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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일곱 손가락과 여덟 발가락 문제

[변신]

일곱 손가락과 여덟 발가락 문제


답답해진 수의사와 K는 일단 집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셋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면서 동네 뒷산에 있는 절에 숨어들었다. 마침
사람이 없어 고즈넉했다. 단, 어떻게 알았는지 시끄러운 쌍둥이 둘이 우리를 맞아줬다는 것만 제외하고. 가만, 쌍둥이라고? 이건 ‘성’이라는 소설의 내용인데?

절의 지붕 위아래에는 아름다운 조각상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는 사람이 아닌 것들도 많이 있었다. K 자신이 기이한 존재가 되고 나서인지 이런 데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시 슬프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람들, 적어도 서양 사람들이 예전부터 ‘비정상’ 또는 ‘괴물’이라고 불렀던 한 무리의 이야기다.

K는 샤갈이 그린 ‘일곱 개의 손가락을 가진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떠올렸다. 처음 봤을 때 팔레트와 붓을 쥔 손가락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다고 느꼈다. 단 두 개의 손가락이 더 있을 뿐인데 말이다.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백분율로 표현하면 100%의 손가락이 아니라 140%의 손가락이다. 40% 차이지만, 오랜 역사 동안 사람들은 이를 구분해왔다. ‘비정상’이라고. 그래서 무표정해 보이는 샤갈 그림
속 주인공의 눈에는 다른 부류가 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이런 ‘다지증’은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 과정에서 손가락이 중복해서 갈라지는 증세야. 하지만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왜 하필 5개의 손가락이 ‘정상’이 됐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 역시 ‘자연학’ 지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지.”

수의사는 그림 하나를 보여 줬다. 어떤 동물의 다리 뼈를 그린 그림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샤갈의 ‘일곱 개의 손가락을 가진 자화상’을 봤을 때처럼.



“2008년 ‘네이처’와 2000년 ‘미국동물학회지’에 실린 논문의 사진이야. 왼쪽은 ‘아칸토스테가’라는 동물의 앞다리, 오른쪽은 ‘익티오스테가’라는 동물의 뒷다리야. 둘 다 약 3억 9000만 년 전부터 3억 4000만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살던,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네 발 동물 조상의 다리뼈야. 이미 눈치챘지? 발가락 수가 이상하다는 걸. 왼쪽은 발가락이 8개, 오른쪽은 7개야.”

수의사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발생학에 따르면, 팔다리 뼈는 몸통에서 가까운 쪽에서 먼 쪽의 순서로 나타나. 그렇다면 부챗살처럼 5개의 뼈로 갈라지는 발가락 뼈는 어떨까. 우산이 펴지듯 동시에 솟아나는 게 아니야. 넷째 발가락이 먼저 발생하고 다음으로 새끼, 가운데, 검지, 엄지 발가락이 차례로 생겨나. 이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지 동물에 해당하는 특성이야.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진화 과정에서 발가락은 5개만 나오게 됐어. 방법은 뭘까. 6개, 7개, 8개 이렇게 발생하려는 발가락을 억제시키면 돼. 5개에서 딱 끝내는 거지. 그런데 그러지 못하면?”

“여섯 번째 손가락이 나오겠죠.”

“바로 그거야. 반대로 발생 과정이 너무 일찍 조절되면 발가락은 네 개 이하겠지. 말이 발굽이 하나가 된 게 바로 진화 과정에서 이런 조절 과정을 거친 덕분이야. 그렇다면 이건 유전자의 문제, 즉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뜻이야. 발생 과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지. 마치 수도꼭지처럼, 너무 조이거나 너무 열면 다른 형태가 나오는 거야.”
 
[몸이 셋인 ‘삼신국’의 백성 모습(위 왼쪽). 인도나 불교 신화에서도 많이 보던 모습이다. 오른쪽 위는 머리가 둘인 새 ‘만만’, 오른쪽 아래는 눈이 하나인 일목국의 백성. 맨 오른쪽의 서양 신화 속 거인 ‘키클롭스’가 떠오른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1898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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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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