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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혜성과의 짧았던 첫키스

10년을 기다린 로제타의 순애보

1799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원정군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특이한 돌을 발견한다.
고대 이집트 문자와 그리스 문자가 나란히 새겨진 이 돌 덕분에 인류는 그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돌의 이름은 ‘로제타’. 유럽우주국(ESA)은 ‘추리’라는 이름의 혜성에
착륙할 탐사선에 같은 이름을 붙였다. 태양계 초기의 비밀과 물의 기원을 밝혀달라는 바람에서.
로제타 우주선은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치지직…, 아, 아! 여기는 로제타. 잘 들리나요? 지금쯤 지구에서 날 모르는 사람 없겠지요? 10년간 한 혜성만을 따라다닌 끝에 탐사선까지 내려 보낸~, 이 순정마초 우주선 말예요. 요새 젊은 탐사선들은 이 행성 저 행성 만나고 다닌다고 그럽디다만…, 어휴, 지고지순한 기다림과 인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서 그래요. 하여튼 거기 앉아서, 젊은 날을 다 바친 내 사랑 이야기 한번 들어봐요.

그러니까 그 혜성을 처음 만난 게…, 1969년이었어요. 추류모프라는 구소련 과학자가 처음 발견했는데, 자기 이름을 따서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라고 이름을 붙였죠. 저는 줄여서 ‘추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길 좋아해요. 추리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첫 눈에 반했죠. 다른 혜성들처럼 먼지와 드라이아이스, 얼음으로 이뤄진 추리는 태양 가까이 올 때마다 가스와 먼지를 분출하며 거대한 꼬리를 만들었어요.

과학자들은 혜성이 어떤 시점부터 꼬리를 만들기 시작하는지 궁금해 했어요. 보통 목성과 화성 궤도 사이에 있는 스노우 라인(얼음을 녹일 만큼 태양에너지가 충분히 미치는 지점)을 지나면서 꼬리가 생기기 시작해요. 하지만 특별한 규칙이 보이지 않았어요. 혜성마다 제각각이었죠. 꼬리가 생기기 전에는 혜성이 잘 보이지도 않아서, 아주 가까이 가지 않으면 코마 형성 과정을 관측하기도 어려웠고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혜성이 어떤 물질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내는 데도 관심이 많았어요.

모두가 넋을 잃고 혜성의 아름다움을 바라만보고 있을 때, 전 결심했죠. 그녀에게 다가가서 고백하기로. 왜 하필 추리였냐고요? 추리는 궤도가 특별했어요. 혜성이 너무 태양 가까이 들어오면 금세 가스를 다 분출해버리고 코마가 사라져요. 반대로 태양에서 너무 멀리 운동하면 코마도 잘 안 생기고, 제가 다가가기도 힘들잖아요. 추리는 딱 적당했어요. 가까이는 지구와 화성 궤도 사이로 들어오고, 멀리는 목성 궤도 근처까지 타원형을 그리면서 6.45년을 주기로 공전하거든요. 유럽우주국(ESA) 과학자들이 절 도와줬죠. 총 13억 유로(약 1조8000억 원)를 들여서 저와 발사선을 만들었어요.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할 반지…, 아니 탐사로봇 ‘필래(Philae)’도 달아줬고요. 필래는 냉장고만한 데다 무게도 100kg이나 나갔지만, 걱정 없었어요. 저 로제타는 길이 14m짜리 태양전지가 두 개나 있는 데다, 무게도 3t으로 꽤 큰 우주선이거든요.


10월 14일 혜성 추리를 배경으로 로제타가 찍은 셀카.
태양전지판 뒤로 추리가 보인다.


957일간 겨울잠 뒤 “안녕, 세상아!”
출발을 앞두고 한 가지 ‘사소한’ 문제를 풀어야 했어요. 추리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거? 추리는 태양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져서 최대 시속이 13만5000km에 이르러요. 우리가 만나는 위치에서는 시속 5만5000km쯤 됐는데, 이것도 총알보다 15배 이상 빠른 속도예요. 누군가 ‘말을 타고 달리다가 화살을 쏴서 총알을 맞추는’ 난이도라고 합디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에요. 왜냐면 그만큼…, 쉽지가 않았거든요.

지구에서 싣고 가는 연료로는 그 정도 속도를 낼 수 없었어요. 저는 지구와 화성에 도움을 청했죠. 행성 근처로 다가가면 그 행성의 중력 덕분에 힘 들이지 않고 방향를 바꿀 수 있거든요. 이렇게 지구에 3번, 화성에 1번, 소행성에 2번 중력도움을 얻고 나서야 간신히 추리와 속도가 비슷해졌어요. 여기까지 7년이 걸렸죠. 한 가지 ‘더 사소한’ 문제가 있었어요. 태양에서 점점 멀어지는 길이라 태양전지로 들어오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었거든요. 저에게 조상님뻘인 보이저나 카시니 탐사선은 장거리여행을 위해서 핵연료를 싣고 갔대요.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어요. 추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들은 우주선에 핵연료를 싣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탐사선이 지구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폭발하거나, 목적지 행성 주변에서 폭발하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지구 밖에서 막 시작되고 있는 생명을 뿌리째 뽑는 ‘폭탄 테러’가 될지 누가 알아요?

