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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정신건강까지 책임지는 장내미생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사촌에 대한 시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배가 아프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다. 우리도 일상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스트레스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머리가 받는데 왜 애꿎은 장에 염증이 생기는 걸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

미국 장내염증질병센터가 지난 2009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배탈이 나는 이유는 따로 떨어져 있던 장내미생물이 모이면서 독소를 내뿜어 장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 때 장내미생물의 결집을 명령하는 물질이 AI-3다. 이 물질은 사람이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과 형태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늘어난 노르에피네프린은 장내미생물의 AI-3 수용체에 붙는다. 장내미생물은 이를 AI-3가 붙은 것으로 착각하고 추가로 AI-3 물질을 분비해 장내미생물을 결집시킨다. 모인 장내미생물이 한꺼번에 많은 독소를 내뿜어 배탈을 일으키는 것이다.

배탈이 나면 설사를 한다. 이는 독소를 빼내기 위한 우리 몸의 방어기작으로 뇌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양을 늘려 장운동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장내미생물이 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 불안증세와 우울증을 완화시켜주는 락토바실러스람노서스.

그렇다면 뇌는 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장벽에 있는 장크롬친화성세포(ECC)다. 보통 세포는 기관의 안이나 밖, 둘 중 한 방향으로만 신호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ECC는 장의 안과 밖, 양방향으로 통신하는 능력이 있다. 장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장 바깥쪽에 있는 미주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미주신경은 뇌의 한 가운데에서 뻗어 나와 심장, 인두, 성대, 내장기관 등에 퍼져 이 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최근 장내미생물이 생물의 기분과 행동, 뇌의 발달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논문이 계속 발표되면서 ‘장내미생물-장-뇌 축(microbiome-gut-brain axis)’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을 없애준다

아일랜드 코크대의 존 크라이언 박사는 캐나다 맥 마스터대 연구진과 함께 지난해 8월 장내미생물이 생물의 행동과 기분 등 정신건강에도 관여한다고 발표했다.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Lactobacillus rhamnosus)를 먹은 쥐가 무균쥐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았으며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는 행동이 적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무균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집단에만 유산균을 넣은 수프를 6주간 먹였다. 그리고 십자(+)모양의 미로에 쥐를 풀어 놓고 행동을 관찰했다. 실험 결과, 유산균을 먹은 쥐가 무균쥐에 비해 미로에서 넓고 트인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존 박사는 “폐쇄적이고 어두운 곳을 찾는 쥐의 습성상 실험결과는 그만큼 불안감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장내미생물은 우울함도 덜 느끼게 한다. 연구팀은 투명한 아크릴 실린더에 물을 채운 뒤 쥐를 물속에 넣고 헤엄치는 시간과 멈춰있는 시간을 기록했다. 이는 항우울제의 효과를 확인하는 데 쓰는 실험으로 약을 먹고 난 다음에는 쥐가 더 빨리 많이 움직인다. 실험 결과, 유산균을 먹은 쥐는 15분 가운데 멈춰있는 시간이 2분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무균쥐는 2분 40초간 멈춰 있었다. 장내미생물이 우울증을 개선하는데도 효과를 보인 것이다.

유산균을 먹은 쥐가 스트레스도 적게 받았다. 수영 실험 30분 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 분비량을 측정했는데 유산균을 먹은 쥐의 분비량이 무균쥐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 마이코박테리움 박카이.
학습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쥐의 뇌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유산균을 먹인 쥐의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GABA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mRNA가 더 많이 활성화됐다. GABA가 적을수록 우울하고 축 처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맥 마스터대의 피터 맥린 박사의 연구팀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장염을 앓고 있는 쥐에 비피도박테리움 롱검(Bifidobacterium longum)이라는 미생물이 섞인 먹이를 먹였더니 불안증세와 우울증이 호전됐다.

그렇다면 유산균은 어떤 경로로 쥐의 뇌에 영향을 미쳤을까. 답은 미주신경에 있다. 연구팀은 유산균이 들어있는 수프를 쥐에게 주기 전에 쥐의 미주신경을 잘랐다. 그랬더니 대조군인 무균쥐와 행동이며 기분, GABA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mRNA 발현 정도가 모두 비슷하게 나타났다. 유산균이 주는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 실험으로 장내미생물이 미주신경을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고 전했다.


장내미생물로 똑똑해진다

장내미생물이 똑똑하게 한다는 결과도 있다. 지난해 미국 미생물학회에서 미국 세이지대 도로시 매튜 교수는 마이코박테리움 박카이(Mycobacterium vaccae)가 뇌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균 역시 불안과 우울증세 완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미 항우울제로 사용하고 있다. 연구팀은 무균쥐를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만 이 균이 섞인 먹이를 주고 미로찾기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균을 먹은 쥐가 보통 쥐에 비해 2배나 빨리 미로의 출구를 찾았다. 또 유산균을 먹인 쥐와 마찬가지로 넓고 트인 길을 선호하는 등 불안 증세도 덜했다.

매튜 교수는 “이 균은 산이나 밭 등 흙에 살면서 사람의 귀와 입으로 들어간다”며 “학생들의 야외활동이 정서를 안정시키고 학습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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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제2의 나, 장내미생물
Part1. 당신의 장유형은 무엇입니까?
Part2. 말도 안되는 배들 4S
Part3. 정신건강까지 책임지는 장내미생물
Part4. 인삼 약효도 장내미생물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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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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