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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전기 꽂고 전기차 시대 ‘스위치 온’



대도시 거리를 걷다 보면 육중한 배기음을 내뿜으며 달리는 튜닝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엔진이 일정한 간격으로 내뱉는 ‘둥둥둥’ 소리는 튜닝카를 모는 이들에겐 음악이다.

보통 운전자들은 이를 소음으로 여기고 부드럽고 조용한 엔진을 선호하지만 이들은 취향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튜닝카 운전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즐길 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모터를 쓰기 때문에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차근차근 실용화의 길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화석 연료를 쓰는 자동차가 2030년경에는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얼마나 적게 휘발유를 쓰느냐를 겨루던 연비 경쟁의 양상이 완전히 뒤바뀔 날이 다가 오고 있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전망을 실현시킬 열쇠는 종전의 자동차 기술을 개량하는 데 있지 않다.
 

 

 

 


전통적인 자동차에 없던 새 기술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 중심에 바로 2차 전지가 있다. 2차 전지는 전기 자동차 시대를 열 핵심 동력원으로 꼽힌다. 휘발유와 공기를 섞어 불을 붙이는 엔진의 시대가 가고 전력을끌어와 공급하는 모터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2차 전지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90년 니켈수소전지가 상용화된 뒤 리튬이온전지가 1991년 시장에 등장해 노트북, 휴대전화의 동력원 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앞서 1960년대 니켈 카드뮴 전지가 2차 전지의 소형화 시대를 열기 전까지는 1859년 개발된 납축전지가 2차 전지 자리를 지켰다. 150년에 이르는 2차 전지의 시대는‘오래 가고, 크기가 작은’ 전지를 개발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지난 6월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 자동차‘아이미브(i-MiEV)’가 등장하면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2차 전지의 세계와 전망을 짚어본다. 2차 전지가 연 IT세상19세기 이집트 피라미드를 탐사한 영국의 로먼 로키어 경은 피라미드 내부에서 그을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2000년경. 조명 도구라고는 횃불이 유일했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건설공사를 할 때 전기 램프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이집트에는 전지의 원리를 사실과 상징을 섞어 묘사한 듯한 벽화가 있다. 많은 반론을 부른 주장이었지만 전지가 현대인의 전유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고대인들이 전지를 썼다는 강력한 증거가 나온 적도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지금의 이라크 일대를 지배했던 파르티아인들은 흙으로 만든 그릇에 화학물질을 담아 불을 켠 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만들었다. 럭비공처럼 덩치가 컸지만 고대인들이 만든 초보적인 전지였던 셈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전지는 1800년에 등장했다. 은판과 아연판을 이용한 것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 전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지를 다시 충전해 써야 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 충전해서 쓰는 2차 전지가 본격적으로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정보기술(IT) 발달로 휴대용 기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부터였다. 휴대전화, 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장치(PMP), 노트북 컴퓨터, MP3 플레이어처럼 일반인들이 흔히 갖고 다니는 장비 대부분이 2차 전지를 필수 동력원으로 하고 있다. 만약 2차 전지가 없었다면 이 같은 휴대용 기기의 등장은 지금보다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현재 휴대용 기기에 들어가는 2차 전지는 대부분 ‘리튬이온전지’다. 리튬이온전지란 양극 재료로 ‘리튬코발트산화물’처럼 리튬을 포함한 화합물을, 음극 재료로는 흑연이나 코크스를 쓴다. 두 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은 리튬 용액을 쓴다. 방전할 때, 즉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때는 리튬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며 전자를 끌고 가 전류가 흐르도록 한다. 충전할 때는 반대로 양극에 있던 리튬 이온과 전자가 음극으로 이동한다. 방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셈이다. 전극 간을 이동하는 리튬 이온의 양이 많을수록 더 많은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


 



리튬이온배터리 써야 순간 가속력‘OK’

IT 기기에선 필수품이 된 리튬이온전지이지만 지금까지 상용화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는 설치된 예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싸서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로서는 세계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한 도요타의‘프리우스’에도 리튬이온전지가 아닌 니켈수소전지가 탑재돼 있다.