그래서 전 깊은 겨울잠을 자기로 결심했어요. 무려 957일 동안. 전 2011년에 탐사활동이나 지상교신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껐어요. 우주선이 얼어붙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열만 유지하고요.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잤다가 못 일어나면 어떡해요. 추리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차가운 우주에서 영원히 자게 될 수도 있잖아요. 과학자들도 걱정이 많았나 봐요. 동력장치를 1년에 걸쳐서 서서히 끈 걸 보면요. 전 957일 뒤에 울릴 알람을 맞춰놓고 쿨쿨 잤어요. 추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긴 꿈을 꿨죠.

올해 1월 20일 드디어 겨울잠에서 깨어났어요. 자고 일어나니 유럽우주국에서 “일어났니?”하고 신호가 와 있더라고요. 독일 유럽우주운영센터에 모여있던 과학자들은 초긴장 상태였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서 8억7224km나 떨어져 있어서 저한테 신호가 오는 데만 45분이 걸렸거든요. 일어나서 7시간 동안 워밍업을 하고 지구로 신호를 보냈죠. 나중에 들어보니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고 하네요. 제 이름으로 된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서 “안녕, 세상아!(Hello World!)”라는 인사도 올렸다니 참. 하지만 제 관심은 오직 하나, 추리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6일, 드디어 그녀를 만났습니다.

가을바람 소리가 나는 그녀
‘또고또고또고’ 이게 무슨 소리 같나요? 바로 추리가 내는 소리예요! 저도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았어요. 혜성이 소리를 내는 건 처음 발견된 일이거든요. 헬리콥터 소리 같기도 하고 타악기 소리 같기도 하고…, 시원한 가을바람처럼 ‘쌔애앵~’ 하는 소리도 들려요. 원래 사람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인데 제가 주파수를 1만 배나 키워서 들을 수 있는 거예요(오른쪽 QR코드). 여러분도 한번 들어보세요. 과학자들은 추리에서 중성자 입자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자기장 진동이 발생하는 걸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른대요.

 PLUS 
혜성에서 뭘 밝혀낼 것인가
혜성의 구성성분을 분석하면 태양계가 태어났을 때의 환경을 알 수 있다. 46억 년 전 가스와 먼지가 뭉쳐 원시 태양계가 만들어진 뒤, 무거운 물질이 점점 안으로 모여 행성을 이뤘다.

태양계 외곽의 가스지대는 아직도 초기 태양계와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혜성은 이곳에 있는 물질을 싣고 날아와 태양 근처에서 내려주는 ‘셔틀버스’다. 혜성의 구성성분을 파악하면 초기 태양계의 구성성분과 온도, 압력,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지구에 있는 물의 기원도 밝혀낼 수 있다. 태양계에서 왜 유독 지구에만 이렇게 물이 풍부할까. 태양계 외각에서 혜성이 물을 싣고 와 지구와 부딪쳤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혜성에 있는 물의 중수소/단일수소 비율과 지구 물의 중수소/단일수소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주장은 아직 가설 수준이다. 이번 혜성 착륙을 통해 자세한 정보가 나온다면 물의 기원에 좀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혜성에는 각종 유기물질도 풍부하다. 혜성이 지구에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게 했을까. 과학자들이 혜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로제타는 뭘 할까? 자외선이미지분광기(ALICE)를 이용해 혜성 표면과 코마에서 나오는 자외선 파장을 분석한다. 어떤 물질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이크로파 장비(MIRO)를 이용해 혜성 내부온도를 측정한다. 이온 및 전자센서(IES)를 이용해 태양풍과 코마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현상을 관찰한다.

1(왼쪽). 필래가 착륙 직후 보내 온 추리 표면의 파노라마 사진. 음지에 착륙해한쪽 방향만 희미하게 태양빛을 받고 있다. 2(오른쪽). 필래로부터 “혜성 표면에착륙했다”는 신호를 받고 유럽우주국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잠시 후 필래가 불시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들 표정이 심각해진다.

추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어요. 100km 근처까지 다가갔을 때 처음 소리를 들었고, 26km 지점에서는 가스와 먼지가 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혜성활동이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한 건 처음이에요. 그날은 9월 26일이었어요. 갑자기 추리 목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왔어요. 혜성에 목이 웬 말이냐는 분을 위해 잠깐 보충설명 드리자면…, 추리는 고무오리를 닮았어요.

