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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비슈누의 머리와 키클롭스 눈의 정체는


[합체]

비슈누의 머리와 키클롭스 눈의 정체는

“왁!”

갑자기 시끄러운 쌍둥이가 K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둘이 몸을 겹친 뒤 머리를 양쪽으로 내밀면서 K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가 각각 네 개, 머리가 두 개인 모습으로 재롱을 떨었다. 개그콘서트에도 나오는 ‘쌍두사’의 모습이다.

“이봐. 난 지금 자고 일어났더니 염소, 그것도 앞다리가 없는 기형 염소가 됐다고. 장난 칠 기분이 아니야.”

쌍둥이는 장난을 멈추지 않은 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왜? 발가락이 여덟 개인 양서류나 손가락이 일곱개인 화가 이야기를 들었잖아. 머리 둘, 팔다리 여덟개가 뭐가 대수라고.”

듣고 보니 익숙한 신화 속 형체가 떠올랐다. ‘산해경’에는 이렇게 머리가 여럿 달리거나 다리가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수십 종은 등장한다. 인도신화에도 있다. 왕자인 아르주나를 전쟁터로 이끄는 마부 크리슈나는 막판에 자신이 비슈누 신의 화신임을 밝히며 1000개의 팔을 펼쳐 보여 준다. 불교에는 천수천안관음이 있다.

“특히 ‘산해경’이 인상적이지. 머리가 두 개인 뱀이나 새가 특히 많이 등장하거든. 이런 증세를 ‘두머리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자연에는 두머리증 파충류가 꽤 흔해. 새 중에도 종종 있고. 그런데 이것도 돌연변이의 영향은 아니야. 블럼버그 교수에 따르면, 발생 과정인 부화가 문제지.”

수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온도와 산소를 조절하면 송어나 연준모치 같은 물고기는 머리가 둘 달린 채로 태어날 수 있다. 영국 풀뱀은 퇴비가 분해되면서 내는 열을 좋아해 퇴비 더미에 알을 낳는다. 그런데 퇴비의 온도가 40℃를 넘어가면 대부분 알이 죽고, 살아남아 부화한 극히 일부에서 쌍두사가 나온다. 개구리는 발생 기간에 알이 회전하면, 내부 성분이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머리 둘 달린 올챙이가 나온다.

“반면 같은 알을 낳는 조류는 두머리증이 적어. 파충류와 달리 배아가 민감한 낭배형성기 이후에 알을 낳고, 낳은 후에도 몸에 품어서 온도를 일정하게 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오리는 자궁 속에서 알이 회전하기 좋은 구조라 개구리처럼 두머리증이 종종 생겨. 전체의 2% 정도라니까 꽤 높지.”

산해경을 쓴 사람들은 이런 두머리증 파충류나 조류를 직접 봤거나 전해 들은 걸까.

“아까 사람 몸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경우를 얘기했지? 그게 바로 두머리증과 같은 원리야. 이런 증세를 ‘태아 속 태아(fetus in fetu)’ 또는 ‘액세서리 베이비’라고 하는데, 사실은 쌍둥이지만 모든 몸의기관이 다른 한쪽 개체의 몸 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는 형태야. 그런데 만약 몸 일부가 바깥으로 나왔다면 어떨까. 머리가 둘 있거나 팔이 셋, 넷, 하체가 하나로 붙어 있는 개체가 나올 수 있겠지. 이런 증세를 ‘결합쌍둥이’라고 불러.”

수의사가 말을 이었다.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완전히 분리될 때가 언제인지에 따라 결정돼. 보통 일란성 쌍둥이처럼 수정 후 3일 뒤나 4~8일 뒤에 나뉘면 괜찮지만, 2주쯤 뒤에 쌍둥이로 나뉘면 분열이 불완전하게 이뤄지지. 다시 말해 결합쌍둥이는 분리가 일어나는 단계에 따라 생기는 여러 이형 중 하나야.”

“그런 사람들이 건강하게 잘 사나요?”

그러자 장난을 치던 쌍둥이가 결합 상태를 풀더니 양쪽에서 말했다.

“당연하지! 실제로 1990년에 태어난 캐나다의 애비게일 헨젤과 브리트니 헨젤 자매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맞아! 지금 네가 두 다리로도 잘 사는 것처럼 말야!”

그러자 수의사가 제지하며 말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런 쌍둥이는 10만 명에 1명꼴로 태어나는데 대개 하루 만에 죽는단다. 헨젤 자매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야. 슬프지만 말이야.”

풀이 죽은 쌍둥이는 화풀이를 하듯 K에게 소리를 질렀다.

“흥! 다리가 없는 동물도 보통 오래 못 살아. 팔다리 골수에서 면역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리 자체가 없으니 부족하잖아!”

수의사가 쌍둥이 둘을 절 구석으로 데려가 혼을 내는 동안 K는 곰곰히 다른 문제를 생각했다.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은 여럿 달린 불상을 보니 그림 하나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분별의 알레고리’. 노인, 중년, 청년의 얼굴이 세 면을 향해 그려져 있다. 아래에는 각각 늑대, 사자, 개(왼쪽부터)가 그려져 있다. 아래는 두머리증 송아지 박제. 산해경 속 뱀 ‘상류’는 얼굴이 아홉 달렸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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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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