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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과학으로 풀어본 X파일의 실체 : 흡혈귀

신화와 사실의 교묘한 결합

드라큘라로 대표되는 흡혈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유럽의 특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봉건 영주가 지배했던 중세 장원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고립돼 있었고, 대부분의 배우자 선택도 이 안에서 이루어졌다. 드라큘라는 바로 이 상황에서 건강한 유전자 혼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유전질환자다.
 

드라큘라가 빛을 무서워하고 마늘을 싫어하는 것은 생물학적 근거를 가진 사실이지만, 십자가를 피하는 것은 신화적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관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조용히 잠든 사람을 공격해 피를 빨아먹는다.” 그동안 허다한 아류작을 만들어낸 흡혈귀 이야기 ‘드라큘라’는 1897년 브램 스토커라는 작가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설을 토대로 만든 괴기소설이 원조다. 이 책이 출간된지 1백주년을 맞는 요즘, 유럽은 느닷없는 흡혈귀 열풍에 쌓여 있다고 한다.

드라큘라는 X파일 1차 시리즈 5부의 ‘식인 원시인의 정체’(jersey devil)에 나오는 반인반수나 늑대인간, 동화 속의 인어, 히말라야 설인과 같이 어떤 류의 과학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피조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분명 사람 같기는 하지만 특이한 체질 때문에 사람으로 분류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괴물’의 범주에 해당된다. 그리고 FBI에 X파일 부서가 생긴 것도 늑대인간의 연쇄살인 때문인 것으로 설정돼 있는 것을 보면 이같은 괴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다소 광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1차 시리즈 19편). ‘늑대인간의 변신’(THE SHAPE)).

질리언의 임신으로 스컬리 없이 처음 만든 작품인 2차 시리즈 7부 ‘외계인 삼위일체’(3)은 흡혈 살인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피를 먹고 사람을 죽이는 기괴한 사건을 맡은 멀더는 수사 도중 혈액원에서 피를 먹던 용의자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지만 그는 햇빛에 타 죽는다.

괴테, 고골리 등 근대 낭만주의자들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 흡혈귀는 동유럽 등지에서 중세 이래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14세기경 흑사병의 창궐로 극심한 피해를 본 유럽인들은 병균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죽은 자를 땅에 묻기 바빴다. 그러나 이따금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살아나면서 동유럽인들은 흡혈귀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

여기에 악마적 요소가 가미된 드라큘라는 소설가들에게 환상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태양빛을 싫어해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다가, 자기가 살기 위해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는 공포와 함께 짙은 에로티시즘을 시사함으로써 사람들을 열광케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중세 동유럽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봉건 영주의 지배하에 있던 이 당시의 장원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고립돼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배우자 선택도 이 안에서 이루어졌다.

진화론적 입장에 있는 생물학자들은 재생산의 목적은 단지 종의 번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접을 통해 유전물질을 건강하게 혼합하는데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원시사회에서부터 근친상간이 금기가 된 생물학적 이유의 하나다. 종 다양성이 중요한 것은 질병이나 환경의 변화에 절멸돼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도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짝짓기는 자연유산이나 기형아 출산율이 높다. 유전적 다양성의 결핍은 종을 약하게 하고, 유전적 흐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돌핀이란 학자가 1985년 제안한 이론에 따르면 흡혈귀는 포르피리아라는 유전병에 걸린 환자다. 이 병은 유전적 다양성이 결핍되면서 나타나는데, 포르피린이라는 단백질 고리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포르피린 고리는 헤모글로빈이 철분과 결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백질. 헤모글로빈 속에 철분이 없다면 몸 곳곳으로의 산소 공급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드라큘라와 관련된 많은 기괴한 특징을 설명해준다. 먼저 포르피리아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혈중 헤모글로빈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빈혈로 심하게 고통받으며, 이들의 혈액은 산소와 화합하지 못한다. 둘째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 포르피린 고리는 살갗 아래 피하 지방층에 저장되는데, 이 물질은 태양빛 아래에서 전리돼 피부에 손상을 주는 심각한 물집을 유발한다.

소설은 드라큘라가 마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마늘에는 정상 상황에서 포르피리아 환자들의 잃어버린 단백질 고리를 대체해주는 기능을 가진 효소가 들어 있다. 이것을 드라큘라가 먹으면 필요한 생화학 물질의 갑작스런 돌진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포르피린 고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잇몸이 주저앉는 합병증 증세를 보인다. 이는 환자의 이가 정상보다 커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드라큘라의 송곳니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포르피린 고리가 제역할을 못하는 드라큘라는 정상인의 피를 섭취해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섭취된 피는 소화기관으로 들어갈 뿐 혈관 속으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어서 단백질을 보충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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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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