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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장내미생물, 민감한 면역계 길들인다


 

“화합물 IRT5를 이루는 미생물 5종은 모두 사람의 대변에서 분리한 유산균입니다. 다른 유산균이나 이들을 단독으로 쓸 때보다 5종을 조합할 경우 면역조절능력이 가장 탁월했습니다.”

지난 4월 13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대한면역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면역학자인 광주과기원(GIST) 생명과학부 임신혁 교수는 ‘프로바이오틱스 혼합물 IRT5를 이용한 알레르기 질환의 면역조절’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발표시간 내내 청중들은 경청했고 발표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이어졌다. 21세기 들어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알레르기 질환을 장내미생물을 이용해 다스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몸에 유익한 역할을 하는 장내미생물로 주로 유산균에 속한다. 임 교수는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는 유산균 5종을 선별해 최적의 비율로 섞은 조합물을 IRT5라고 이름지었다. 여기에 뽑힌 유산균 5종은 락토바실러스 액시도필러스, 락토바실러스 카제이, 락토바실러스 루테리, 비피도박테리움 비피디움, 스트렙토코쿠스 써모필루스다.

수지상세포 성격 바꿔

임 교수팀은 지난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프로바이오틱스 IRT5가 어떻게 면역조절 기능을 발휘해 아토피나 천식, 류머티스 관절염, 염증성장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 IBD) 같은 면역계 교란으로 인한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는지를 밝혀냈다. 놀랍게도 그 메커니즘은 ‘장내미생물이 실험동물의 면역계를 교육시켜 정상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한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늘 외부 물질과 접촉하는 장의 내벽에는 많은 면역세포들이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만일 면역세포들이 무조건 외부 물질을 배척해 공격한다면 장내미생물은 존재하지 못할것이다. 결국 우리 장 안에 몸 전체의 세포보다 10배나 더 숫자가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건 면역계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장내미생물과 면역계 사이의 상호작용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는데 최근 활발히 연구되면서 그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T세포를 성숙시키는 역할을 하는 수지상세포. 유산균이 수지상세포를 교육해 정상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상 피부(왼쪽)에 아토피 반응을 유발하면 피부가 붓는데(가운데) IRT5를 먹은 실험동물은 증상이 개선된다(오른쪽).]


임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IRT5는 장면역계를 이루는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 줄여서 DC)에 영향을 미친다. 수지상세포는 말 그대로 세포막이 나뭇가지처럼 기다랗게 뻗어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얼핏 보면 면역세포라기 보다는 신경세포처럼 보인다.

수지상세포는 여러 종류가 있고 항원을 포획하는 등 여러 작용을 한다. 장에 존재하는 수지상세포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장간막림프절, 즉 소장과 대장 주변에 분포한 림프절에서 T세포를 성숙시켜 현장에 내보내는 일이다. 불과 수년 전만해도 T세포는 조력T세포(TH)나 세포독성T세포(TC)로 분화돼 우리가 익숙한 면역작용, 즉 몸 안에 침입한 이물질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절T세포(Treg)의 존재가 밝혀졌고 그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조절T 세포는 전투부대원인 조력T세포나 세포독성T세포와는 달리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면역계 과민으로 인한 질환의 배후에는 조절T세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다시 임 교수팀의 연구로 돌아가서 IRT5는 수지상세포에 영향을 미쳐 그 성격을 바꿔놓는다. 연구팀은 이렇게 변한 세포를 조절수지상세포(rDC)라고 불렀다. 임 교수팀은 조절수지상세포가 장간막림프절에서 T세포를 교육시키면 주로 조절T세포로 성숙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과적으로 프로바이오틱스가 면역계의 교사인 수지상세포를 가르쳐 학생들을 올바로 인도하게 유도한 셈이다.

장간막림프절에서 성숙한 T세포들은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이물질이 침투하거나 염증반응이 일어난 부위에 들어가 작용한다. 따라서 아토피나 염증성장질환 같은 과민 면역반응으로 인한 염증 부위에 조절T세포가 작용하면 염증반응이 억제되면서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왜 스스로 균형 있는 면역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장내미생물의 힘을 빌리는 걸까.

위생가설 입증하는 실험 속속 발표돼

1989년 영국 런던위생·열대의학대 데이비드 스트라찬 교수는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봄철 꽃가루에 의한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 면역계 과민으로 인한 질병이 나타나는 빈도가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훨씬 높은 이유가 바로 생활환경이 훨씬 더 위생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는 논문이다. 훗날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로 불린 이 상식 밖의 주장은 놀랍게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위생가설이 말하는 현상이 왜 나타날까. 한마디로 선진국 아이들은 너무 깨끗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미생물이나 기생충에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 결과 면역계가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 그러자 면역계가 점점 더 예민해져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소한 자극에도 일일이 반응하는 면역 과민 반응을 일으켜 결국은 몸에도 해로운 아토피, 기관지 천식 등 각종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아토피 같은 과민 면역 반응으로 인한 질환이 급증하고 있는데 잘 살펴보면 위생상태가 나아지는 정도와 비례함을 알 수 있다. 즉 도심의 아이들은 흙을 밟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연과 접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 인스턴트식품에 맛을 들이면서 김치 같은 유산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전통발효식품을 멀리하고 있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해주기 때문에 병균 뿐 아니라 장내미생물도 큰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매번 항생제를 투입할 때마다 몸에 이로운 역할을 하는 장내 유산균의 균총은 점점 줄어들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해로운 미생물의 균총이 점점 늘어나면서 장내 균총의 균형이 깨진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은 만성 과민성 염증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결국 깨끗한 환경에 사는 선진국의 아이들 가운데는 몸이 미생물이나 기생충에 충분히 노출되지 못해 면역계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질환에 면역계 발달에 관여하는 장내미생물 조합인 IRT5를 투입해 면역계를 재교육시켜 증상을 완화한다는 임 교수팀의 연구는 ‘위생가설’과도 잘 부합한다. 물론 장내미생물과 위생가설의 관계를 좀 더 분명히 보여주는 연구결과도 여럿 있다.
 


[대장에서 나타나는 질환 가운데 다수가 장내미생물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계 이상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스웨덴과 파키스탄의 연구자들은 자국의 아이들이 장내미생물에 노출되는 시기를 조사했는데 파키스탄 아이들이 스웨덴 아이들에 비해 그 시기가 더 빨랐다. 예상대로 아토피를 비롯한 면역계 과민으로 인한 질환의 비율은 스웨덴 아이들 쪽이 훨씬 높았다. 그렇다면 임 교수팀의 동물실험 결과처럼 프로바이오틱스가 사람에서도 면역계 과민 질환을 완화할 수 있을까.

2001년 핀란드의 연구자들은 알레르기 내력이 있는 임산부에게 유산균인 락토바실루스 제이를 섭취하게 했고 태어난 아이에게도 6개월간 먹였다. 그리고 유산균을 주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한 결과 유산균을 먹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토피나 천식에 걸리는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효과는 6년이 지난 2007년 조사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독일에서 행해진 비슷한 실험에서는 락토바실루스 제이를 섭취한 집단과 섭취하지 않은 대조군 사이에 아토피가 발생하는 빈도에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준비할 때 올바른 균주나 효과적인 균주의 조합을 찾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팀이 개발한 프로바이오틱스 조합물 IRT5는 현재 한국야쿠르트에서 발효유제품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험동물에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 최적의 유산균 조합이 인체에서도 효과를 보일지 그 결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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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정신건강까지 책임지는 장내미생물
Part4. 인삼 약효도 장내미생물 덕분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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