라마같다. 산양은 주로 고지대에 사는 동물로 바위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 1964년과 1965년 강원도 지역에 내린 폭설로 먹이를 찾아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온 산양이 약 3000마리나 잡힐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1968년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돼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지만 불법포획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산양은 현재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지에서 700~800마리가 서식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른 멸종위기 동물보다 개체수가 많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원도 인제 종복원기술원 북부복원센터에선 7마리(수컷 2, 암컷 5)가 내년 방사를 준비 중이다. 2007년부터 방사가 진행돼 올해에는 이미 4마리를 지난 9월 14일 방사했다. 수가 많아 보이는 산양을 방사 과정을 통해 왜 복원하려는 걸까.

우선 산양의 서식지를 살펴보자. 지난해 말 문화재청이 발간한 보고서 ‘천연기념물 산양 유전자 다양성 연구’에 2002년 환경부 양병국 박사팀의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 산양 서식지 21곳 중 산양이 지속적으로 집단을 이루며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서식지가 4곳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위가 있는 고지대에 사는 산양은 렙토스피라 같은 유전 질병이나 근친퇴화로 빠르게 멸종에 이를 수 있다.

서울대 이항 교수팀은 ‘천연기념물 산양 유전자 다양성 연구’에서 국내 산양 68마리와 일본 산양 50마리의 유전적 다양성을 평가했다. 연구 결과 유전적 다양성의 지표가 되는 이형접합도에서 강원도 산양이 0.563, 경상북도 산양이 0.613으로 0.400으로 나타난 일본 키소후쿠시마시 산양에 비해서는 높았다. 이형접합도가 높을수록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 이형접합도가 1이면 모든 개체의 유전자 정보가 다르다는 뜻이며 반대로 0이 되면 복제 수준으로 유전자 정보가 일치한다.

연구진은 유전적 다양성에 아직까지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산양의 서식지 특성 등을 살펴볼 때 근친퇴화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이미 방사했거나 방사를 준비중인 산양 7마리의 역할이 바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서식지를 바꿔가며 짝짓기를 해 유전자를 교류, 자연 상태에서 산양이 스스로 외부 위협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항 서울대 교수팀은 또 지난해 말 국내 처음으로 수달 똥의 DNA를 분석해 대구 지역 수달의 개체수와 암수  구별, 개체 간 관계 등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수달은 현재 1급 멸종위기 동물로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다(최상위 포식자의 생태 복원이 지니는 의미는 94~95쪽 Bridge 인포그래픽에서 살펴보자). 연구 결과 대구 시내의 금호강과 신천에 최소 7마리 이상의 수달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항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수달도 고립된 상태에서 번식을 하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며 “다른 곳에 사는 수달들이 서로 교류하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남은 과제”라고 강조했다.




알에서 미리 성 감별한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조류도 유전적 다양성이 중요하다. (2파트에서 소개한) 따오기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따오기 복원은 아직 더디다. 2008년 중국에서 암수 한쌍을 들여와 번식시켜 현재 수컷 2마리와 암컷 15마리, 총 17마리(중국에서 들여온 한 쌍 제외)가 경남 창녕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 있다.

언뜻 보면 알겠지만 수컷의 수가 부족하다. 암수 균형이 맞지 않다. 또 모든 개체가 처음 들여온 암수 한 쌍에서 나왔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가계도 참조). 그렇다고 조류의 특성상 성체가 된 따오기를 중국, 일본에 있는 따오기와 교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성체가 된 따오기는 서식하는 곳이 갑자기 바뀌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처음 중국에서 들여온 한 쌍의 따오기도 그만큼 조심스럽게 들여왔다. 또 조류는 일반적으로 성체가 돼야 암수 구별이 가능한데 암수 균형과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식
지를 옮기기 쉽지 않은 따오기 성체를 한중일 3국이 교류하는 것도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김민규 충남대 수의과대 교수는 2011년 말 현재 복원중인 따오기의 알 껍질에서 성별과 관련된 유전자를 분석해 알 상태에서 따오기의 성을 감별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의 연구는 우리나라 따오기를 중국, 일본 따오기와 손쉽게 교류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성체가 되기 전 알 상태에서 성을 감별해 교류하는 것이다. 김민규 교수는 “국내 따오기는 중국에서 들여온 암수 한쌍에 의해 근친교배를 하고 있어 유전적 다양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알 상태에서 성을 감별할 수 있으면 미리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브 시아마 환경 전문 과학저널리스트가 지난 해 펴낸 ‘멸종위기의 생물들’에서 지적한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 서두에서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독특하고 정밀한 발명품이다. 각 종이 발달시켜 온 유전자 그룹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동물의 생존을 용이하게 만든다. 이 같은 유전자 한 개 또는 특정 조합이 소멸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지금의 과학으로는 사라진 유전자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복제나 유전자 변형 등 최근 유전학의 발전은 과학이 온전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다. 그러나 수십 만 개의 유전자가 서로 맞춰져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각 종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파악해 개체수를 늘리고 적합한 방사지를 정하는 과정도 지난하다. 그렇지만 자연 상태에서 멸종위기 동물이 외부 위협에 견뎌 나갈 수 있도록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돕는 과정은 시아마가 지적한 것처럼 ‘유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또 다른 복원의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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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여우야 여우야 같이 살자
Part 1. 응답하라 백두여우
Part 2. 우리 이렇게 살고 있어요
Bridge. 달갑지 않은 늑대가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
Part 3. 잡놈을 복원하라
Part 4. 우리 함께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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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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