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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당신의 장유형은 무엇입니까?



‘내 장유형은 뭘까?’

지난해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장유형(enterotype)에 대한 논문이 나간 뒤 언론이 크게 다루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장유형인지 궁금해했다. 저마다 정해진 혈액형이 있듯이 장에 거주하고 있는 미생물의 분포에 따라 장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독일을 비롯한 다국적연구팀이 밝혀냈다. 이들의 분류에 따르면 장유형은 3가지로 각각 장유형1, 장유형2, 장유형3으로 불린다. 장유형은 ABO혈액형과는 관련이 없다. 장유형은 3가지인데 ABO혈액형은 4가지라는 사실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분변(대변)을 검사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나 연령대, 성별과도 별 관계가 없었다.

 


33명 대변 속 미생물 게놈 분석

연구자들은 먼저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인 22명, 일본인 9명, 미국인 2명의 대변에 들어있는 장내미생물의 게놈을 통째로 분석했다. 이 정보를 기존 미생물 게놈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어떤 종류의 미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했다. 최신 게놈서열분석기와 생명정보기술이 개발됐기에 가능한 방법으로 불과 수년 전만해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장내미생물의 게놈 파편만으로 정확히 어떤 종인가까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속(genus)의 수준에서 장내미생물의 분포를 조사했다. 그 결과 33명의 장내미생물 분포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는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됐다.

즉 33명 가운데 8명은 장내미생물 가운데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속 미생물이 가장 많이 차지했다. 장유형1로 분류된 이 집단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한 결과 흥미롭게도 박테로이데스속과 친한 미생물들(상대적으로 많음)과 서먹서먹한 미생물들(상대적으로 적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장유형1에서는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속의 미생물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장유형2로 분류된 6명은 프레보텔라(Prevotella)속 미생물이 가장 많았고 상대적으로 대장균류는 적었다. 나머지 19명은 장유형3으로 분류됐는데 루미노코쿠스(Ruminococcus)속 미생물이 가장 많았다. 이 종류는 뮤신이라는 점막 성분을 잘 분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장유형3에서 루미노코쿠스속의 점유도는 장유형1의 박테로이데스 속이나 장유형2의 프레보텔라 속에 비해 꽤 낮았고 상대적으로 박테로이데스속도 많았다. 따라서 장유형3은 장유형1에 가깝다.

실망스럽게도 장유형과 국적, 성별, 나이, 비만도 같은 특성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장유형에 따라 음식이나 약물을 섭취할 때 다르게 반응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소장 내벽에 정착해 살고 있는 박테리아(녹색)의 모습.]

 
식단을 보면 장유형 추측할 수 있어

5개월 뒤인 2011년 10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장유형과 평소 섭취하는 음식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를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은 98명의 식습관과 장내미생물 분포를 조사한 결과 장유형1인 사람들은 고지방, 저식이섬유 식단을 보였다. 육식을 즐긴다는 말이다. 장유형1의 경우 락토바실러스(유산간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고지방, 저식이섬유 식단에 따른 결과로도 잘 설명된다.

반면 장유형2인 사람들은 저지방, 고식이섬유, 즉 채식위주의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는 장유형3을 따로 분류하지 않았는데 연구자들은 장유형3을 장유형1 가운데 상대적으로 박테로이데스 속의 비율이 적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 결과는 지난 2010년 유럽의 아이들과 아프리카 아이들의 장내미생물 분포 연구결과와도 잘 맞는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전형적인 서구 식사를 해온 유럽 아이들과 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해온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아이들의 대변을 분석하자 유럽 아이들은 박테로이데스속 미생물이 많았고(장유형1) 아프리카 아이들은 프레보텔라 속 미생물이 많았다(장유형2). 이런 연구들은 개인의 장내 미생물 분포가 대체로 일생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는 기존 연구결과와도 잘 맞는다. 사람의 식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단을 바꾸면 개인의 장유형도 바뀔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고지방, 저식이섬유 식단을 즐기는 장유형 1인 사람 10명을 뽑아 임의로 5명씩 나눈 뒤 한 쪽에는 기존 식단을, 다른 한 쪽에는 저지방, 고식이섬유 식단을 10일 동안 제공했다.

그 결과 식단을 바꾼 쪽은 하루 만에 장내미생물 분포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장유형을 바꿀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10일 동안 식단을 바꿨음에도 이들의 장내미생물 분포는 여전히 장유형2보다는 장유형1에 가까웠다. 그만큼 한 번 정해진 장유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식단을 바꾼다면 장유형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장유형은 혈액형처럼 불변의 특성은 아닌 셈이다.

한편 장유형이 식습관과 관련돼 있다면 장유형에 따라 특정한 질병에 걸릴 위험성에 차이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즉 장유형1인 사람들은 심혈관계 질환 같은 서구식 식단과 관련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로는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 한편 면역계를 조절해 항염증효과를 보이는 유익한 장내미생물인 페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이(Faecalibacterium prausnitzii)의 경우는 장내 분포에서 개인차가 있었지만 장유형과는 상관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






 
장수촌 사람들은 장내미생물도 다르다

장유형과 관련된 위의 국제공동연구에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과 한국야쿠르트 공동연구진은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장내미생물의 분포의 관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시골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의 장내미생물은 종류와 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서울에 사는 40대 이상 44명과 장수촌인 충북 영동군 토항마을과 강원 춘천시 박사마을에 사는 40대 이상 25명의 분변을 얻어 장내미생물의 분포를 분석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인들에 비해 몸에 좋은 유산균이 3~5배나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유산간균이 차지하는 비율은 도시민이 0.56%인 반면 장수촌주민은 1.36%였고 유산구균은 도시민이 0.02%이고 장수촌주민이 0.1%였다. 반면 몸에 해로운 미생물은 도시인들의 대변에는 꽤 존재한 반면 장수촌 주민들의 대변에는 거의 없었다.

연구에 참여한 한국야쿠르트 안영태 박사는 “도시 거주자와 농촌(장수촌) 거주자 사이에 나타나는 이런 큰 차이는 물과 공기 같은 환경적 요인과 개인이 받은 스트레스 정도, 섭취하는 식품의 종류 등 여러 요인의 차이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 박사는 “유산균이 장내미생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이지만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서 “유산균 수가 줄어들면 유해균이 급증하면서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패스트푸드를 즐기고 육식을 많이 하고 전통 발효 식품을 덜 먹는 도시민들이 상대적으로 장 건강이 좋지 못한 이유다.

이 결과에 대해 식약청은 “건강한 장내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채식과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 된장 같은 전통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할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슬로우푸드와 채식, 전통 발효식품으로 장내미생물을 잘 관리한 장수촌 사람들이 그 보답으로 ‘장수’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전통 발효식품을 즐겨 먹는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은 몸에 유익한 장내미생물이 많고 해로운 미생물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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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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