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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 인삼 약효도 장내미생물 덕분






계절이 바뀌면 몸을 보하기 위해 ‘보약’을 지어 먹곤 한다. 보약 하면 사슴의 뿔인 녹용이 떠오르지만 인삼, 감초 같은 약재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비싼 보약을 먹어도 별 효과를 못 봤다며 속상해한다. 왜 그럴까.

“식물이 처음부터 약효성분을 갖고 있는 일은 오히려 드뭅니다. 많은 경우 장내미생물이 인체가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분해해야 하지요.”

지난 20여 년 동안 장내미생물을 연구해온 경희대 약대 김동현 교수의 설명이다. 먹는 천연 의약품은 인체에 흡수가 돼야 약효가 나오므로 넓은 의미에서 식품에 포함될 수 있다. 플라보노이드 같은 식품의 특정 성분이 몸에 흡수되려면 장내미생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건 1960년대였다. 그러나 이 발견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연구자들이 사하제(설사를 유발해 변비를 치료하는 약)로 쓰이는 대황이 약효를 보이려면 장내미생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김 교수는 한약에 즐겨 쓰이는 여러 약재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약효가 나타나는 건 아닌지 조사해봤다. 그 결과 많은 약재에서 그렇다는 결과를 얻었다.

“예를 들어 인삼의 경우 10명 가운데 두 사람은 먹어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인삼에 들어있는 진세노사이드Rb1이라는 성분을 몸이 흡수할 수 있는 화합물K로 바꿔주는 효소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진세노사이드를 화합물K로 만들어주는 베타-글루코시다제라는 이 효소는 사람은 못 만들고 특정 장내미생물이 만드는데 이 미생물이 장에 살지 않거나 숫자가 얼마 안 되는 경우 진세노사이드RB1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한다. 결국 비싼 인삼의 주요성분은 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채 변으로 배출된다. 이런 식의 메커니즘을 거치는 약재는 인삼과 감초를 비롯해 치자, 행인(살구씨), 칡, 탱자, 진피(말린 귤껍질), 황금 등 목록이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장내미생물들은 왜 사람들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하는 걸까.



무균동물은 치사량 먹어도 안 죽어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식물의 약효성분은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독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당분자를 붙인 배당체처럼 자신이 흡수하지 못하는 형태로 축적하고 있지요.”

장내미생물이 관심이 있는 건 배당체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달려 있는 당분자다. 따라서 당분자만 잘라먹고 나머지는 세포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게 장벽을 통해 흡수돼 약효를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장내미생물이 없는 경우는 독이 될 정도로 많은 양을 섭취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무균동물에 행인의 성분인 아미그달린을 치사량에 이를 정도로 많이 먹여도 죽지 않습니다. 장내미생물이 없기 때문에 아미그달린이 독성분인 청산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김 교수는 이런 점에 착안해 발효 한약을 개발했다. 즉 약효성분의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인삼 같은 약재를 발효 미생물에 미리 처리해 우리 몸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약에 들어있는 유효한 천연물 성분이 아닌 합성의약품과 같은 작은 분자로 된 약물의 흡수는 어떨까.

“지금까지 몇 가지를 조사해봤는데 이런 약물들의 흡수에는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와 공동연구를 했던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약리연구과 정호상 연구관의 설명이다. 천연약물은 대체로 분자구조가 복잡하고 덩치가 커 그 자체로는 흡수가 잘 안되는 반면 화학 약물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하고 작아 장에서 그대로도 흡수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식약청은 앞으로 더 많은 화학 약물을 대상으로 흡수에 장내미생물이 관여하는가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천연약물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장내미생물과 상호작용하면서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은행잎 추출물의 경우 장내미생물 가운데 대표적인 유익균으로 알려진 젖산간균과 비피도박테리아의 숫자를 늘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미생물은 인체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데 특히 면역계를 조절해 1형 당뇨병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위험성을 낮춰준다. 즉 은행잎 추출물의 약효 가운데 일부는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즉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증식과 활동을 돕는 물질로 기능함으로써 얻어진다는 말이다.

중국 상하이자오퉁대 리핑 자오 교수는 “약초로 만든 약은 장내미생물 대사에 뚜렷한 변화를 일으키고 약 복용이 끝난 뒤에도 이 변화가 꽤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며 “미생물 대사 활성과 전통 동양 의약품의 약효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제된 단일 성분인 화학 약품과는 달리 수많은 성분의 복합체인 천연물 약품의 경우 장에 흡수돼 혈관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성분이 많지만 대신 장내미생물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는 인체에도 작용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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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정신건강까지 책임지는 장내미생물
Part4. 인삼 약효도 장내미생물 덕분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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