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부터 통신인구가 급속히 증가했는데 공개자료실 전자게시판 채팅 등에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이 매료됐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컴퓨터(PC)통신의 서막을 열었던 서비스는 (주)데이콤의 H메일(H-mail)서비스였다. 지난 88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 서비스는 우리에게 PC통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이전까지는 데이콤을 통하거나, 아니면 직접 해외 데이터베이스(DB)에 연결하여 정보검색을 하는 몇몇 개척자들만 있었는데, H메일이 개설되면서 우리나라 컴퓨터광(狂)들에게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서비스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개척자정신을 가졌던 소수가 이용하였다. 그러나 기술 부족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이 서비스는 금방 유명무실해져 버린다. H메일은 우리에게 가능성만을 제시하고 색다른 여러 서비스들의 태동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89년 봄 H메일 사용자들 가운데 우리나라 PC통신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독립하여 엠팔(EMPAL, Electronic Mail PAL 즉 '전자사서함 친구'라는 뜻)이란 민간 전자게시판(BBS, Bulletin Board System)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 통신망이 운영되지 않지만 당시 엠팔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이후 국내 우리나라 PC통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89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개척자정신을 가진 수많은 민간 BBS들이 문을 열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장비와 시간을 투자하여 PC통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우리나라 정보통신이 빠른 시일내에 확산될 수 있었고, 또한 당시의 시솝(Sysop, system operator, 통신망이나 통신동호회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현재 코텔(KORTEL, 한국PC통신이 운영하는 통신망)이나 PC서브(PC-Serve, 데이콤에서 운영하는 통신망)에서 충추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컴퓨터로 사랑을 고백
89년 6월 우리의 짧은 PC통신역사에서 최초의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바로 케텔(KETEL, 한국경제신문이 제공한 통신서비스, 현재는 코텔에 통합됨) 서비스의 확장이었다. 한국 경제신문은 처음에 데이콤의 비디오텍스 '천리안2'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이때부터 독립하여 자체 통신망을 구축하고 서비스에 들어갔다.
정보통신서비스는 일반적으로 (1)데이터베이스 서비스 (2)통신 서비스(전자우편 게시판 동호회 채팅 등) (3)거래서비스(홈쇼핑 홈뱅킹 등) 세가지로 크게 나눈다. 당시에는 (1)서비스만 조금씩 제공되었고 (2)와 (3)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데 케텔에서 '큰마을'이란 BBS를 개설해 전자우편 전자게시판 공개자료실 채팅(chatting, 컴퓨터통신을 통해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 등을 선보였으니 그 인기는 가위 폭발적이었다.
PC통신을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보는 DB'로만 인식해 조금은 '딱딱하고 따분한' 것으로 여겨오던 사람들에게 이 서비스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통신서비스는 새롭고 낮선 문화가 아니라 기존 매개체(우편 벽보 등)를 좀더 편안하게 발전시킨 것이라고 생각하면 알기 쉽다. 우선 PC통신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우편의 경우 상대방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큰 변화가 없으나, 각 개인에게 사서함(우편사서함과 동일한 기능)이 주어져 자신에게 온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커다란 변화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와 모뎀만 있다면 자신에게 온 편지를 볼 수 있다는 점과 기존 우편물과 같이 우표붙이는 번거로움이 없어진 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 정도가 기존 우편과의 차이점이다. 따라서 컴퓨터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기존 문화를 매우 편리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팩시밀리의 경우 상대방과 내가 팩스를 보유하고 있으면 서로 전송이 가능하듯, 전자우편도 서로가 ID(identification)라는 개인 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 서로 편지교환이 가능하다. 그런데 벌써 ID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약 20만명에 이르고 있으니 전국민 누구와도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전자우편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도 많으며(컴퓨터통신커플도 다수 있다), 싸우고 나서 사과의 뜻을 전하는 일, 모임을 공지하는 일, 회보를 보내는 일, 연재소설을 쓰는 사람, 광고를 보내는 사람 등등 갖가지 일들이 컴퓨터통신을 통해 일어난다.
또다른 변화는 전자게시판의 등장이다. 그동안 게시판이나 벽보를 붙이려면 특별한 정보나 아니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면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또한 그러한 일들이 무척 번거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전자게시판이 등장하면서부터 누구나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모집한다든가 아니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팔고 싶다든가 하는 정보들을 전자게시판에 올려 이를 원하는 사람과 전자우편을 통하거나 아니면 전화를 통해 서로가 얻고자 하는 바를 취한다.
인기모은 공개자료실
필자의 경험을 들어보자. 4월 초순 어느 일요일 아침 어떤 선배가 운영하는 업체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게 오후에 일손이 필요해 점심때까지 3명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오전 9시 30분. 나는 곧바로 게시판에 이러한 내용을 올렸고 오전 11시경 이미 3명을 확보하였다는 선배의 반가운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공개자료실은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의 일종인데, 이 서비스는 개시되자마자 컴퓨터광들을 매료시켰다.
