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체]
그리스 신화 속 염소는 괴물인가 아닌가
“그런데 그 염소가 왜 그렇게 화제가 됐나요?”
수의사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는 듯 쳐다봤다.
“꼭 신화 속 인물 같으니까.”
그러고 보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책장으로 달려가 입으로 책 한 권을 뺐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록한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였다. ‘여기도 변신이군’하고 K는 생각했다.
“’사티로스’를 찾으려고 하지? 다리는 산양이고 상체는 사람인 신.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동물의 하체와 사람의 상체를 조합한 몸이야. 느낌이 어때?”
“그야…, 괴물이죠.”
말하자마자 K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티로스도 자신처럼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그런 몸을 지니게 됐을지도 몰랐다. 그저 특이한 몸을 지녔다고 괴물이라고 부르다니. 불쌍한 사티로스.
“괴물이라…. 적어도 사티로스와 같은 생물이 직접 눈 앞에 나타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거야. 스페인 소설가 보르헤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 ‘괴물이란 실존하는 존재의 부분들을 조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라고. 다시 말해 이것 저것 서로 기원이 다른 것을 합쳐 놓으면 그게 바로 괴물이라는 거지.”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K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조금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은 괴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두 개 부족할 뿐이지, 다른 동물이 섞여 있지는 않으니까. 아, 혹시 말하고 생각하는 두뇌가 사람의 것이니까 괴물인가?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 이 그림을 봐.”
수의사가 내놓은 그림에는 K와 아주 닮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염소인지 말인지 소인지 알 수 없었는데, K처럼 뒷다리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리 수였는데, 한 개였다. 그 다리로 용케 잘 서 있었다. 꼬리는 말총이고 수염이 없었다. 수의사 옆에서 침을 흘리며 졸던 말이 갑자기 깨더니 히힝, 하고 울었다. 녀석은 이 동물이 말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기’라는 상상 속의 동물이야. 중국의 기서 ‘산해경’에 나오지. 황제가 잡아 가죽으로 북을 만들면 소리가 500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신성한 동물이야.”
K는 갑자기 흥미가 솟았다. 똑같이 여러 특성이 결합한 동물인데 왜 한쪽에서는 괴물이 됐고 한쪽에서는 신성한 동물이 됐을까. 혹시 괴물이라는 분류는 임의적인 것이 아닐까.

“이 사진을 봐. 불과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사람의 모습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몸에 머리를 넣었나요?”
사람의 몸에서 다시 몸이 튀어나와 있었다.
“굉장히 이상하지? 사진의 주인공은 ‘랄루’라는 인도 사람으로 서커스에서 활동했어. 1896년 조지 굴드와 월터 파일이라는 학자가 펴낸 ‘의학에서의 기형과 진기함’이라는 책에도 소개돼 있어. 나도 믿기 어려워서 이 사진이 혹시 속임수가 아닐지 문의했는데, 물어본 수의학자나 의학자도 깜짝 놀라며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 뭐, 블럼버그 교수는 100여 년 전 학자들을 존중해 실제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말야. 성제경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지만, 몸 속에 성장하지 못한 다른 개체를 품고 있는 경우는 종종 존재한다’고 했어. 실제로 1999년, 인도에 사는 한 30대 남자가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부른 채 살다가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안에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었어. 어느 경우든 한 가지는 분명해. 두 사람이 합체한 기형은 존재한다는 거야. 자, 그럼 쌍둥이를 몸에 품고 살았던 저 인도 남성을 괴물이라고 불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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