하지만 자동차용 2차 전지에서 니켈수소전지 시대는 조만간 막을 내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니켈수소전지는 비교적 값이 싸긴 하지만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적다.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터로만 달리려면 니켈수소전지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현재까지 나온 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같은 용량일 경우 리튬이온전지는 니켈수소전지에 비해 무게를 절반, 부피는 20~50% 줄일 수 있다. 역으로 짚으면 니켈수소전지가 덩치는 크지만 능력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리튬이온전지의 장점은 또 있다. 높은 전압을 낼 수 있는 점이다. 전지는 전압이 높을수록 순간적인 출력을 내는 데 유리하다. 이런 전지를 단 자동차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꽉 밟았을 때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지금도 스피드를 즐기는 운전자들 사이에선 순간 가속력이 좋은 차를 선호하는 흐름이 강하다.‘휘발유를 쓰는 차에 비해 힘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보통사람들의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리튬이온전지를 쓰는 게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리튬이온전지의 전압은 니켈수소전지의 3배다. 만약 전압이 낮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출력을 높이려면 전류를 많이 흘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배선이 굵어져 자동차 내부 장치의 덩치가 커진다.

게다가 리튬이온전지에는 이른바 ‘기억 효과’가 없다. 기억 효과란 충전과 방전을 100% 하지 않으면 전지 용량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기억효과가 없다는 점은 전지 용량이 남은 상황에서 충전할 일이 많은 전기 자동차에는 상당히 요긴한 특징이다.

내년부터 미국 GM이 양산할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보레 볼트’가 리튬이온전지를 채택했다. 이 사례도 자동차용 2차 전지의 주도권이 니켈수소전지에서 리튬이온전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안전성 확보 노력 활발



리튬이온전지가 전기 자동차 시대를 앞당길 열쇠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기까진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우선은 안전성이다. 2006년 소니는 여러 컴퓨터 회사에 납품한 노트북용 리튬이온전지가 과열되는 문제가 나타나 960만 대를 리콜한 사례가있다. 이 사건은 리튬이온전지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크게 불러일으켰다.

또 노트북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면서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거나 충전 중인 휴대전화가 폭발하는 일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나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커졌다.

이 같은 문제를 미국의 아르곤국립연구소 기술진은 양극의 소재를 코발트에서 망간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풀었다. 코발트는 전지 안에서 합선과 같은 돌발 현상이 생기면 산소가 방출돼 온도가 급속히 높아진다. 과열과 화재의 전초전인 셈이다.

하지만 망간은 코발트와 달리 산소를 단단히 붙잡아 둬 온도가 연쇄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막는다. 게다가 망간은 전지의 성능을 30% 높이고, 충전 횟수도 기존 리튬이온전지의 2배인 1500회까지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망간을 리튬이온전지에 사용하는 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기술인 셈이다. 이 기술의 라이선스는 최근 일본 화학기업 도다공업이 얻었다.


 

 

 


일본 경제정보사이트인 ‘일경 BP’는 NEC 고위 관계자의 말을인용해 “망간을 사용하는 기술을 완전한 전기 자동차에 쓰는 건 어렵지만 일반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가정용 전기를 사용해 충전하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선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2030년경으로 예측되는 전면적인 전기 자동차 시대를 개막하려면 리튬이온전지의 골격은 유지하되 충전 능력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실제 미츠비시 자동차가 지난 6월 일본에서 선보인 전기 자동차 ‘아이미브(i-MiEV)’는 1회 충전으로 160km를 주행할 수 있고, 최대 시속 130km까지 낼 수 있다. 출퇴근용으로는 큰 불편함이 없지만 아직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성능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자원외교 vs.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



재계에서 나오는 지적에 따르면 앞으로 리튬이온전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매장된 광물 상태의 리튬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연구만 한다고 리튬이온전지 시장을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리튬은 일부 국가에 쏠려서 매장돼 있기 때문에 이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임태윤 수석연구원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세계 3위의 리튬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전 세계 리튬의 50%가 묻힌 볼리비아에 대한 자원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고향에 학교 건설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배 2척을 포함한 군용 차량 50대를 제공했다. 일본도 뒤질세라 미츠비시 상사가 볼리비아에 광산기술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한국도 최근 들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에 한껏 나서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LG화학이 2차 전지를 생산하는 합작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LG화학은 특히 현대기아차와 GM에 전지를 공급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자동차용 2차 전지를 겨냥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내에서 다른 국가보다 유리한 국면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바로 자동차용 2차 전지가 스마트 그리드와 연계돼 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제주도에서 착공된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에선 전기 자동차에 실린 2차 전지가 잠재적인 전기 저장고 노릇을 할 예정이다. 자신의 차에 저장된 전기를 한낮에 전력 수요가 많을 때 전력 회사에 파는 일이 가능하다. 2차 전지 시장이 한국의 특수성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급속히 확대될 공산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정부는 스마트 그리드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려는 장기 계획도 갖고 있어 2차 전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 자동차라는 호재를 만나면서 크게 기지개를 켜고 있는 2차 전지 시장. 앞으로 한국 과학계와 기업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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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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