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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김’ 뜨는 마을 충남 서천 마량항


추운 겨울이 오면 육지의 잎은 따스한 봄을 기다리며 자취를 감추지만 바다의 잎은 자신들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우리 밥상의 별미 역할을 해온 파래나 미역, 매생이, 톳, 김 등 해조류 이야기다. 이들을 수확하느라 어민들의 하루는 숨가쁘게 돌아간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해조류인 ‘김’.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과학을 찾아 충남 서천의 생생한 김 양식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진 지난 1월 12일 오전 7시 29분, 충남 서천 마량리 마량항 하늘의 구름 사이로 바다 쪽에서부터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여덟 명의 사람들이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서 있었다. 일출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항구에 서있는 어업인들이었다. 날씨 얘기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바람불면 바다 나가도 (김을) 뜰 수가 없고. 별수 없제.”라고 김명규 충남 서천 김양식 협회장이 말했다. “겨우 두 줄 뜨고 1시간 동안 (하도 흔들려서) 걍 서 있었제라.” 새벽 4시에 바다에 나갔다 돌아왔다는 어업인 이상용 씨가 말을 이었다. 어업인들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김 상태를 스스로 예측해 바다로 향한다.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아침 선창은 김 배들로 분주하다. 바람이 세게 불던 이날은 평소의 절반 정도의 김 배만이 바다로 향했다.

기자의 고향도 김 양식으로 유명한 남도의 섬, 완도다. 많은 친지들이 전복과 김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다. 서해가 품은 김은 어떤 빛깔을 보일지 궁금했다. 충청남도 서해안에 위치한 서천 지역을 찾은 이유다. 이곳도 완도 못지않게 김으로 정평난 곳이다.

김 양식 과정은 육지에서 씨를 뿌리고 작물을 수확하는 것과 닮았다. 지지대가 돼 줄 굴껍데기를 김발에 매달고, 그 속에 김 포자를 붙여준다. 그런 다음 영하 15~20°C의 온도로 보관해 뒀다가 늦가을부터 10~15일 동안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키운다.

바람이 세면 김이 바닷 속으로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제 때 나가서 뜯는 게 중요하다. 바람 불기 전에 최대한 김을 떠 올리려는 이유다. 이날도 다음 날부터 3일간 강풍주의보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젊은 어업인들이 바람을 무릅쓰고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김명규 회장의 아들 역시 김 회장을 대신해 바다로 나간 상태였다.


전 세계 김 50여 종… 한국엔 10여 종 있어
김이라면 다 같을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김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전세계에는 50여 종의 자연 종자가 있고, 우리나라는 서해와 남해안을 중심으로 10여 종이 있다. 9월 말부터 4월 초중순까지가 김 수확 철인데, 시기마다 각기 다른 김을 거둘 수 있다.

“완도 돌김이 맛있다고 알려져 있지? 돌김이란 건 종자가 따로 있고 딱 한 번 늦가을에 수확할 수 있어서 가격도 세다.”

김 회장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돌김에 대해 먼저 운을 뗐다. 겨울동안 전체 김 채취 횟수가 10~12번이라면 돌김은 늦가을 바다에서 최대 2번 정도 뜨면 수확시기가 끝난다. 딸기가 5~6월에 반짝 나고 끝나는 것과 비슷하다. 돌김종자는 이제 남해와 서해의 어업인들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다.

돌김이 끝나면 바다 상태를 예측해 재래김 종자와 슈퍼김 종자를 6대4 또는 7대3의 비율로 섞어 김을 수확한다. 슈퍼김 종자가 생산성은 좋지만 맛이 떨어저 재래김 종자와 섞어서 사용한다. 허진석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센터 연구사는 “단기간에 거둬들일 수 있는 잇바디 돌김(Porphyra dentata)을 가장 먼저 거둔다”며 “어업인들이 말하는 재래김 종자라는 것은 방사무늬김(P. yezonensis)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기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육성된 종자인 ‘해풍 1호’라는 이름의 김을 섞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민들은 해풍 1호와 같은 육성 종자들을 묶어 슈퍼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김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잎 모양으로 넓적하게 자라기 때문인데, 이 부위를 엽체라고한다. 엽체는 슈퍼종자 함량이 많을수록 넓어진다.

여름 동안 준비한 발에 김 포자를 붙여 얼렸다가 각자 지정된 바다에 풀어 10~15일동안 키워서 떠내는 것을 겨우내 반복한다. 마량항의 경우, 가로와 세로가 약 4km 되는 바다에 56명의 어업인이 김을 기르고 있다.

“수익이 10% 정도 더 나오는 소위 (김이) 잘 되는 자리가 있다. 그래서 공평하게 바다를 바꿔가면서 수확하고 있지.” 김 회장이 설명했다.

김은 보상점이 실내 조도 정도로 낮아 약한 빛에도 광합성이 가능하다. 바다 수온이 10°C 이하면서 광량도 적절한 10월에서 2월이 가장 김이 좋을 때이며 검고 진한 홍색을 띈다. 그 이후에는 색이 점점 옅어진다.
 

 

좋은 김은 ‘색태’로 알아
이른 아침 바다로 떠났던 김 양식 배가 다시 육지에 닿을 즈음, 하얀 김을 내뿜으며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이 있다. 막내 작업원이다. 그가 선창에서 배 위로 노란색 바구니를 쏜살같이 던진다. 그러자 선주들이 갓 떠온 김의 샘플을 바구니에 담아 올려보낸다.

올라온 샘플은 선주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꽃아 선창가에 마련된 선반 위로 향한다. 김 수확 시기에는 10시 반에서 11시면 항상 김 경매가 시작된다.

하나, 둘 김 샘플이 쌓였다. 경매중개인에게 좋은 품질의 기준을 묻자 “엽체의 색이 검붉고 윤기가 나야 하며, 구멍은 물론 꼬시래기도 없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꼬시래기는 바다에서 김이 생장할 때 생긴 거칠고 까끌까끌한 상처다. 공장에서 가공될 때 사라지기 때문에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최악은 김의 영양분이 부족해 색이 빠지는 황백화 현상이 오거나, 기생충에 감염돼 엽체에 구멍이 나는 붉은갯병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여러 어업인이 기자와 사진기자를 이끌며 밥을 권했다. 수협에서 고생하는 어업인들을 위해 특별히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어업인들은 이 행사를 추메식이라고 불렀다. 식사를 마치고 바람 때문에 늦게 나갔던 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11시가 좀 넘어서야 경매가 시작됐다.

제비뽑기로 정한 순번대로 상인들이 가격을 적으면, 경매인이 보고 낙찰자와 가격을 적는다. 이 날은 120kg 자루가 16만~20만 원 선에 거래됐다. 가장 필요한 사람이 앞에서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앞 번호일수록 비교적 가격이 높고 뒷 번호일수록 가격이 조금 떨어진다.

“보통 하루에 120kg짜리 2000자루를 거둬. 날씨가 좋으면 2600자루 정도 들어오고.”

24명의 어업인이 떠온 김 경매는 10여 분만에 끝이 났다. 이제는 마지막 작업만이 남아있다. 김을 떠온 순서대로 무게를 잰 다음, 출하하기 위해 차에 싣는 작업이다. 어업인의 손을 떠나 김가루, 김밥용 김 등으로 가공돼 소비자에게로 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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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 기자
  • 사진

    남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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