80년대 중반 컴퓨터광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소프트웨어를 구하는 일이었는데 이들이 소프트웨어를 구하는 통로는 주로 컴퓨터잡지와 세운상가였다. 그러나 PC의 특성상 인쇄물을 이용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가능하였으나 정작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귀찮고 복잡하였지만 유일한 수단은 세운상가에 와서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컴퓨터광들에게 PC통신이라는 도구는 너무나 훌륭하고 편리한 수단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케텔을 운영하는 중대형컴퓨터 속에 컴퓨터광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넣어두고 집에 있는 컴퓨터로 케텔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 프로그램들을 복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나 어렵게 입수한 소프트웨어는 케텔의 공개자료실로 보내 다른 사람이 이용하게 하고 이를 통해 프로그램의 에러를 발견하거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이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비근한 예로 통신용 프로그램 '이야기'를 개발해 요즈음 인기절정에 있는 하늘소(경북대생들로 구성된 소프트웨어개발팀)가 새로운 버전을 공개하면 하루에 보통 몇천명이 이 파일을 복사해간다. 가위 환상적인 숫자다. 만약 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복사해준다든지 등기로 이 프로그램을 보낸다면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컴퓨터광들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우리나라 PC통신의 서막을 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정열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정보사회의 문턱에 들어서는데 일본처럼 많은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컴퓨터통신이 인기를 끌게 된데는 채팅의 역할이 컸다. 89년 케텔이 '큰마을'이란 게시판을 마련하고 데이콤이 89년 9월 PC서브를 개통한 이후 컴퓨터에 눈을 뜬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통해 사귄 친구들과 밤새도록 채팅을 즐기는 모습은 PC통신문화의 새로운 픙속도로 자리잡았다.
특히 초기에 희소가치로 인하여 여자회원들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통신을 통해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채팅 서비스는 학생들이 통신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89년말까지 PC통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채팅에 매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접하고, 남녀간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특히 지방 사용자들은 시내전화요금으로 전국의 사용자와 채팅을 즐길 수 있는 등이 서비스는 PC 사용자들이 푹 빠져들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컴퓨터통신의 확산은 부정적인 현상도 확대 재생산했다.
전자우편을 남용해 상대방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많은 메일을 보내거나, 편지함에 광고물을 무절제하게 보내 PC통신도 멀지않아 광고의 홍수에 묻혀버리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경로가 되기도
또한 게시판을 이용한 신종사기극도 가끔 발생한다. 인기있는 게임기를 싸게 판다고 광고를 내고 선불을 받은 후 도망쳐 버린 일이 지난해 어느 통신망에서 일어나 '신용'을 전제로 하는 통신문화에 커다란 금을 긋고 많은 통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
한편 토론문화가 빈약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영, 공개게시판을 통하여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인신공격하는 몰지각한 사용자들도 없지 않다.
비록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게시판에 글을 쓸 때는 분명히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공개자료실의 경우에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많이 사라졌지만 프로그래머가 애써 개발한 상업용 패키지들이 버젓이 자료실을 통해 교류된 경우가 많았다.
작년에 도스5.0(MS-DOS 5.0)이 통신망에 오른 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문제를 제기, 한차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후 외국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강화해 이러한 공공연한 불법복제는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회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상업용 프로그램을 무료 또는 염가에 복제해주는 민간 BBS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통신망을 통한 바이러스전파도 컴퓨터통신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국내에서 발견된 컴퓨터바이러스의 대부분이 불법복제나 통신을 통해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전파속도가 유난히 빠르다는 사실은 불건전한 통신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그릇된 영웅심리를 가진 해커들은 국산 바이러스를 개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행동은 마치 우물에 독극물을 넣는 행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개발자와 백신개발자의 쫓고쫓기는 지루한 싸움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넘어야 할 산「유료화」
지난 89년 케텔이 '큰마을'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PC통신인구는 현재 20만을 넘어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컴퓨터통신을 낮선 문화가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서 받아들이고 있고 PC통신의 중요성과 효능을 깨닫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올해 컴퓨터통신 분야에서 가장 큰 쟁점은 '유료화'문제이다. 이미 연초에 한국PC통신이 설립되어 한국경제신문으로부터 케텔을 인수해 '코텔'로 명칭을 변경했고 이달부터 유료서비스에 들어간다. PC서브나 인포서브는 이미 유료로 출발했으므로 올해를 기점으로 '컴퓨터통신 유료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통신인들은 유료화를 어차피 언젠가는 한번은 넘어야 할 '큰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통신망 운영자로서도 당장은 회원수가 감소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방향으로 굳어지면 오히려 허수 회원들이 자동적으로 정리되고 양질의 회원들만 남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난해 이미 상용서비스의 난관을 극복하고 유료사용자 3만여명을 확보한 PC서브의 예에서 살펴본다면 코텔로 변신한 케텔의 앞날도 그리 어둡지 않다.
코텔의 유료화를 통해 좀더 성숙된 '제2세대 정보통신문화'를 꽃피우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통신문화를 살펴보면 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한 문화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공개자료실 채팅 동호회 등의 서비스가 주류를 이루었고, 물론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에게 많은 부가가치를 주었던 것은 바로 공개자료실이었다.
공개자료실이란 서비스를 통해 많은 소프트웨어 스타들이 탄생하였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도 5년 정도 앞당겨졌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재의 통신서비스는 거의 완벽하리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통신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분야 온라인처리분야의 경우에는 아직 초창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보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원초적인 정보의 수집도 중요하고, 또한 이러한 정보를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즉 이미 자료축적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무척 늦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가공작업에 더욱더 박차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정보의 가공작업은 일반적으로 원자재를 이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생산공정과 유사하며, 이러한 작업은 정보의 부가가치를 올려 향후 정보산업의 새로운 핵심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