얼마 전 잠실 석촌호수에 전시됐던 러버덕을 떠올리면 비슷해요. 크기가 훨씬 크긴 하지요. 길이가 4100m니까. 하여튼 머리와 몸통 사이에 가느다란 목 부분에서 먼지와 가스가 먼저 분출됐다고요. 이건 기존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어요. 독일 막스플랑크 태양계연구소의 장-밥티스트 빈센트라는 과학자는 “태양에너지를 받는 모든 부분이 비슷한 증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특정 부분에서 먼저 분출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대요. 10km까지 가까이 다가가선 본격적으로 추리에서 나오는 가스와 먼지를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온도와 자기장도요.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순간이 남아있었죠.

WHAT 필래와 아질키아 - ‘필래’라는 이름도 로제타와 관련이 깊다. 필래는 로제타 해독에 도움이 된 오벨리스크(이집트 상형문자와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비문)가 발견된 섬 이름이다. 유럽우주국은 필래 착륙지점을 3개월 동안 고른 끝에,오리로 치면 머리 부분의 가장 평평하고 아늑한 지점을 선정했다. 여기에 ‘아질키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이는 아스완 댐 건설로 필래 섬이 침수될 위기에 처했을 때 유적들을 옮긴 섬 이름이다. 필래 섬에서 아질키아 섬으로 옮겨 온이시스 신전. 이 신전에서 로제타 돌 해독에도움이 된 오벨리스크를 발견했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태평양 기준시로 빼빼로데이에 저의 마음을 담은 필래를 추리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10km 거리에서도 웬만한 건 알 수 있지만, 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거든요. 추리 표면에 착륙해 구멍을 뚫고, 토양의 화학조성을 분석할 필래를 보낸 건 그래서예요.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일이죠. 지난 10년간 64억km를 여행하면서 가장 떨렸던 순간이에요.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추리와 저는 거의 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보면 추리는 거의 멈춰 있었죠. 오히려 추리가 12시간에 한 번씩 자전하는 게 더 골치였어요. 큰 행성 같았으면 중력이 있으니까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며 저도 공전하겠는데, 추리는 중력이 워낙 미약해서 필래를 착륙시키기까지 무지 복잡한 곡예비행을 해야 했어요.

한국시각으로 12일 저녁 6시, 필래를 떨어뜨렸어요. 필래는 천천히 걸어가는 속도로 7시간 동안 날아갔지요. 아…, 그 7시간이 지난 10년보다 길었어요. 사실 필래의 분사장치가 고장난 걸 알고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작살 하나만 믿고 험난한 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죠. 13일 새벽 1시, 필래가 추리 표면에 쏜 작살이 허망하게 빗나갔어요. 필래는 반작용으로 허공에 1km나 떠올랐지요. 그 모습을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며 태양전지판을 동동 굴렀어요.

그래도 추리가 필래를 아예 내칠 생각은 없었나 봐요. 두 번을 튕긴 끝에 필래가 다리에 있는 드릴 하나로 땅을 움켜쥐었거든요. 우주미아가 되는 일은 다행히 피했지만, 원래 계획처럼 드릴 세 개와 작살 두 개로 단단히 땅에 고정하는 건 실패했어요. 절벽 근처 음지에 비상착륙해 태양전지판을 제대로 못 쓰게 됐다는 점이 가장 절망적이었어요.

필래는 충전을 못 해 20시간 만에 방전됐어요. 한 가지 기특한 건 필래가 절벽에 한 발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도 잽싸게 표면정보를 수집해 보내줬다는 거예요. 방전되기 직전에 말예요. 과학자들이 열심히 분석하는 중인데, 벌써 유기분자가 발견됐다고 해요. 생명의 기원인 아미노산도 발견할지 궁금하네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마친 필래는 기나긴 잠에 빠져들었어요. 필래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고개를 저어요. 태양 가까이 다가갈수록 추리에게서 가스와 먼지가 많이 뿜어져 나올 텐데, 압력으로 필래가 튕겨나가거나 태양전지판이 먼지로 뒤덮일 가능성이 있거든요. 도도한 추리, 입맞춤만 하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네요.

필래는 잠들었지만 저 로제타는 포기할 생각 없습니다. 앞으로 1년간 추리 곁을 지킬 거예요. 추리가 태양으로 다가갈수록 코마가 커지는 모습을 지켜볼 겁니다. 미로, 앨리스, IES 같은 분석장치가 도도한 혜성, 추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거예요. 로제타석이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풀어주었듯, 우주의 비밀스런 암호를 풀어줄 단서를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과학자들은 저에게 로제타라는 이름을 붙였죠. 이제 이름값을 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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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스페이스 임파서블
PART1. 혜성과의 짧았던 첫키스
BRIDGE. 로제타, 실패해도 괜찮아
PART2. 소행성 ‘보쌈’해 지구 구한다

 

201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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